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한얼 기자] 미국과 이란 간 종전이 가시화되면서 그동안 뒷전으로 밀렸던 국내 석유화학업계 구조조정 논의가 다시 속도를 낼 전망이다. 전쟁 기간 원유 수급과 나프타 공급망 안정이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면서 정부와 업계 모두 구조개편 논의에 적극 나서지 못했지만, 중동발 불확실성이 완화되면서 다시 생존을 위한 사업 재편에 집중할 여건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부와 석유화학업계는 지역별·기업별 구조개편 방안을 놓고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업계에 올해 1분기 내 구조개편 최종안을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후 미·이란 갈등이 격화되면서 논의 속도가 눈에 띄게 둔화됐다.
당시 정부와 업계는 구조조정보다 원유 및 나프타 수급 안정에 정책 역량을 집중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국내 정유·석유화학 산업 전반에 공급망 불안 우려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업계 역시 생산 차질 대응과 원료 확보에 집중하면서 구조개편 논의는 사실상 후순위로 밀렸다.
그러나 종전 협상이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중국발 공급 과잉과 수요 부진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수익성 악화가 지속되고 있어 더 이상 구조조정을 미룰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3대 석유화학 산단 가운데 대산은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추진하는 1호 구조개편 프로젝트가 이미 정부 승인을 받아 오는 9월 합작법인 출범을 앞두고 있다. 여수산단에서도 여천NCC, DL케미칼, 한화솔루션, 롯데케미칼이 구조개편 최종안을 정부에 제출한 상태로, 현재 관계 부처의 심사가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여수 프로젝트 역시 이르면 내년 1월 합작법인 출범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논의가 지연된 곳은 울산과 여수 2호 프로젝트다. 우선 울산산단에서는 대한유화, SK지오센트릭, 에쓰오일 등을 중심으로 에틸렌 생산능력 약 90만톤 감축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달 말 기계적 완공에 들어가는 에쓰오일의 샤힌프로젝트(180만t) 물량은 이번 감축안에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 한 관계자는 "어떤식으로든 감축 발표는 할 것으로 보이지만 당초 공언했던 90만t 보다는 하향된 수준의 발표가 나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여수산단에서도 LG화학과 GS칼텍스를 중심으로 구조개편 논의가 진행 중이다. 다만 GS칼텍스는 GS에너지와 미국 셰브론이 각각 50% 지분을 보유한 합작사인 만큼 자산 통합이나 합작법인 설립 과정에서 주주 간 이해관계 조율이 필요해 논의가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안팎에서는 중동 사태 일단락에 따라 구조개편 논의는 재점화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최종안 제출 시기에 대해서는 연말께가 돼야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고 있다. 구조조정 대상 설비와 감축 규모, 자산 통합 방식 등을 놓고 기업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데다 정부 역시 업계 자율 논의를 우선한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적 환경도 변수다. 석유화학업계는 올해 1분기 래깅 효과에 힘입어 일부 실적 개선을 거뒀지만 하반기 부터는 역래깅 영향이 반영되면서 수익성이 다시 둔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황 대응과 경영 정상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구조개편 논의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여기에 업계 구조조정을 총괄적으로 조율할 구심점이 부족하다는 점도 부담이다. 현재 화학산업협회는 회장직이 공석인 상태로 엄찬왕 상근부회장이 직무를 대행하고 있다.
또 다른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중동 리스크가 완화되면서 구조조정 논의가 다시 본격화될 가능성은 높아졌다"면서도 "기업 간 이해관계 조정과 세부 실행방안 마련에 시간이 필요한 만큼 연말은 돼야 구체적인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한얼 기자(eo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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