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AI 대전환 시대...'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로


[창간 26주년] 공급망 질서 재편·한중 기술 역전 위기
피지컬AI로 엔진 바꾸고 선도기술에 국가 역량 집중

[아이뉴스24 김종성 기자] 대한민국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라는 전례 없는 혼란에 빠졌지만 금융과 산업에 대한 신속한 구조조정을 통해 빠른 속도로 위기를 벗어났다. 이를 통해 반도체, 무선통신기기, 자동차라는 ‘3대 수출 엔진’을 다시 가동했고, 초고속정보통신망을 기반으로 디지털 산업을 꽃피웠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현재. 그동안 축적해왔던 한국 경제의 '성장판'이 닫히고 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특히 과거의 성공 공식이었던 '추격형(Fast Follower) 모델'의 유효기간이 끝났다는 지적이 많다. 미·중 패권 경쟁에 따른 공급망 블록화, 중국의 공식적인 기술 역전, 인공지능(AI)이 물리적 실체와 결합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로의 진입 등 새로운 위기 요소들이 한국 경제에 새 돌파구를 요구하고 있다.

로봇이 셀(Cell)에서 아이오닉 5를 조립하는 모습. [사진=현대자동차그룹]
로봇이 셀(Cell)에서 아이오닉 5를 조립하는 모습.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중국에 추월 당한 산업⋯전략 기술 역전으로 구조적 위기

한국 경제 성장의 핵심 요인은 기술에 기반한 압도적인 제조 효율성이었다. 하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지난 2월 발표한 '2024년 기술수준평가' 결과에 따르면 이는 더 이상 강점이 아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12년 전인 2012년 평가 당시, 한국(77.8%)은 중국(67.0%)에 10.8%포인트(p) 차이로 앞서 있었다. 그런데 2022년 평가에서 처음 역전됐고, 2024년에는 중국(86.8%)과 한국(82.8%)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최고 기술국인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2.8년)은 중국(2.1년)보다 0.7년이 뒤처진 상태다.

한국이 강하다고 믿어왔던 2차전지 분야마저 중국에 역전을 허용했고, 미래 먹거리인 AI와 자율주행 기술에서도 중국이 한국을 1년 가까이 앞서기 시작했다. 중국은 막대한 빅데이터와 국가적 보조금을 동원해 AI 알고리즘과 자율주행 하드웨어 시장을 장악하며 '제조 강국'을 넘어 '지능형 플랫폼 강국'으로 변모했다.

로봇이 셀(Cell)에서 아이오닉 5를 조립하는 모습.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주요 5개국 기술수준 추이.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고서는 "기술격차를 빠르게 줄이기 위해서는 기초기반 역량 확보와 응용 분야 등 한국의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또 "AI 기술은 양자, 로봇, 첨단 바이오 등 전략기술 향상에 가속화 엔진으로 작동할 것으로 예상돼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2.0시대'와 자원 안보⋯공급망 시한폭탄의 카운트다운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의 귀환도 수출 중심인 우리 경제에는 큰 위기 요소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CHIPS Act)은 이미 우리 기업들에게 천문학적인 현지 투자와 탈(脫)중국 공급망 다변화를 강요해 왔다.

여기에 재집권한 트럼프 정부가 촉발한 '관세 전쟁'은 수출 주도형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한국무역협회(KITA)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핵심 광물의 대중국 의존도는 여전히 80%를 웃도는 품목이 다수다. 미국의 관세 장벽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중국산 원자재 의존도를 낮추지 못할 경우, 한국 기업은 비싼 원료를 사서 미국에 높은 관세까지 물고 팔아야 하는 최악의 수익성 악화에 직면하게 된다.

이제 공급망은 단순히 비용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의 존폐를 결정하는 '안보'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과거 '비용 최적화'에 기반한 글로벌 분업 구조는 이제 '자유무역시대'의 종언과 함께 해체되고 있다.

로봇이 셀(Cell)에서 아이오닉 5를 조립하는 모습. [사진=현대자동차그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국가별 상호관세 부과 관련 시행명령에 서명을 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바퀴 달린 컴퓨터'를 넘어 '피지컬 AI'로의 성장 엔진 교체

위기에 빠진 제조산업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정보화 시대 뿌리내린 IT 기술을 기반으로 인공지능(AI) 수준을 높여 '피지컬 AI(Physical AI)'에 속도전을 펼쳐야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기계적 완성도가 중요한 하드웨어 파워에서 지능적인 유연성 기반의 '소프트웨어 파워'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다.

