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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봤습니다] 김주원 경기친환경영농조합 대표…백암 토박이 농사꾼, 쌀에 ‘미(米)치다’


아버지대 시작한 장평정미소→영농조합법인으로 성장
친환경 재배부터 도정, 판매까지…1년 365일이 짧다
3월 누룽지향 품은 ‘여리향쌀’ 용인특례시 특산품 지정
최근 조합법인 상대 무차별 민원 제기에 심적 고통 커

[아이뉴스24 정재수 기자] 용인특례시 처인구 백암면의 토박이 중 토박이.

지난 17일, 경기친환경영농조합법인 김주원 대표를 만났다. 1978년생인 김 대표는 백암유치원, 백암초, 백암중, 백암고를 졸업한 그야말로 뼛속까지 용인 토박이다.

2000년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25년 차. 그도 처음엔 농사일이나 영농조합법인 대표가 될 줄은 몰랐다.

김주원 경기친환경영농조합 대표가 여리향 쌀 제품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정재수 기자]

지난 3월, 김 대표가 법인의 미래 먹거리로 집중하고 있는 ‘여리향쌀’이 용인특례시 특산품으로 지정되는 경사가 있었지만, 최근 법인을 상대로 인근 주민이 무차별적인 민원을 제기하면서 물질적, 심리적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김 대표는 “특산품 지정 등 좋은 일도 있지만, 민원으로 인해 피가 마를 정도”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 농민들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아버지부터 지켜온 70년 가까운 세월의 정미소를 멈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가업인 장평정미소를 바탕으로 농업, 유통, 그리고 영농조합법인을 스스로의 손으로 일구고 있다.

논 대부분은 임대한 땅이지만, 백암면에서 6만 평 가까운 논을 직접 경작하며 지역 농민들과 함께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실천하고 있다.

김 대표의 여정은 IMF 한파와 코로나 등으로 결코 순탄치 않았다.

그는 “아버지는 평생 정미소를 운영하셨고, 70년 가까이 이어진 가족의 생업이었죠. 그런데 RPC(미곡종합처리장)가 생기고 대형 유통망이 확산되면서 정미소는 설 자리를 잃어갔다. 특히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정미소는 파산 위기에 몰렸고, 군 복무를 마친 후 자연스레 가업을 물려받게 된 것”이라고 회상했다.

정미소를 물려받은 뒤 첫 10년은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버텨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판로 개척부터 시작했고, 도정보다는 유통을 먼저 배웠다.

믿었던 거래처에서 약속어음을 받고도 대금을 못 받은 일, 외상으로 쌀을 넘겼다가 손해 본 경험 등 세상 물정을 뼈저리게 배운 시간이었다.

김주원 대표가 생산을 마친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정재수 기자]

그렇게 조금씩 매출을 올리며 기반을 다진 끝에 2009년 ‘경기친환경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김 대표는 “지역 이름이 붙은 정미소는 인지도가 낮은게 현실이죠. 그래서 ‘경기도’와 ‘친환경’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워 ‘경기도 친환경 쌀’이라는 콘셉트로 판로를 개척했다. 당시 40여 개 학교에 쌀을 공급하며 안정적인 기반을 다졌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입었죠. 매출의 30~40%를 차지하던 학교 급식 공급이 끊기면서 회사도 흔들렸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학생 수 감소로 인해 학교 공급은 예전 같지 않다.

그러던 중, 코로나로 인한 여유 시간이 오히려 또 다른 계기가 됐다.

앞으로 농사를 지을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을 체감한 그는 조카와 함께 직접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임대한 논에서 시작한 농사는 어느덧 6만 평 규모로 커졌고, 백암면 내 최대 재배 면적을 기록하게 됐다.

20년 동안 정미소를 운영하며 도정과 유통만 알던 그는, 이제 농사 현장에서도 전문가가 됐다.

