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효정 기자]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건자재 가격 상승 이슈가 부각되고 있다. 현대건설이 공식 공사비 상승과 공사기간 지연 가능성을 알리는 공문을 재개발 현장에 보내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될 조짐이다.
3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최근 대조1구역 조합에 도급 공사비 222억원을 증액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이에 앞서 다른 정비사업 현장들에도 공사비 상승 및 공기 지연 가능성을 알리는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건설은 지난 26일 대조1구역에 보낸 공문을 통해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장기화 영향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과 자재 공급 차질이 현실화되고 있다"며, "가격 인상이 예상되는 주요 자재는 페인트, PVC-플라스틱(창호·몰딩·걸레받이), 단열재, 방수재, 도배지, 아크릴, 시트지(가구·창호) 등"이라고 지목했다.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된 채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에 유가와 환율이 급상승하고 운송비도 증가하면서 나프타 등 원료 수급 불안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현대건설은 "원자재 시장의 급격한 변동은 통상적인 사업 수행 과정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외부 변수"라며 "이는 도급계약서 제33조 제1항에서 정한 천재지변, 전쟁 등 '불가항력'의 경우에 해당하므로 공사 기간 연장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은평구 대조동의 대조1구역은 재개발 사업을 통해 지하 4층~지상 최고 25층 28개 동, 2451가구 규모로 조성되는 대단지다. 입주는 오는 10월로 예정돼 있어 7개월 가량 남아 있다. 2022년 10월 착공 후 조합 집행부 공백과 미수 공사비 1800억원 부담 문제로 2024년 1월 공사가 중단됐다가, 결국 공사비 2566억원을 증액하며 공사를 재개한 곳이다.
이번에 추가로 공사비 상승 이슈가 발생하면서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 가능성이 다시 점쳐지고 있다. 대조1구역 관계자는 "이번 공사비 인상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된 내용이 없으므로 공식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공사비 인상 문제가 발생, 조합과 협상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페인트값까지 치솟아… 정비사업 공사비 갈등 촉발 우려
각종 건자재 수급 불안이 이어지면서 대조1구역뿐만 아니라 정비사업 전체적으로 공사비 인상 문제로 인한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당장 건설 자재 공급이 중단되지는 않겠지만, 수급 불안이 심해지면 특정 현장에 필요한 자재를 다른 현장에서 끌어오거나 비싼 값을 치르고 사들여 공급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도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건설사들은 공사비 부담이 커져 인상 여부를 고민해야 한다"며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유연탄 수급 불안으로 시멘트 공급이 끊긴 적도 있다"고 밝혔다.
최근 건설자재 가격 상승은 품목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번지고 있다. 최근 열린 제6차 수도권 레미콘 단가 협상에서 레미콘 업계는 ㎥당 5600원 인상안을 제시하며 건설업계가 제시한 2400원과 큰 차이를 보였다. 이마저도 종전안에 비하면 격차가 줄어든 것이지만, 레미콘 업계는 운반비 인상과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할 때 큰 폭의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국내 대표 페인트 업체인 KCC는 다음달 6일부터 대리점에 공급하는 페인트 가격을 제품별로 10~40% 올리기로 했다. 앞서 노루페인트와 삼화페인트공업도 지난 23일부터 제품 가격을 20~55% 인상했다.
KCC 관계자는 "페인트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 수급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수급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 중이나, 원재료 가격이 급상승하며 건축용 도료 인상이 불가피했다"며 "건자재 업계 내에서는 페인트뿐 아니라 다른 품목에 대해서도 수급 불안(shortage)을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업체들이 있다"고 전했다.
판례에서는 공사비 인상 안 된다는데… 해결 가능할까
일반적으로 조합과 건설사가 시공 계약을 맺을 때 착공 전까지만 공사비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하고, 착공 후에는 물가 상승을 이유로 공사비를 인상하지 않는 조건을 붙인다.
현대건설처럼 착공 후라도 전쟁과 같은 변수로 인한 인상은 가능하다고 적시되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 말하는 '전쟁'의 범위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 변호사는 "통상적으로 착공 전까지만 물가 상승률을 반영하고 착공 후에는 천재지변 등의 경우에만 공사비를 올리도록 계약하는 편"이라며 "여기서 말하는 천재지변은 법원이 판단할 때 원칙적으로 국내에서 발생하는 전쟁이나 지진 등을 의미하지만, 시공사는 해외 전쟁의 여파 등으로 해석을 달리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에는 전쟁으로 촉발된 공사비 인상 청구가 계약 조건에 따라 기각된 판례도 있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3민사부는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물가 급등을 이유로 공사대금 증액을 요구한 사건에서 기각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계약서에 명시된 '물가 변동으로 인한 계약 금액 조정 배제' 특약이 유효하다고 판단해 원고의 청구가 모두 기각됐다.
문제는 조합 입장에서 공사비 인상 거부로 준공이 늦어지면 사업 지연에 따른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시공사의 요구를 무조건 무시하기는 어렵다는 데 있다.
김 변호사는 "착공 후에는 공사를 멈추기 어렵기 때문에 계약상 증액 의무가 없는 조합이라도 이주비 대출 이자 등 금융 비용 문제와 사업 지연 우려로 인해 결국 협상을 통해 공사비를 올려주는 구조가 될 것"이라며 "대신 최근 3.3㎡당 공사비가 1000만원 수준까지 높아지면서 조합원들의 결정도 쉽지 않아 시공사와 갈등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효정 기자(hyoj@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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