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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NOW] '탄소 영수증' 면죄부 시대는 끝났다


탄소 혁신적 감축→기업의 생존 능력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 잔, 생수 한 병, 심지어 휴가를 위해 끊는 비행기 티켓에도 ‘탄소중립(Carbon Neutral)’이라는 라벨이 마치 훈장처럼 붙어 있다.

기후위기에 민감해진 소비자들은 이 문구를 기업의 적극적 환경 보호 증거로 신뢰하며, 조금 더 비싼 가격이라도 기꺼이 지불한다.

우리가 믿어온 이 신뢰의 기반은 생각보다 훨씬 위태로운 구조 위에 서 있다. 그동안 기업들이 내세운 탄소중립의 핵심 도구는 ‘탄소상쇄(Carbon Offsetting)’였다. 이는 기업이 외부 프로젝트에서 발행된 배출권을 구매해 자사의 배출량을 장부상에서 지우는 방식이다.

최근 영국 가디언지는 네덜란드 항공사 KLM이 조림 사업의 상쇄 효과를 과장한 광고로 법원에서 허위광고 판결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판결의 핵심은 명확했다. 탄소상쇄로 비행의 환경 영향을 완전히 지울 수 있다는 주장은 모호하며, 실질적 감축 활동과 관련이 없는 ‘마케팅 수사’에 불과하다는 법적 경고였다.

이러한 개별 기업의 사례를 넘어, 탄소상쇄 시장 자체의 신뢰성 또한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전 세계 자발적 탄소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인증기관 베라(Verra)를 둘러싼 이른바 ‘유령 크레딧’ 스캔들이 대표적이다.

기후 전문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베라는 석유 메이저 셸(Shell)과 협력한 중국 쌀농업 프로젝트의 실패를 덮기 위해 다른 실패한 프로젝트에서 가져온 약 96만 톤의 배출권을 보상에 사용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실질적 감축 없이 숫자만 맞추는 “공기를 다른 공기로 대체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상쇄에 기반한 기업의 친환경 주장은 이제 ‘그린워싱(Greenwashing)’의 핵심 타깃이 되고 있다.

신뢰 붕괴는 곧바로 강력한 규제의 칼날로 이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4년 2월 ‘소비자 역량 강화 지침’을 통해 외부 탄소상쇄에만 의존해 제품이 ‘탄소중립적’이라고 광고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이제 유럽 시장에서 기업이 탄소중립을 주장하려면 막연한 희망 사항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검증 가능한 실질 감축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역시 2025년부터 시행된 ‘자발적 탄소시장 공시법(AB1305)’을 통해 상쇄 배출권을 사고파는 기업들에게 프로젝트의 위치, 감축 방식, 인증 여부 등 세부 데이터를 대중에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하루 최대 2500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 독일 연방대법원 또한 감축과 상쇄를 동등하게 취급하는 표현을 금지하며, 기업의 기후 관련 광고는 소비자에게 오인 가능성이 없도록 구체적 설명을 포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는 외부 상쇄 의존 모델이 더 이상 법적·평판적 리스크를 견디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기업들이 찾아낸 대안이 바로 ‘인세팅(Insetting)’이다. 인세팅은 외부 프로젝트에서 배출권을 사는 대신, 기업의 공급망(농업, 생산, 물류 등) 내부에서 직접 탄소 감축 활동을 실행하고 그 성과를 내재화하는 전략이다.

상쇄가 단순한 ‘비용 지출’이자 ‘책임의 외주화’라면, 인세팅은 공급망의 지속 가능성과 품질을 높이는 ‘장기적 투자’로 평가받는다.

글로벌 식품 기업 네슬레의 ‘네스카페 플랜 2030’은 인세팅의 정석을 보여준다. 네슬레는 커피 농장 주변에 토착 나무를 심는 혼농임업(Agroforestry) 프로젝트를 통해 2026년까지 200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이는 토양의 탄소 흡수력을 높여 스코프3(Scope 3) 배출량을 직접적으로 줄일 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로부터 커피 작물을 보호해 원재료의 안정적 수급이라는 비즈니스적 이익까지 동시에 확보하는 결과를 낳는다.

물류와 해운 분야에서도 인세팅의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의 해운사 MOL과 독일의 DHL이 도입한 ‘북 앤드 클레임(Book and Claim)’ 시스템이 좋은 예다.

이 시스템은 저탄소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이나 항공기의 실제 운항 경로와 관계없이, 해당 운항으로 발생한 탄소 감축 실적을 인증서 형태로 고객에게 배분하는 방식이다.

고객은 자사가 이용하는 선박이 직접 저탄소 연료를 쓰지 않더라도, 공급망 파트너인 MOL의 저탄소 전환에 기여함으로써 투명하게 감축 실적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는 기존의 외부 상쇄와 달리 감축 활동이 가치사슬 내부에서 실질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높은 신뢰성을 얻고 있으며, 물류 산업 전반의 탈탄소화를 가속화하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구매사들이 공급망 전반에 걸친 과학 기반 감축 목표(SBTi) 이행을 요구하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한국 기업들도 이제 ‘사는 탄소’에서 ‘내재화하는 탄소 경쟁력’으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공급망 전체의 배출 데이터를 정확히 측정해 어디서 가장 많은 탄소가 새어 나가는지 파악하는 가시성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

이광욱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신사업그룹장). [사진=법무법인 화우]
이광욱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신사업그룹장). [사진=법무법인 화우]

데이터가 확보됐다면, 그 다음은 협력사와 공동 대응이다. 단순한 요구를 넘어 기술적·재정적 지원을 병행하는 협력 모델을 구축하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글로벌 규제 기관과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탄소 영수증 한 장으로 면죄부를 받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가치사슬 내부에서 탄소를 얼마나 혁신적으로 줄이느냐가 기업의 진정한 생존 능력이며, 인세팅은 그 험난한 기후 격변기에 우리 기업을 지켜줄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될 것이다.

이광욱 변호사( 법무법인 화우 신사업그룹장) kwlee@yoon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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