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이 찜한 'AI 점장'…자율경영 시대 연다

[아이뉴스24 박은경 기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이마트의 미래를 이끌 최종병기로 '자율형 인공지능(AI)'을 선택했다. 운전자가 핸들을 잡지 않아도 차가 스스로 목적지를 찾아가는 자율주행차처럼, 지시 없이도 AI가 스스로 물건을 발주하고 마케팅 전략을 짜는 이른바 '자율 경영' 시대를 열겠다는 포석이다.

23일 신세계그룹에 따르면 정 회장은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워싱턴 D.C.와 플로리다, 로스앤젤레스(LA)를 잇달아 방문하며 글로벌 정·재계 핵심 인사들과 연쇄 회동을 가졌다. 이번 출장은 인공지능과 콘텐츠 지식재산권(IP)을 결합해 그룹의 체질을 테크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정 회장은 플로리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만난 데 이어, 구글 딥마인드 출신들이 설립한 자율형 AI 선도 기업 '리플렉션 AI'의 창업자 미샤 라스킨과 전격 회동했다.

이번 만남은 단순한 기술 검토를 넘어 전통 유통 강자인 이마트 그룹이 자율형 AI 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에이전트(Agent)' 기술과 결합했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에이전트란 인간의 구체적인 지시 없이도 AI가 스스로 목표를 이해하고,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자율형 지능'을 뜻한다. 시키는 일만 대행하는 똑똑한 도구를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상품을 기획하고 마케팅까지 하는 이른바 'AI 경영인'에 가깝다.

라스킨은 정 회장을 만나기 위해 직접 플로리다를 찾아와 자사 기술의 유통 이식 방안을 제안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정 회장도 이마트를 비롯한 신세계그룹의 주요 사업에 리플렉션 AI 접목을 검토하며 큰 기대감을 보였다.

신세계그룹은 이 기술을 상품 기획(MD)부터 공급망 관리(SCM), 고객 서비스까지 전 단계에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 회장이 자율형 AI 도입을 꺼내든 건 수익성과 경영 효율성 측면에서다. 고물가·고임금 기조 속에서 인적 판단 오류로 발생하는 손실을 최소화해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마트는 2021년까지만 해도 영업이익이 3000억원대를 유지했으나, 2022년부터는 인건비 상승과 고물가 장기화로 급감하더니, 2023년에는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부터 전사적인 비용 절감을 통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올해 3분기 누적 3324억원의 영업이익을 회복했으나 목표치인 '1조원' 시대 진입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모델의 돌파구는 이미 글로벌 유통 공룡 월마트가 입증했다. 월마트는 2023년부터 생성형 AI와 자율형 에이전트 기술을 전면 도입해 '비용의 혁명'을 일으켰다. 더그 맥밀런 월마트 CEO는 지난 8월 "AI 도입으로 8억 5000만 개의 제품 카탈로그 데이터를 정리하는 데 필요한 인력을 기존 대비 100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를 통해 월마트는 지난해 매출액 대비 판관비율을 약 0.3%포인트(p) 낮췄으며, 이는 연간 약 2조6000억원(약 19억 달러)의 순비용 절감 효과로 이어졌다.

이마트의 매출의 상당 부분이 인건비, 물류비, 임차료 등 고정 비용으로 빠져나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율형 AI 도입 시 큰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올해 3분기 기준 이마트의 판매관리비는 매출액의 29.8%에 달한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자율형 AI 적용을 위한 에이전트 개발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유통의 모든 단계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글로벌 네트워크와 기술 협력을 통해 그룹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