자동차 산업이 가장 극적인 사례다. 과거 내연기관차 한 대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이 200~300개였다면,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에는 2000개 이상의 반도체가 탑재된다. 이제 자동차의 가치는 엔진 마력이 아니라 '잠든 사이 얼마나 똑똑하게 소프트웨어가 업데이트(OTA) 되었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바퀴 달린 고성능 컴퓨터'가 됐다. 피지컬 AI가 승부처인 것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로보틱스 비전이나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AI 반도체 전략도 그 일환이다.

조대형 DS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이 최근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를 통해 발간한 '피지컬 AI 1등 국가를 위한 정부와 기업의 역할'에서 "생성형 AI는 그 지능이 로봇, 모빌리티, 가전이라는 물리적 신체를 얻어 실제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피지컬 AI의 시대로 진입했다"며 "이제 국가 경쟁력은 AI 모델 크기뿐만 아니라, 그 지능을 하드웨어에 탑재해 현장의 문제를 얼마나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전망했다.

로봇이 셀(Cell)에서 아이오닉 5를 조립하는 모습. [사진=현대자동차그룹]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에서 움직임을 시연 중인 현대차그룹의 '아틀라스'. 무거운 차량 부품을 옮기는 모습. [사진=박지은 기자]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로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 산업화와 정보화를 거쳐 세계 10위권에 오른 한국 경제에 이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은 AI를 기반으로 한 기술의 발전 속도가 너무나 빠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추격하기보다 추격 당할 위치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에 추격을 허용한 것이다.

'퍼스트 무버'로 거듭나지 않고는 돌파구가 없는 셈이다.

국내 싱크탱크는 이를 위한 핵심 과제로 연구개발(R&D) 체질 개선, 전략적 기술 자산 확보, 그리고 융합 인재 양성을 꼽는다. 하드웨어 중심에서 'SDx(소프트웨어 정의)' 체계로의 R&D 패러다임 전환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가 정의하는 산업기술 분야 정부R&D 투자전략 탐색 연구(자동차, 로봇, 제조혁신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통해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가 모든 기능을 정의하고 제어하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기존의 개별 부품이나 제조 공정 효율화에 치중했던 R&D 방식에서 탈피해 중앙집중형 컴퓨팅 구조와 전기·전자(E/E) 아키텍처 고도화 등 지능형 하드웨어 플랫폼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이는 단순히 '기계를 잘 만드는 것'을 넘어, 소프트웨어를 통해 끊임없이 가치가 확장되는 '지능형 솔루션' 국가로의 도약을 의미한다.

기술 주권 확보를 위한 '범정부 산업정책 컨트롤타워'의 정립도 필요하다. 산업연구원(KIET)은 최근 발간한 '글로벌 환경 변화에 따른 한국 산업정책의 방향 연구(산업정책 거버넌스를 중심으로)' 보고서에서 오늘날의 산업정책이 단순한 보조금 지원을 넘어 '기술주권과 경제안보를 위한 핵심 기제'로 진화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보고서는 "21세기 산업정책의 성패는 더 이상 '무엇을 추진할 것인가'라는 전략적 선택에만 달려 있지 않다"며 "정책을 누가 설계하고 어떤 체계에서 집행하는가 하는 '거버넌스의 질'이 정책의 실효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특히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공급망 블록화에 대응하기 위해 파편화된 부처별 정책을 통합 조정할 실질적 상위 기구의 제도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제조 도메인(양산·공정·공장 운영 등)과 서비스 모델을 결합한 '융합형 서비스 설계 인재'의 양성도 과제다. 하드웨어 중심의 제조업 프레임에서 벗어나 AI가 접목된 제3기 경제에서는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을 통한 서비스 모델의 혁신이 성공의 열쇄가 될 전망이다.

KISTEP는 "최근 제조혁신 산업의 구조는 컨설팅(도메인지식인)+클라우드(AI 에이전트 솔루션 개발자 포함)+고객(제조도메인) 간 3자 공동 생태계 협업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며 "'(가칭)K-자율제조 종합 솔루션' 구축하는 등 새로운 비즈니스와 서비스 창출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종성 기자(stare@inews24.com)




주요뉴스



alert

댓글 쓰기 제목 AI 대전환 시대...'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로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뉴스톡톡 인기 댓글을 확인해보세요.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