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한얼 기자]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올해를 '스페셜티 전환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범용 제품 중심의 사업 구조로는 더 이상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중국발 증설과 공급 과잉, 마진 축소가 겹치며 나프타분해설비(NCC) 기반 범용 사업 모델은 한계에 다다랐다는 진단도 이어진다.

그때마다 등장하는 해법이 있다. 바로 '스페셜티'다. 업황이 꺾일 때마다 업계가 꺼내 드는 단골 처방전이다. 고부가가치, 차별화, 포트폴리오 고도화 같은 말도 빠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정작 무엇을 스페셜티로 보겠다는 것인지, 어떻게 전환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명쾌하지 않다. 정의부터 모호하다. 기능성 소재인지, 고객 맞춤형 제품인지, 단순히 마진이 높은 제품을 뜻하는 것인지 회사마다 해석이 제각각이다. 목표도, 투자 계획도, 시간표도 뚜렷하지 않다. '체질 개선'이라는 추상적인 말만 공허하게 반복될 뿐이다.
스페셜티 사업은 단순히 제품 몇 개를 더 만든다고 되는 분야가 아니다. 고객사와 공동 개발을 거쳐 장기간 품질 인증을 통과해야 하고, 소량 다품종 생산 체제와 촘촘한 기술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대규모 설비를 돌려 물량으로 승부하는 범용 사업과는 DNA 자체가 다르다. 구체적 계획 없이 고부가 사업만 얹겠다는 접근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업계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부터 NCC 가동률을 낮추고 사실상의 감산에 들어갔다. 일부 설비 셧다운과 구조조정도 진행 중이다. 다만 이러한 조치가 업황 대응을 위한 '버티기'에 그칠 뿐, 스페셜티 중심 사업 구조로 이어지는 장기 전략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럼에도 업계의 설명은 '비중 확대'라는 표현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어느 분야에 얼마를 투자하고, 몇 년 안에 매출 구조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구체적 수치와 일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선언은 있지만 경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정부는 일방적 정책 노선을 설정하며 오히려 업계의 혼선을 키웠다. 산업통상부는 지난해 12월 ‘K-화학 차세대 기술혁신 로드맵 2030’을 발표하며 반도체·이차전지·미래차 등 분야별 전략 소재와 함께 담당 기업을 사실상 일대일로 지정해 제시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기업과의 사전 협의는 전혀 없었다. 각 사의 투자 계획이나 준비 상황과 무관하게 정부가 일방적으로 지정해 공개하는 통보식 발표였다. 이마저도 확정된 실행 계획도 아니다. 결국 정부가 판을 짜고 기업을 배치하는 방식에 머물며 정책과 현장 사이의 온도차만 드러냈다.
물론 스페셜티는 분명 필요한 길이다.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리는 범용 제품만으로는 더 이상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진입장벽이 높고 기술력이 수익으로 직결되는 특수소재는 국내 기업들이 반드시 키워야 할 영역이다.
다만 이는 단기간에 성과가 나는 카드가 아니라, 오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한 장기전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스페셜티'는 단어가 위기를 덮는 수사가 돼서는 곤란하다. 정의도, 전략도 없는 스페셜티 전환은 희망사항에 가깝다.
/이한얼 기자(eo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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