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최기철 기자]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법정 진술 없이 영상 녹화 진술만으로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 구 성폭력처벌법 특례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김상환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3월 심판사건 선고를 위해 착석해 있다. 2026.3.26 [사진=연합뉴스]](https://image.inews24.com/v1/fd45b55486a019.jpg)
헌재 전원재판부는 26일 구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제30조 제6항이 과잉금지 원칙 위반이라며 부산고법 울산재판부가 제청한 위헌법률심판을 기각했다. 재판관 9명 중 5명은 위헌이라고 봤으나 정족수에 1명 모자라 합헌으로 결정 났다.
구체적으로 이번 결정은,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을 녹화한 영상물 상의 진술에 관해, 조사 과정에 동석했던 신뢰관계인 등의 법정진술이 신뢰할 수 있을 경우 영상의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있도록 정한 특례조항에 대한 것이다. 피고인은 반대신문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특례조항이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다.
재판부는 "성폭력범죄 피해자는 법정 진술 과정에서 심리적 위축과 정신적 고통을 겪을 수 있으며, 특히 의사결정능력이 미약한 장애인 피해자는 인지 및 의사소통의 제약으로 인해 더 큰 부담과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심판대상조항은 이러한 장애인 피해자가 법정 진술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정신적 고통과 2차 피해를 방지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또 "과도한 신문이나 의사소통의 제약 등으로 피해자의 진술이 왜곡되거나 불명확해질 위험을 완화함으로써 실체적 진실 발견에 기여하려는 목적도 함께 갖는다"면서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장애인 피해자의 법정 출석과 대면신문을 최소화하므로 목적 달성에 기여하는 적합한 수단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의 반대신문권 보장이 공정한 재판의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지만 핵심은 물리적 대면이라는 형식 자체가 아니라 진술의 진실성과 신빙성을 검증할 수 있는 실질적 기회가 보장되는지 여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에 대한 전체 조사 과정을 녹화한 영상물은 단지 진술의 내용뿐만 아니라 음성, 말투와 속도, 표정 등 비언어적 정보까지 그대로 포착·보존함으로써 상세하고 반복적인 사후 검토를 가능하게 하고, 심판대상 조항은 사안에 따라 법원이 재량으로 통상적인 증인신문을 실시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면서 "대면 반대신문이 제한된다는 사정만으로 피고인의 방어권이 침해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심판대상조항은 장애인 피해자 보호와 피고인의 절차적 권리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피해자에 대한 대면 반대신문을 제한하면서도, 영상물에 대한 검증 및 보완적 증인신문의 가능성을 통해 피고인이 피해자 진술을 다툴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침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 요건을 충족한다"며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청구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김상환 소장, 정정미·정형식·김복형·오영준 재판관 등 5명은 "영상물에 수록된 진술은 수사기관의 질문과 피해자의 일방적 진술로 구성된 전문증거로서 정확성에 오류가 개입될 가능성이 있고, 사후적 검토만으로는 진술의 미묘한 변화나 상호작용을 충분히 포착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재판관은 "반대신문권은 단순히 진술의 신빙성 검증을 위한 수단을 넘어, 피고인이 진술의 형성과정에 참여해 이를 다툴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형사절차의 공정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기능을 가진다"면서 "이를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형해화할 우려가 있다"고 봤다.
김 소장 등은 특히 "피해자의 진술이 유죄 판단의 결정적 근거가 되는 경우, 실질적인 반대신문 기회가 보장되지 않으면 피고인의 방어권이 중대하게 제한될 위험이 있다"면서 "심판대상조항은 반대신문 기회를 전면적으로 차단함으로써 피고인의 방어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 달성되는 공익이 제한되는 사익에 비해 우월하다고 보기 어려워, 결국 과잉금지원칙 위반으로 청구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앞서 헌재는 2021년 12월, 장애인 아닌 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영상 진술에 대해 조사 과정에 동석했던 신뢰관계인의 진술이 진정성이 인정될 경우 영상 진술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성폭력처벌법 조항에 대해 재판관 6대 3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후 국회는 2023년 7월 피해자 진술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 특례에 관한 조항(제30조의2)을 신설해 증거능력 인정 요건을 전반적으로 강화한 바 있는데, 이번 사건은 개정 전의 구법 조항 중 특히 '장애인 피해자'에 관한 것이다.
/최기철 기자(lawch@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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