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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뇌부 아닌 자신 겨눈 3년차 검사…"내 무기력·비겁함에 화가 난다"


2013년 고려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소환
검찰 내부 향해 던진 질문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차라리 다 없애버렸으면 좋겠다'던 자조 부끄러워"
"재판확정 사건, 법정 밖 국가권력 영향 잘못된 것"

[아이뉴스24 최기철 기자] 임관 3년차 젊은 검사가 검찰청 폐지를 반년 앞둔 상황에서 정치권으로부터 난타를 당하는 상황을 비틀어 쓴 글이 검찰 내부로부터 조용한 파장을 낳고 있다.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 등 수뇌부를 비판하는 내부 목소리는 더러 있었지만 이 검사는 자신의 무기력과 비겁함 때문에 화가 난다고 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오른쪽)이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공명선거 관계장관회의에서 악수하고 있다. 2026.4.14 [사진=연합뉴스]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오른쪽)이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공명선거 관계장관회의에서 악수하고 있다. 2026.4.14 [사진=연합뉴스]

고석균 창원지검 밀양지청 검사(변호사시험 12회)는 지난 20일 검찰 내부 인트라넷인 이프로스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제가 대학교 2학년이었을 때 학교 후문에 붙었던, 꽤나 유명했던 대자보 하나의 제목"이라고 소개했다.

고 검사는 1992년생으로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그가 대학 2학년이던 시절 고대 후문 게시판에는 같은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에서 필자는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밀양 송전탑 갈등과 주민의 극단적 선택 등 당시 현안을 열거하며 "이런데도 우리는 과연 안녕한가"를 반복적으로 물었다. 이후 SNS·온라인 커뮤니티를 타고 빠르게 퍼지면서 당시 대학가를 대표하는 한 아이콘이 됐다. 2013년 12월 16일 기준으로, 경향신문이 집계한 것만 전국 대학 67개 교 이상에서 같은 내용의 대자보가 확인됐고 고등학교, 노동 현장, 종교계, 시민단체로까지 확산됐다.

고 검사는 "나름대로의 대답으로, 앞으로 나보다도 더 어려운 여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잊지는 말아야지, 세상의 부조리에 침묵할지언정 적어도 눈감고 모르는 척 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뭐 그런 다짐을 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고 검사는 재판 확정까지 이뤄진 사건의 수사 검사들에 대해 감찰이 진행되고, 징계에 앞서 총장 대행의 요청에 따른 직무정지가 이뤄진 현실이 매우 부당하고 화가 났다고 했다. 검찰 수뇌부를 포함해 책임 있는 선배 검사들을 비판하는 글을 검사 게시판에 올리려고 몇번이고 고민했지만 결국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제가 화가 난 이유는, 다른 누구의 잘못 때문도 아니고, 그저 저의 무기력함과 비겁함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근 검찰 내부에서는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분위기다. 복수의 검사들에 따르면 한 편으로는 무력감으로, 한 편으로는 결국 검찰청 폐지와 수사권 박탈로 국민의 피해가 현실화 돼 봐야 정상화 될 수 있다는 자조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오른쪽)이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공명선거 관계장관회의에서 악수하고 있다. 2026.4.14 [사진=연합뉴스]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나서며 대장동·대북송금 의혹 사건을 둘러싼 정치권의 국정조사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2026.4.17 [사진=연합뉴스]

고 검사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글에서 자신에게 화가 난 이유에 대해 "형사부 검사로서 범죄피해자들이 장차 입게 될 실질적인 고통과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쏟아지는 업무와 계속되는 야근이 힘들다는 이유로 동료에게 '그래, 차라리 다 없애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자조섞인 농담을 던지고, 그에 대한 아무런 반성도 성찰도 하지 않았던 저의 무책임함 때문"이라고 했다.

또 "형사사법과 법치주의가 형해화되는 광경을 눈앞에 목격하고 있으면서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는 의무감 혹은 신중함이라는 포장을 방패막이 삼아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저의 비겁함 때문에도 화가 난다"고 했다. 그러던 중 "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대신 책임져 주지 않느냐고 나무라고 책망하고 싶었던가 생각하며 저는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고 고백했다.

고 검사는 "더 늦기 전에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들과 공유하는 이 게시판에서나마 제가 가진 생각을 기록해 두려고 한다"면서 "저는 대한민국이 법치주의 국가인 이상, 재판이 확정된 사건에 대하여 재심 등 법에 근거한 사법적 절차가 아니라, 공판정 바깥에 있는 국가권력에 의한 방법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자신이 기소해 판결이 확정된 사건에 대해 법정 밖의 외부적인 영향력에 의한 재판 개입이 발생하는 경우, 이에 대해 옳고 그름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사건을 수사했던 수사검사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그러한 행동을 한 수사검사에 대한 우리 조직의 직무정지 결정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고 검사는 끝으로 "이제 근무한 지 만 3년이 채 되지 않은 부족한 식견으로 올리는 말씀이라 조심스럽다"면서 스물한 살 때 읽었던 그 대자보의 마지막 단락을 인용했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 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23일 고 검사 글에는 70개에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선배 검사들이다. "안녕하지 못하다" "비겁하고 무책임한 제 자신 때문에 화가 나고 부끄럽다"라는 자기 고백이 잇따랐다.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고 검사 동기 검사는 "검사들의 헌신과 고뇌를 외면한채 작금의 사태나 논하는 27년 가까이 근무하신 분보다 2년 7개월 되신 검사님의 글이 더욱 와닿고 울림이 크다"며 깊은 공감과 지지를 표했다.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했다가 올해 1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된 박현준 전 서울북부지검장은 "연구실에서 늦은 점심을 하려고 나가려다 이 글을 보니 또다시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냐'는 소리 없는 묵직한 꾸중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린다"며 "냉소적인 태도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것 같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말에 왜 이렇게 울컥할까"라고 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오른쪽)이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공명선거 관계장관회의에서 악수하고 있다. 2026.4.14 [사진=연합뉴스]
지난 16일 국회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제8차 전체회의에서 열린 대장동·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위례신도시 조작기소 의혹 사건 청문회에서 대장동 민간업자 남욱(오른쪽 두번째), 김태훈 대전고검장(왼쪽) 등 증인들이 선서하고 있다. 2026.4.16 [사진=연합뉴스]
/최기철 기자(lawch@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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