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민지 기자] "전세가 소멸하고 월세로 가는 것은 거시적 환경에 따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일 수 있습니다. 다만 월세 중심 구조가 곧바로 선진적인 주거 문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죠. 세입자의 주거 안정성과 선택권을 보장하면서도, 임대 사업자가 지속 가능한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합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전세 사기·금리 상승·다주택 규제가 맞물리면서 개인 임대인 중심의 시장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문제는 그 빈자리를 대신할 안정적인 공급 구조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5년 기준 통계청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자가보유율은 약 61% 수준이다. 하지만 수도권 가구의 약 63%는 임대차 시장에 의존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실상 국민 절반 이상이 '세입자'인 구조다.
공공임대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민간 자본을 활용한 기업형 임대주택을 하나의 대안으로 주목하고 있다. 이미 제도화된 미국과 영국 사례를 통해 한국형 모델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세 사기 급증 이후 월세화를 겪는 임대차 시장에서 기업형 임대주택이 새로운 주거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전문 운영사가 관리하는 강남구 역삼동의 기업형 임대주택 '위브플레이스 강남역'. [사진=김민지 기자.]](https://image.inews24.com/v1/105a2aebf4bd86.jpg)
미·영은 '임대주택 산업'⋯한국은 민간 자본 참여 '1%' 수준
미국은 기업형 임대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은 대표적인 국가다. 미국 부동산 데이터 업체 CBRE에 따르면 미국의 기업형 임대주택인 '멀티패밀리(Multifamily)' 임대주택은 약 2000만 가구 규모로 추산된다. 미국 전체 가구의 약 35%가 임차 가구이며, 이 중 상당수가 전문 운영사가 관리하는 멀티패밀리 주택에 거주한다.
미국은 1960년대부터 부동산투자회사(REITs) 제도를 통해 개인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대규모 임대주택을 개발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투자자는 배당 수익을 얻고, 기업은 안정적인 자본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시장은 2026년 기준 자산 가치만 약 4조 달러(약 55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올해 1분기 기준 순영업소득(NOI) 수익률은 연 5~7% 수준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문 운영사가 수만 가구를 통합 관리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다
영국 역시 기업형 임대 시장이 빠르게 성장한 국가다. 영국 정부는 2010년대 중반부터 '빌드 투 렌트(Build to Rent·BTR) 정책을 본격 추진했다.
영국 BTR 협회(UKAA)에 따르면 2026년 2월 기준 영국에서 운영 중이거나 건설 중인 BTR 주택은 약 26만 가구에 달한다. 2018년 약 10만 가구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5년 만에 2.5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전세 사기 급증 이후 월세화를 겪는 임대차 시장에서 기업형 임대주택이 새로운 주거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전문 운영사가 관리하는 강남구 역삼동의 기업형 임대주택 '위브플레이스 강남역'. [사진=김민지 기자.]](https://image.inews24.com/v1/d88cf55cb437e4.jpg)
영국 정부는 기업형 임대 시장 활성화를 위해 세제와 도시계획 측면에서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장기 임대주택 개발 사업자에게 취득세 성격의 인지세(SDLT) 중과를 면제하고, 용적률 인센티브를 통해 사업성을 높였다.
그 결과 세입자는 최소 3년에서 최대 10년까지 장기 계약 옵션을 선택할 수 있게 됐고, BTR 주택 거주자의 만족도는 80%대 중반 수준을 기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은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하고, 세입자는 이사 걱정 없는 장기 거주 환경을 얻는 구조다.
반면 한국의 기업형 임대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5년 도입된 뉴스테이(현 공공지원 민간임대)의 지난 10년간 누적 공급 물량은 약 14만 가구 수준이다. 같은 기간 영국이 26만 가구 규모의 BTR 시장을 구축한 것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특히 순수 민간 자본으로 운영되는 브랜드 임대주택은 전국 약 3만 가구 수준으로 추산된다. 전체 임대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안팎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낮은 수익성이 민간 기업의 시장 참여를 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 보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민간 임대주택의 기대 수익률은 연 3~4% 수준이다. 하지만 법인 취득세(최고 13.2%)와 종부세 등 보유세 부담을 고려하면 실질 수익률은 1~2%대로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진미윤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현행 세제는 임대 공급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임대 사업을 하나의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세 부담을 완화하고, 공급 확대를 유도하는 인센티브 중심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임대차 시장이 기업형 임대를 새로운 축으로 흡수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공급 확대를 넘어, 사업성과 공공성을 함께 담보할 수 있는 구조 설계가 관건으로 떠오른다.
민간 자본이 지속적으로 유입될 수 있는 수익 구조를 마련하는 동시에, 그 혜택이 세입자의 주거 안정과 비용 부담 완화로 이어지도록 하는 제도적 균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민지 기자(itismjkeem@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