[아이뉴스24 김동현 기자] K-드라마와 K-영화는 이제 단순한 문화 콘텐츠가 아니다. 세계인은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을 여행하고, 한국 음식을 찾고, 한국 제품을 구매한다. 콘텐츠는 관광을 이끌고 소비를 확대하며 수출을 촉진하는 국가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K-콘텐츠는 문화산업을 넘어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핵심 산업이 됐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드라마와 영화를 방송과 영화산업의 영역에만 가두어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콘텐츠는 지역경제를 살리고 국가균형발전을 이끌 수 있는 새로운 산업 플랫폼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은 5000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다. 그 시간 속에는 수많은 왕과 장군, 예술가와 선비, 이름 없는 민초들의 삶과 전설이 축적돼 있다. 지역마다 고유한 역사와 문화, 인물과 사건을 품고 있다. 문제는 그 소중한 이야기들이 문화유산으로는 남아 있지만 산업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유산을 보존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그것을 세계인이 공감하는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데는 아직 충분한 역량을 쏟지 못했다.

최근 영월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단종의 삶을 소재로 한 천만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역사 속 한 인물을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끌어냈다. 영화의 흥행 이후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와 장릉, 영월을 찾는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수백 년 전 비극적인 왕의 이야기가 오늘날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지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자산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영월의 사례는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재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경주에는 천년 신라와 화랑의 이야기가 있고, 안동에는 선비정신과 유교문화가 살아 있다. 전주는 조선왕조의 뿌리와 한옥문화라는 독보적인 자산을 갖고 있으며, 목포와 여수는 근대사의 흔적과 아름다운 해양문화를 품고 있다. 제주는 해녀문화와 독특한 신화, 인천은 개항과 근대화, 국제도시로 성장한 역사가 있다. 지역마다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와 영화의 원석이 넘쳐난다.
세계는 이미 콘텐츠를 지역발전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영화 '반지의 제왕'을 통해 국가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었고, 크로아티아는 세계적인 드라마 촬영지를 관광산업으로 연결했다. 영국은 '해리 포터'를 하나의 거대한 관광 브랜드로 키웠고, 일본은 애니메이션 성지순례를 지역경제의 새로운 축으로 발전시켰다. 콘텐츠는 더 이상 문화산업만의 영역이 아니다. 관광과 숙박, 음식, 교통, 유통은 물론 지역 브랜드와 수출 경쟁력까지 좌우하는 종합산업이다.
우리도 이제 드라마와 영화를 지역산업과 전략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드라마 한 편이 제작되면 촬영지를 중심으로 관광상품이 개발되고, 지역 특산물이 브랜드화되며, 문화축제와 체험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 있다. 최근 더욱 발전하고 있는 PPL과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하면 지역 기업과 특산품도 자연스럽게 콘텐츠와 연결할 수 있다. 콘텐츠 하나가 지역 산업 전반의 가치를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단순히 촬영 장소를 제공하거나 제작비 일부를 지원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산업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콘텐츠화할 수 있는 스토리를 발굴하고, 이를 제작사와 연결하는 장기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 문화예술계,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지역 스토리 IP 발굴 프로젝트'를 상설화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 역시 문화정책과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별개의 영역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성장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고, 관광과 지역산업까지 연계하는 종합적인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지방자치단체, 콘텐츠 제작사, 관광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협력 플랫폼을 만드는 것도 의미 있는 대안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흔히 자원이 부족한 나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콘텐츠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을 가진 나라 가운데 하나다.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역사와 문화, 수많은 인물과 사건, 그리고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전국 곳곳에 잠들어 있다.
영월은 이미 가능성을 보여줬다. 단종은 역사 속 비운의 왕에서 그치지 않고 오늘의 지역을 살리는 문화자산이 됐다. 그렇다면 경주에도, 안동에도, 전주에도, 목포에도 또 다른 단종이 있다. 이름은 다르지만 아직 콘텐츠로 깨어나지 못한 이야기들이다.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동력은 첨단산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이야기 속에도 있다. 지역의 역사가 드라마가 되고 영화가 되면 지역은 관광지가 되고, 특산품은 브랜드가 되며, 세계인의 발길이 이어진다. 서울의 스튜디오에서만 콘텐츠를 만드는 시대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콘텐츠 무대로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 곳곳에는 아직도 수많은 단종이 잠들어 있다. 이제 그들을 깨워야 할 시간이다.
/김동현 기자(rlaehd3657@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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