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전다윗 기자] "'스페셜티 원두'를 블렌딩했습니다."
요즘 저가커피 브랜드 홈페이지의 원두 소개란을 보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문구입니다. 스페셜티 원두는 국제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에서 100점 만점 기준 80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원두를 뜻합니다.
원두의 품질, 상태, 향미, 생산 투명성 등을 꼼꼼히 따진 뒤 점수화한 수치로 전체 원두의 약 7%만이 스페셜티 원두로 분류됩니다. 업계와 시장에선 통상 '고급 원두'로 분류하고, 실제로 일반 원두 대비 가격대가 높습니다. 일반 블렌딩 원두 가격이 1kg당 약 5000원 수준인 데, 높은 등급의 스페셜티 원두는 이것의 몇 배 이상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빽다방이 시그니처 블렌드 원두 캠페인을 전개한다. [사진=빽다방]](https://image.inews24.com/v1/b864126349e286.jpg)
저가커피와 스페셜티 원두.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진짜 스페셜티 원두를 블렌딩, 즉 섞어서 사용할까요? 주요 저가커피 브랜드 4사(메가MGC커피, 컴포즈커피, 빽다방, 더벤티)의 스페셜티 원두 블렌딩 유무, 함량 등을 조사해 봤습니다.
실제로 상당수 브랜드들이 스페셜티 원두를 블렌딩하고 있었는데요. 가장 함량이 높은 곳은 빽다방으로 확인됐습니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빽다방은 스페셜티 원두 함량을 기존 10%에서 20%로 늘렸습니다. 빽다방이 운영하는 베이커리 업체 빽다방연구소는 해당 스페셜티 원두 함량을 30%까지 높인 상태입니다.
빽다방이 사용하는 스페셜티 원두는 브라질에 위치한 파젠다 엄 농장에서 수입한 제품입니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엄보람 바리스타와 그 가족들이 운영하는 농장입니다.
한국계 브라질 교포인 엄 바리스타는 커피업계 올림픽이라 불리는 2023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에서 직접 생산한 원두로 커피를 만들어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커피 생산자가 WBC에 출전해 우승한 사례는 이전에도 두 번 있었지만, 직접 생산한 원두로 트로피를 들어 올린 건 엄 바리스타가 처음입니다.
![빽다방이 시그니처 블렌드 원두 캠페인을 전개한다. [사진=빽다방]](https://image.inews24.com/v1/3b6edad1f32031.jpg)
컴포즈커피는 브라질 스페셜티의 본고장으로 꼽히는 미나스제라이스 지역 농장에서 생산한 스페셜티 원두를 비율로 따지면 5% 블렌딩합니다. SCA 커핑 평가 기준 82점을 받은 원두라고 하네요. 컴포즈커피 측은 "본사 R&D부서의 수석 로스터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원두 본연의 장점을 고루 살려낸 최상의 배전포인트와 배합 비율을 찾아냈다"고 설명했습니다.
![빽다방이 시그니처 블렌드 원두 캠페인을 전개한다. [사진=빽다방]](https://image.inews24.com/v1/c6d5d39717611a.jpg)
더벤티 역시 브라질산 스페셜티 원두를 사용합니다. 더벤티 측이 정확한 비율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5% 수준의 스페셜티 원두를 섞어 사용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더벤티는 원두 특성을 살린 커스텀 로스팅 기법을 적용하고, 워터퀀칭(로스팅 후 쿨링 단계에서 물을 스프레이식으로 분사하는 공법) 기법을 도입해 원두의 향미와 손실을 방어하는 식으로 커피 품질을 높이고 있습니다.
![빽다방이 시그니처 블렌드 원두 캠페인을 전개한다. [사진=빽다방]](https://image.inews24.com/v1/e36d6cfc556fca.jpg)
저가커피 1위 메가MGC커피는 주요 4사 중 유일하게 스페셜티 원두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100% 프리미엄 아라비카 원두를 로스팅해 활용한다고만 밝혔습니다. 이밖에 다른 저가커피 브랜드들도 0~15% 수준의 스페셜티 원두를 블렌딩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2000원 이하. 가성비가 생명인 저가커피들은 왜 고급 원두의 상징인 스페셜티 원두를 찾을까요. 안 그래도 남는 것이 없을 텐데요. 업계에서는 역발상 전략으로 해석합니다. 애초에 아메리카노로 마진을 많이 남기기 어렵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아메리카노는 마진율이 좋은 상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단가 자체가 낮은 저가커피 입장에선 사정이 다릅니다. 업계가 추산하는 저가커피 아메리카노 원가율은 40% 안팎으로 식음료 중에서도 높은 수준에 속합니다. 매장 임대료,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마진은 더 줄어듭니다. 저렴한 가격에 최대한 많이 파는 박리다매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렇다고 상징과 같은 아메리카노 가격을 쉽사리 올릴 수도 없죠. 이 때문에 차라리 돈을 좀 더 써 품질을 높이는 식으로 마케팅해 더 많이 팔아보자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저가커피 브랜드에선 아메리카노가 일종의 모객용 미끼 상품 역할을 하는 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실제로 저가커피 브랜드들은 아메리카노를 제외한 메뉴들의 가격을 일반 브랜드 수준으로 설정하고, 고가의 시즌 메뉴를 출시하며 부족한 마진을 챙기는 식으로 객단가를 높이고 있습니다.
![빽다방이 시그니처 블렌드 원두 캠페인을 전개한다. [사진=빽다방]](https://image.inews24.com/v1/5cf526716df525.jpg)
현실적인 이유를 하나 꼽아보면, 투입 비용 대비 이미지 개선 효과가 뚜렷합니다. 스페셜티 원두는 모두 고급 원두라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 같은 스페셜티 원두끼리도 품질과 가격 차이가 천차만별입니다.
이 때문에 커피업계에서는 85점 미만은 엔트리급, 85점 이상 90점 미만은 고급, 90점 이상은 최고급과 같이 점수대 별로 더 잘게 쪼개 품질을 구분하기도 합니다. 저가커피에서 주로 사용하는 80점대 초중반 스페셜티 원두는 물론 일반 원두보다 비싸긴 하지만, 90점대 스페셜티 원두와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가격 차이가 큽니다. 하지만 80점짜리를 섞던, 100점짜리를 섞던 똑같은 스페셜티 블렌딩 원두로 묶일 수 있죠.
가격 경쟁을 넘어 이제 저가커피도 품질 경쟁 시대로 돌입했습니다.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다다라 차별화 요소가 절실해졌기 때문일 겁니다. 주요 저가커피 4사의 매장수는 2020년 3000여 개 수준에서 현재 1만곳을 넘어섰습니다. 가격은 다들 저렴하니, 다른 쪽에서 선택할 이유를 만들어야 합니다. 스페셜티 원두가 저가커피 시장의 새로운 경쟁 지표가 될 수 있을까요.
/전다윗 기자(dav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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