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서병기 기자] K-콘텐츠를 확장하는 작업이 유의미한 효과를 낳고 있다. 드라마나 음악 같은 창작물에서 출발해 ‘K’가 붙은 푸드, 뷰티, 패션 등으로 K-컬처가 확장되고 있다.
지난해 두 개의 뷰티 예능이 론칭됐다. K-뷰티를 대표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자신만의 색깔로 치열하게 맞붙은 메이크업 서바이벌 쿠팡플레이 ‘저스트 메이크업’은 2025년 10월에, 이어 K-뷰티 마스터들의 뉴욕 정복기인 tvN ‘퍼펙트 글로우’는 2025년 11월에 방송됐다.
두 뷰티 예능의 특징은 예능에 치중한 게 아니라, 뷰티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다시 말하면 K-뷰티의 ‘실체’가 있었다는 얘기다. 서양 고객이 블랙핑크의 제니처럼 보이게 화장해달라고 해서 나온 결과물이 놀라웠다. 1세대 뷰티 크리에이터 이사배는 여기서 큰 역할을 했다.
사실 한국의 중소기업 뷰티 메이커들은 글로벌 유명 뷰티 브랜드들과 경쟁해, 또 다른 존재감과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김태욱이 회장으로 있는 아이패밀리에스씨가 만든 ‘롬앤’의 색조화장품들은 국내 올리브영뿐만 아니라, 이미 오래전 일본 편의점 ‘로손’에서도 잘 팔리고 있고 북미와 유럽시장으로도 유통망이 확대되고 있다.
뷰티예능을 제작해 본 CJ ENM도 이런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지난 5월 12일 스타일 크리에이터 대전쟁인 tvN ‘킬잇’을 내보내며 K-패션의 본질과 방향 탐구에 나섰다.

CJ ENM은 원래 라이프 스타일 장르에서 강했다. 지난 2011년 오리온그룹의 복수방송채널 ‘온미디어’를 인수함으로써 여성, 생활, 스타일 장르에서는 더욱 강해졌다. ‘도수코’(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마셰코’(마스터셰프 코리아), ‘겟잇뷰티’ 등 라이프 스타일 장르가 앞서있었는데, 한동안 뜸하다가 다시 주도권을 잡았다.
‘킬잇’은 확실히 K-뷰티의 진화다. 차세대 스타일 아이콘이 누구인지를 가리는 서바이벌이다. 10년전만 해도 패션 트렌드는 몇몇 (슈퍼)모델과 패션디자이너 등 특정직업 사람들이 주도했다. 지금은 SNS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일반인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그런 여성 100명의 ‘잇걸’들을 모시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게 ‘킬잇’이다. 한마디로 멋있는 사람, 자신이 스스로 멋을 연출할 줄 아는 사람을 뽑는 프로그램이다. K패션 트렌드를 이끌 차세대 스타일 아이콘을 발굴하는 ‘킬잇’답게 부제도 “후즈 더 넥스트 스타일 아이콘?”이다.
이원형 ‘킬잇’ 책임 프로듀서는 이런 점에서 보면 킴 카다시안이 완성형이라고 말했다. 킴 카다시안은 패리스 힐튼의 스타일리스트로 출발했고, 패션과 스타일에서는 위악과 비호감까지도 아이덴터티로 만들어내며 확고한 개성을 갖춰 더 유명한 셀럽이 됐지만, 배우 메릴 스트립도 ‘킬잇’의 또 다른 완성형이라 할 수 있다.
올해 76세인 메릴 스트립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에서도 독특한 분위기와 완벽한 스타일 조화를 이룬 ‘런웨이’ 편집장 미란다의 모습으로 등장했는데, 20년전 시즌1때에 비해 멋스러움이 조금도 줄지 않았다. 시즌1과 달라진 것은 앤 해서웨이에게 덜 깐깐해지고 좀 덜 괴롭힌다는 것이다. 분량이 앤 해서웨이 보다 적어도 존재감이 약화되지 않는 건 그녀만의 확고한 스타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걸 ‘아우라’라고 했던가.
블랙 레이블의 장윤주 심사위원은 “10년전에는 사진 한 장으로 결정했다, 10년간 너무 변했다.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야 이 바닥에서 놀 수 있다. 우리 레이블도 경쟁한다”고 말했다.
화이트 레이블의 차정원은 “SNS에서도 브랜드를 만들어 PR하고, 본인이 만든 것으로 팬을 만들고, 그런 친구들이 TV에 나온다. 나도 이런 친구들이 어떤지 팬심으로도 보고, 괜찮은 친구를 뽑는다. 다 같이 만들어나가는 게 색다른 점이다”고 전했다.
