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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의 감각을 데이터로”…충남 전통주 양조장의 AI 실험


슬로커, 국내 첫 AX 양조장 구축…발효·증류 공정 예측·제어하는 제조 AI 도입
한산소곡주 전통에 스마트 증류 기술 결합…미국 50개 주 진출도 추진

[아이뉴스24 정종윤 기자] 충남의 한 전통주 양조장이 인공지능 기반 제조 혁신의 실험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양조테크 스타트업 슬로커가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 전환(AX) 양조장’을 구축하고 전통주 제조의 핵심으로 여겨졌던 ‘명인의 감각’을 데이터 기반 제조 체계로 바꾸는 작업에 나섰다.

슬로커가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 구축한 스마트 증류소는 연간 약 350만 병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이곳에서는 발효와 증류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도, 당도, 용존산소, 교반 속도, 압력, 습도, 발효 속도 등의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수집된다. 회사는 이 데이터를 토대로 발효 상태와 알코올 도수, 품질 변화, 종료 시점 등을 예측하는 제조 인공지능 모델을 구축했다.

핵심은 단순 자동화가 아니다. 슬로커는 제조 현장을 스스로 학습하고 최적화하는 제조 AI 운영체제, 이른바 MOS를 양조 공정에 적용하고 있다. 기존 전통주 산업은 계절, 원재료 상태, 누룩 품질, 숙련자의 경험에 따라 품질 편차가 생기기 쉬운 구조였다. 제조 노하우가 사람에게 집중되다 보니 대량생산 체계 구축과 해외 유통 확대에도 한계가 있었다.

충남 서천군 한산면 인공지능(AI) 양조 제조시설 내부 [사진=슬로커]

슬로커는 이 문제를 데이터로 풀겠다는 구상이다. 비전센서와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제조 공정에 연동해 실제 양조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수집된 제조 데이터를 가상 환경에서 반복 학습시킨다. 여기에 베이지안 최적화 기술을 적용해 발효와 증류에 적합한 조건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생산 과정에서 생기는 변수를 AI가 학습하고 최적화된 조건을 설비 제어 시스템과 연동해 자동 제어하는 자율형 양조체계를 고도화하고 있다.

업계에서 슬로커를 단순 전통주 제조업체가 아니라 ‘피지컬 AI 기반 푸드테크 제조기업’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의 감각과 경험에 의존해온 양조업을 데이터가 축적되는 제조 산업으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산업으로 분류돼 온 양조업이 제조 AI와 결합하면서 지역 제조업 혁신 사례로도 관심을 받고 있다.

성장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슬로커는 2022년 창업 이후 초기 엔젤투자를 유치하며 사업을 키웠지만 스마트 증류소 건축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났다. 건축 예정 부지였던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 일대가 조선시대 관아 외문루 부지로 확인되면서 국가유산청 발굴조사가 진행됐고 실제 문화재가 발견되면서 착공이 약 1년 늦어졌다.

투자시장 경색도 겹쳤다. 후속 투자 유치가 여러 차례 무산되며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착공 이후에는 하청 시공사의 부실시공 문제가 발생해 특수 배관을 전면 재시공하는 등 준공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슬로커는 이 기간에도 스마트 양조 공장 제어 기술 연구개발을 이어갔고 발효정보 측정 기반 제조 제어 기술 관련 핵심 특허도 출원·등록했다.

최근에는 실리콘밸리 기반 AI 기술 인프라 기업과의 협업도 확대하고 있다. 제조 데이터를 기반으로 공정을 스스로 최적화하는 기술이 전통주 산업을 넘어 글로벌 푸드테크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충남이 추진 중인 AI 기반 산업 전환 흐름과도 맞물린다.

김정혁 슬로커 대표가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 구축한 인공지능(AI) 양조 제조기 앞에서 스마트 증류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슬로커]

슬로커의 또 다른 경쟁력은 전통성이다. 이 회사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한산소곡주의 제조 철학을 현대 기술로 재해석하고 있다. 한산소곡주 우희열 명인의 전수자인 나장연 명인이 공동 설립자로 참여했다. 1500년 전통 제조 철학과 첨단 제조 기술을 결합한 ‘양조테크’ 기업을 지향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전통주 산업의 디지털 전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정부가 K-술 산업 육성과 전통주 세계화에 속도를 내면서 안정적인 품질, 대량생산 체계, 글로벌 유통 기준에 맞춘 제조 표준화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슬로커는 AI 기반 제조 표준화를 통해 전통주의 품질 편차를 줄이고 해외 시장 진출에 필요한 생산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이다.

회사는 올해 하반기 미국 50개 주 시장 진출을 목표로 북미 유통망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현지 수입·유통사 진명, 알티엠(RTM) 등과 K-소주 브랜드 공급 계약도 논의 중이다. 이후 유럽과 아시아 프리미엄 시장으로 진출 범위를 넓힌다는 계획이다.

미국 나파밸리 와이너리 프로젝트와 연계한 오크 배럴 숙성 제품 개발도 병행하고 있다. 한국 전통 증류주에 글로벌 프리미엄 스피릿 시장의 숙성 기술과 브랜딩 전략을 접목해 새로운 K-스피릿 시장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단순히 소주를 수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급 증류주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브랜드와 제조 방식을 함께 구축하겠다는 의미다.

슬로커는 최근 프리 시리즈A 투자 유치도 추진하고 있다. 확보한 자금은 제조 AI 고도화와 글로벌 유통망 확대에 투입할 계획이다. 전국 약 120개 회원사를 보유한 한국전통민속주협회와 전략적 업무협약도 맺었다. 전통주 제조 레시피를 데이터로 표준화하고 중소 전통주 업계 전반의 제조 데이터를 축적해 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김정혁 슬로커 대표는 “기존 생산관리시스템이 제조 현황을 관리하는 수준이었다면 AX 양조장은 제조 데이터를 기반으로 공정을 예측하고 판단하며 제어·환류하는 AI 운영체제에 가깝다”며 “전통주 산업에서 명인의 감각과 경험을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 목표”라고 말했다.

/서천=정종윤 기자(jy0070@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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