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화 주식이라는 표현은 익숙해졌지만, 정작 많은 투자자들이 놓치고 있는 핵심이 있다. 지금까지 시장에서 접해온 대부분의 토큰화 주식은 이름은 '주식'이지만, 실제로는 주식 그 자체라기보다 주가를 추종하는 파생상품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투자자가 토큰화 주식을 샀다고 해서 곧바로 해당 기업의 주주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의결권이나 배당권 같은 법적 권리가 따라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아무리 많은 물량을 매수해도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리거나 주주총회에 참석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었다.
토큰화 주식이 새로운 투자 방식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주식을 가진다'기보다 '주식 가격에 연동된 상품을 산다'는 의미에 더 가까웠던 셈이다.
![NYSE는 시큐리타이즈(Securitize)와 협력해 실물 금융자산을 토큰화하기 위한 표준을 함께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사진=NYSE, Securitize]](https://image.inews24.com/v1/de17f5e0cc0794.jpg)
이 같은 한계를 정면으로 건드린 곳이 바로 뉴욕증권거래소(NYSE)다. NYSE는 최근 토큰화 전문 기업 시큐리타이즈(Securitize)와 협력해 주식, 채권, ETF 같은 실물 금융자산을 토큰화하기 위한 표준을 함께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단순히 기존 증권의 가격만 따라가는 토큰 상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블록체인 위에서 실제 증권성을 가진 자산을 발행하고 거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특히 이번 협업은 세계 최대 거래소가 블록체인 기반 금융 인프라를 직접 설계하겠다고 나섰다는 점에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네이티브 토큰화'라는 개념이다. 시큐리타이즈 측은 증권을 온체인에서 제대로 구현하려면 단순한 가격 연동형 토큰으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실제 주식이 갖는 권리와 구조를 그대로 반영한 채 블록체인 위에서 발행되고 이전될 수 있어야 진짜 의미의 토큰화 증권이라는 것이다.
즉, 투자자가 토큰화된 주식을 샀을 때도 기존 주식을 매수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의결권과 배당권 같은 권리를 함께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만 토큰이 단순한 거래 수단이 아니라, 실제 증권을 대표하는 자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지금까지 시장에 나왔던 여러 토큰화 주식 상품은 '완전한 토큰화'라기보다 과도기적 실험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삼성전자의 토큰화 주식을 수십억 원어치 매수했다고 해도, 그것이 실제 삼성전자 주식과 동일한 법적 권리를 담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대주주가 될 수 없다. 주주총회 초대장은 오지 않을 것이고, 주주명부에서도 이름을 찾을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지금까지의 토큰화 주식은 '주식처럼 보이는 디지털 상품'이었을 뿐, 완전한 의미의 디지털 주식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동안 금융업계에서는 블록체인이 결제와 청산, 자산 이전 등 금융 레일의 백엔드를 혁신할 수 있다는 기대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중앙은행들의 CBDC 실험, DTCC의 블록체인 파일럿 등 여러 시도도 이어졌다. 하지만 대부분은 제한적인 범위에서 진행되거나, 시장 전체 구조를 바꿀 수준의 본격적인 전환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업계 안에서는 늘 "언젠가 금융 인프라가 온체인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실제 제도권 핵심 기관이 이를 정면으로 추진하는 장면은 많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NYSE의 움직임은 상징성이 크다. 세계 최대 거래소가 블록체인 네이티브 구조를 전제로 새로운 거래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블록체인이 금융 인프라를 바꿀 수 있다는 오랜 가설이 더 이상 막연한 기대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아직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실제로 투자자 권리가 어떻게 구현될지, 규제와 제도는 어떤 방식으로 정비될지, 시장 참여자들이 이 구조를 얼마나 빠르게 받아들일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협업은 분명한 방향성을 던졌다. 토큰화의 진짜 승부처는 단순히 '거래를 블록체인에서 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식이 가진 본래의 권리와 법적 구조까지 온체인 위에 그대로 옮길 수 있느냐에 있다는 점이다.
결국 토큰화 주식 시장이 진짜로 커지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이 "이 토큰이 정말 주식인가"라는 질문에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NYSE와 시큐리타이즈가 추진하는 네이티브 토큰화 실험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본격적인 답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이 시도가 성공한다면, 블록체인은 더 이상 변두리 금융 실험의 도구가 아니라 월스트리트의 핵심 인프라로 들어가는 기술로 평가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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