‘킬잇’에서는 자연스러우면서 본인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 선호된다. 이원형 책임 프로듀서는 “본인의 라이브스타일이 확고하고, 본인의 스타일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게 프로그램의 차별점이다”고 말했다.
‘마켓트랜드 2026’에 언급된 ‘미코노미’는 ‘나’(Me)와 ‘경제’(Economy)의 합성어로 소비의 기준이 ‘나’로 이동함을 의미한다. 이제 타인의 기준보다 자신의 취향과 만족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패션에도 유행보다는 ‘나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이들에게 자신감이 생긴 건 휴대폰과 SNS로 인해 각종 팩트들과 그것을 종합해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됐기 때문이다.
‘대중픽’에서 ‘마이픽’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 있다고나 할까? 남의 것을 보고 따라하기 보다는 내가 선택한 것을 보편적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는 점이다.
패션 매거진 ‘하퍼스 바자’는 이런 트렌드를 잘 반영하며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통찰과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킬잇’을 보면 그런 시대의 트렌드를 패션 스타일로 제대로 보여준다. 과거 패션 서바이벌이 전문가의 시선이 기준이었다면, ‘킬잇’은 각자의 취향과 개성을 중심으로 ‘누가 더 자기다운가’를 묻는 방향으로 진화한 요즘 현상을 대변하고 있다.
1회에서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출연자와 그들의 패션들이 이어졌다. 1라운드 스타일 전쟁, 누가 포토그래퍼들로부터 사진이 많이 찍히느냐를 가리는 스타일 전쟁에서는 호피로 꾸민 1세대 인플루언서 다샤, 로켓 브래지어를 입어 화제가 된 후 샌드키드룩을 선보인 요요, 26만 팔로워를 거느린 재인, 한국의 패리스 힐튼 유희라, ‘도수코 시즌3 3위’ 여연희, '팔로워 700만 틱톡커' 유빈 켈리 등이 화제였다.
2회에 방송된 2라운드는 절반이 줄어든 50명이 경쟁을 펼쳤다. 미션은 ‘데스매치: 아이템 전쟁’이었다. 가장 아까운 것은 누가 봐도 멋있는 서현과 서윤 쌍둥이 자매간의 대결이었다. 트렌치 코트로 착장하고 시밀러 룩으로 나타난 이들에게 승패를 가리는 건 가혹한 행위였다. 우열 가리기가 아니라 취향의 차이로 봐야할 것 같았다. 동생 서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1라운드에서 49위로 가까스로 생존했던 고예진이 스윔웨어를 주제로 화이트 바디슈트를 탑으로 리폼하는 등 블랙 앤 화이트 룩을 완성해 ‘솔로지옥2’ 출연자 박서빈에게 압승한 것도 볼만했다.
4회는 4인 1조의 팀전인 ‘피드전쟁’이었다. 3라운드에 진출한 25인과 슈퍼패스로 살아난 다샤, 최미나수, 나야와시 등 28명이 스스로 7개조를 만들어 각각 피드를 채우는 미션이었다.
공중에서 옷들이 내려오며 순식간에 만들어진 쇼핑존에는 다양한 스타일의 2000벌이 준비돼 있었다. 이 순간은 ‘킬잇’에서 지금까지 가장 멋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다. 세탁실, 오피스, 자연, 호텔 복도, 트럭, 해변 등 6개의 특별한 공간인 피드존도 이들의 순발력을 볼 수 있도록 했다.
7조(김지훈, 서현, 재인, 최미나수)는 역할 분담이 잘돼 미션을 착착 진행시켰다. 콘셉트는 다 같이 짜고, 최미나수는 소셜미디어, 지훈은 다양한 스타일링을 각각 리드했다. 숏폼 동영상 릴스 촬영도 베를린에 사는 250만 메가 인플루언서 지훈이 맡았다.
전원이 생존한 1위는 다샤와 요요, 나야와시, 니즈가 있는 2조로 피드의 배치 완성도가 가장 높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위를 한 1조(고예진, 김나라, 챌미, 카프리)도 인상에 남았다. 인물 중심으로 다닥다닥 너무 사람만 나오게 될까봐 인서트 사진들을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멋있는 구도가 나올 수 있었다. 초반 삭발을 했던 김나라도 기억에 남는다.
찍으면서 바로바로 편집해 ‘피드’를 올리는 이들의 자유로우면서도 차별적 개성을 보여주는 즉흥적 기획력은 ‘킬잇’의 추구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18인이 합숙생활을 하며 치르는 본선은 앞으로 또 어떤 재미를 줄 것인가?
/서병기 기자(wp@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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