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한얼 기자] 지난해 석유화학 업계 전반에 걸쳐 구조조정과 비용 절감 등 이른바 ‘군살 빼기’가 시작된 가운데, 올해에는 본격적인 구조개편이 이어질 전망이다. 그동안 수익성 악화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돼 온 나프타분해설비(NCC) 감축 물량이 최종 확정되고, 이에 발맞춘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제도 개선 방안도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수익성을 잠식해 온 범용 NCC 중심의 매출 비중을 줄이고, 공급과잉 국면에 대응하기 위해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제품으로의 사업 전환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다만 글로벌 경기 둔화와 중국발 공급 압박이 지속되는 만큼 이러한 체질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올해 역시 업황 침체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석화 구조조정안 본격화…정부 맞춤형 지원책 공개

정부와 업계가 지난해 석유화학 구조개편 윤곽을 마무리 지은 만큼 올해 업계는 구조조정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해 8월 정부와 업계는 NCC 생산량 최대 370만t 감축과 고부가가치 전환을 골자로 한 자율협약을 맺은 바 있다.
지난해 12월 여수·대산·울산 전국 3대 산단별 사업재편안 제출이 마무리됐다. 세부적으로 LG화학은 여수산단에서 GS칼텍스와 협력해 합작법인(JV) 설립을 추진하고, 노후화된 LG화학 1공장(연산 120만t)을 폐쇄하는 방안을 재편안에 담았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여천NCC 역시 가동이 중단된 3공장(47만t) 폐쇄와 함께 롯데케미칼 여수공장과의 통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며, 추가 폐쇄 대상에 따라 최대 170만t 규모의 생산능력 감축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산산단에서는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110만t 규모 설비 폐쇄를 이미 시사한 데 이어, 한화토탈과 LG화학도 공동 조정 또는 협업 모델을 재편안에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산단에서는 SK지오센트릭, 대한유화, 에쓰오일이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다운스트림 최적화를 우선 추진한 뒤 단계적으로 NCC 감축에 나서는 방안을 마련했다.
다만 업계가 제출한 구조개편안은 초안 형태로 올해 1분기 안에 최종 사업재편방안이 정부에 제출될 전망이다.
정부는 '선 자구방안 후 지원대책'을 강조한 만큼 구조개편 마무리에 따라 기업에 걸맞는 맞춤형 지원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관측된다. 기업들이 최종 사업재편계획서를 제출하면 사업재편계획심의위를 통해 승인 여부를 심의하고, 승인 기업들을 대상으로 금융·세제·R&D·규제완화 등 지원 패키지를 동시에 발표할 전망이다.
석화 수익성 증대할 스페셜티 전환에 집중

올해 석유화학 업계는 범용 제품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제품으로의 전환에 한층 속도를 낼 전망이다. NCC 감축이 가시화되면서 범용 에틸렌 기반 증설 경쟁 대신, 수익성과 기술 장벽이 높은 첨단 소재와 차별화 제품을 중심으로 한 포트폴리오 재편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전지소재, 친환경·바이오 플라스틱, 고기능성 합성수지 등 상대적으로 경기 변동에 덜 민감한 스페셜티 분야를 차세대 성장축으로 낙점하고 투자 방향을 선별적으로 조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단기적인 설비 축소 국면과 병행해 중장기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정부 역시 구조조정 이후 산업 체질 개선의 핵심 수단으로 스페셜티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승인된 사업재편 기업을 대상으로 연구개발(R&D) 지원과 실증 사업, 세제·금융 인센티브를 연계해 기술 고도화와 신사업 안착을 뒷받침할 계획이어서, 민관 공조를 통한 고부가가치 전환이 내년 석유화학 산업의 주요 흐름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업황 반등은 여전히 요원…시황도 여전히 먹구름

그럼에도 올해 업황은 지난해에 이어 뚜렷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측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2025년 이후에도 에틸렌을 중심으로 한 기초유분 증설이 이어질 예정으로, 공급 부담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규 설비 상당수가 중국에 집중되면서 동북아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내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국내 업체들의 경영 환경도 녹록지 않다. 한국 석유화학 설비는 원가 경쟁력 측면에서 중동·북미는 물론 중국과 비교해도 불리한 위치에 있어 업황 부진이 이어질 경우 수익성 방어에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올해 하반기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가동을 앞두고 국내 에틸렌 생산능력이 추가로 늘어날 예정이어서 공급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정부와 업계가 추진 중인 구조조정 효과 역시 단기간에 나타나기 어렵다는 점도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주요 산단에서 사업 재편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합작법인 설립과 설비 통합 등 실제 실행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뿐더러 이에 따른 수익성 증대 효과도 단기간에 나타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 교수는 "석유화학 위기를 촉발한 중국의 증설과 중동의 공급 과잉, 미국의 셰일가스 확대 등 구조적 요인이 전혀 바뀌지 않아 올해 상황도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설비 감축과 구조조정은 단기간에 끝낼 수 없는 만큼,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갔고 기업들은 지원을 바탕으로 고부가 스페셜티 중심으로 체질 전환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한얼 기자(eo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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