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창재 기자] 겨울 추위가 계속되는 병오년 새해. 세상살이는 온통 소란스러워도 내 글방에는 언제나 밝은 햇볕, 따뜻한 녹차, 한 권의 시집이 3총사로 자리하고 있다.
이른 아침 책갈피를 넘기다 눈과 마음을 다잡는 시 한 편 '그냥'을 읽으며 '우린 왜?'라는 물음으로 말고삐를 쥐고 새해 문을 열었다. 그냥/노만 저으련다./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않으련다./내 운명이 어디로 가느냐/그건 알 필요 없이/그냥 앞만 보고 간다. '그냥'을 읽으며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우리나라 지도층 사람들이 지향하는 제일 좋은 곳이 어디일까? 큰 감투를 쓰고 있는 벼슬아치 관료들, 법조계 판·검사, 많이 가진 기득권층, 사회적으로 내노라는 사람들이 대체로 지향하는 곳이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 구청장, 군수 등이 역임되는 '선출직 공무원'이다.
특히 이름 석 자가 언론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는 모두 정치다. 세상 어떤 가치도 정치적 가치보다 열등함을 그들은 몸소 실천으로 증명하고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회 도처에는 정치를 하고자 하는 몽상가들이 가득하다. 내노라 하는 명강의 교수도, 유명세를 탄 법관들 모두 국회의원과 도백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속되게 말하자면 어떤 고관 직위와 교수 직업도 국회의원직이나 도지사. 시장보다 훨씬 낮은 계급이란 걸 뚜렷이 보여 준 셈이다.
이것은 곧 권력에 젖은 익숙한 사람들, 권한에 취한 사람들이 부와 명예ㆍ 권력을 다 갖겠다는 욕심 때문이다. 우리 사회 정치 과잉이 부른 웃지 못할 기현상이다.
어디 그뿐인가 지자체를 견제하고 주민 권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지방의회 의원 자리도 정치를 지향하는 사람들로 시끌벅적 문전성시다. 특히 우리 정치 구조는 특정지역은 공천이 곧 당선과 연관되는 선거구조를 되어 있다.
그들은 총선 때는 국회의원의 선거운동원 역활을 하며 주민 권익은 둿전이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국민 85%가 지방의회 선거때 후보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정당만 보고 투표한다고 한다. 이처럼 정치를 향한 몽상병자들이 늘어난다면 우리 사회의 발전이란 단어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선진 사회일수록 훌륭한 판ㆍ검사나 유명 교수들 사회적으로 성공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정치에는 곁눈짖을 하지 않는다는 윤리의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풍토는 그러지 못하다. 정치적 당선을 만사형통 완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윤흥길이 쓴 '완장'이란 제목의 단편 소설에 주인공 남자는 어느 계기에 완장의 위력에 심취하게 된다. 팔뚝에 완장만 두르면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다는 막강한 권력의 맛을 동경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땅 주인에 고용되어 드디어 연못지기가 된다. 팔뚝에 완장을 두르고, 연못에서 함부로 낚시질하는 사람들을 개 패듯 두들겨 패고, 미친 듯 쫓아 버리는 권한 행사자가 된 것이다.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심지어는 동네 할아버지가 심심풀이로 연못 근처에만 가도 행패를 부린다. 나중에는 땅 주인이 연못 근처에서 천렵을 한 대도 완장의 위력을 내세워 "나가라!"고 주먹질을 했다. 완전히 완장의 맛에 취해 완장병 중독자가 된 셈이다.
우리 사회 특권층에 완장병이 만연하고 있다.
이미 완장 맛을 본 그들은 더 큰 완장을 차기 위해 정치를 아수라판으로 만들고 있다. 일부 엘리트들은 불을 보면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비 처럼 보인다. 6월 지방선거가 있어서인지 한 해를 시작하는 연초부터 청와대와 정부 요직에 종사하며 TV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혁혁한 인사들이 줄줄이 사표를 내며 지방선거에 뛰어들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그들에게 '청와대 근무는 장식이고 스펙 쌓기에 불과했다' 라고 한다. 소위 잿밥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청와대가 '출마 대기소' 라거나 '선거 예비 캠프'라는 비아냥이 나오겠을까. 이런 인재들에게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수장을 내맡기기엔 불안하다.
청와대 측근들의 출마 열풍 배경에는 선출직인 지방 자치단체장을 더 많이 진출시켜 내편 정치로 국정의 고삐를 다잡으려는 당리당략의 산물이다.
당선이 봉사직이 아닌 군림이기에 그들의 출사표는 하나 같이 거창하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라는 ‘국가’와 '국민팔이'를 하고 있다. 지역 주민과 함께 우리 고장을 최고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허언을 얼굴색하나 변하지 않고 하고 있다.
권력지향과 쟁취가 자신의 영달을 위한다는 말은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내 고장과 주민을 위한다는 사람들은 들끓어 넘치는데 왜 우리 국민 입에서 걱정과 한숨이 나오는지 그 까닭을 똑똑한 그들이 알고는 있는지 의심스럽다. 6월 지방선거는 거짓과 헛소리로 난장판이 될까 걱정스럽다.
제갈량이 남긴 문장 중 후세의 사람들이 '천하의 명문'이라고 손꼽는 두 번째 출사표에서 "신은 다만 몸을 죽을 때까지 나라를 위해 애쓸 뿐, 이 일에 성공과 실패, 이로움과 해로움을 미리 내다 보는데 밝지 못합니다." 라고 겸손하게 썼다. 출사표도 시대 따라 변하는 것인지 지방선거에 도전하는 자(者)들의 출마변은 들을수록 가관이다. 도대체 겸손이라고 찾아볼 수 없다.
"최고 도시를 완성하겠다." "현 정권의 성공을 위한 단체장이 되겠다." "시대가 요구하는 단체장, 리더가 되겠다" 고 거창한 일성(一聲)을 외친다.
말처럼 다 잘 할 수 있다면 현 단체장들은 다 못하는 사람들만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자기만 혼자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한다고 내 고장이 바뀔 것 같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시 도지사가 특정 세력의 전유물인가. 자신만이 지역발전을 위할 수 있다 자처하며 너도, 나도 완장을 차려 하고 있다. 그들이 경쟁하듯 쏟아내는 미사여구가 말장난처럼 들리고, 솔직하지 못함에 실망을 느낀다.
정치인들은 왜 되지도 않는 것이 될 것처럼 말해 국민을 현혹하는가. 듣는 국민이 바보인가. 언제까지 그들이 벌리는 소극(笑劇)을 봐야 하나. 밝은 햇볕처럼, 따뜻한 녹차같이 깊은 맛을 주는, ‘그냥 국민만을 보며 열심히 일하고 결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겸손이 아쉽다.
/대구=이창재 기자(lcj123@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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