김 대표는 “기술센터와 협업하며 새로운 품종이 나오면 직접 심고 테스트해봤다. 농민들에게 소개할 때는 말보다는 실제 작황을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이었죠. ‘여리향’이라는 품종은 맛과 향, 찰기를 모두 갖춘 쌀로 수확량도 나쁘지 않아 농민들에게 추천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드론을 활용한 방제 시범은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라고 직접 시연하며 기술을 전파했고, 농민들도 그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3월, ‘여리향쌀’이 용인특례시 특산품으로 지정되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정말 뜻밖의 소식이었고 여리향이 특산품으로 제정돼 정말 기뻤다. 여리향쌀이 용인을 넘어 전국적으로 사랑받는 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누룽지향이 특징인 여리향. [사진=경기친환경영농조합]
누룽지향이 특징인 여리향. [사진=경기친환경영농조합]

현재 김 대표는 ‘여리향’을 영농조합법인의 미래 먹거리로 보고 집중하고 있다.

김 대표는 “올해 계약재배 물량이 약 200t이다. 지역 농민들과 함께 재배한 물량으로 10kg 단위 대량 포장도 준비 중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연간 1000t 수확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야 대형 유통망에 안정적인 물량을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포장지 디자인까지 마무리했고, 여리향으로 제대로 승부를 볼 생각”이라고 전했다.

김 대표는 “여리향쌀은 찰기는 물론, 밥을 지을 때 누룽지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 밥맛은 정말 매력적이다”고 소개했다.

그는 “여리향쌀로 밥을 처음 지어 먹었을 때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 경험을 살려 브랜드 이름도 ‘여리향 밥맛에 미(米)쳤다’로 정했죠. 다소 파격적인 표현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밥맛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 한자 ‘米’를 활용해 ‘미쳤다’를 재해석했고, 단일 품종 진공 포장으로 품질과 향을 최대한 지켜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여리향 품종으로 50톤을 생산했고, 올해는 2.5kg 소포장 상품 제작으로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간다.

김 대표는 “쌀은 솔드아웃이라는 개념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유통의 연속성을 위해 재고 확보와 브랜드화를 함께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그의 첫 브랜드는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갓밥’이다. “갓 지은 착한 밥”이라는 뜻을 담은 갓밥은 G마켓, 쿠팡, 11번가, 옥션 등 주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들과 만나며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김주원 대표가 쌀기부를 통해 받은 감사패와 상장. [사진=정재수 기자]

김 대표는 지역 사회에 대한 기부 활동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용인특례시장, 시의회, 도의회 표창도 받았다.

그는 “사실 쑥스럽죠. 백암에서는 오래전부터 황규열 어르신이라는 분이 꾸준히 쌀을 기부해 오셨다. 처음엔 도정비나 포장비, 배송비 정도만 도와드렸는데 그게 방송 인터뷰로 알려지면서 저도 용기를 내 기부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그에게 가장 큰 시련이 찾아왔다.

김 대표는 “몇 년 전, 조합법인 출입구 쪽으로 건물을 짓고 자리를 잡은 분이 계신데 이분이 조합에 대해 민원을 너무 많이 제기하고 있다. 돈도 돈이지만, 마음이 너무 힘듭니다. 지금은 정말 피눈물 나는 심정”이라고 전했다.

그는 “지난해 폭설로 건물이 무너지는 일도 있었는데, 민원으로 상황이 더 악화됐다. 영농조합 건물이 아버지 때부터 조금씩 증축한 구조라 허가받지 않은 부분도 있다. 물론 그 점은 저희 잘못이지만, 무차별적인 민원은 너무 가혹하다”고 토로했다.

김 대표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조치를 취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민원인이 계속 사진을 찍어 구청, 시청에 제보하고 있어 정말 피가 마르는 심정이다”고 밝혔다.

특히 “건조기는 다 철거해야 할 판이다. 물론 부술 수는 있지만, 그러면 인근 농민들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저희가 수매해 건조하고 도정까지 하고 있지만, 건조장이 없으면 다른 곳으로 가야 하죠. 그런데 그런 곳은 어르신들을 잘 받아주지도 않고, 설령 받아줘도 푸대접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민원인과 대화도 시도해봤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구청이나 시청이 단지 법대로만 판단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결해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수 십 차례 민원으로 인해 최근 건물 뒤편을 다시 정비한 모습. 막대한 비용이 지출되면서 영농조합법인 경영에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사진=정재수 기자]

하지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실전에서 단단히 다져진 그의 쌀은 단순한 밥 한 공기가 아니다. 그 밥 한 공기에는 김 대표의 인생과 백암 농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는 “쌀은 단지 상품이 아니다. 고향을 지키고, 지역 농민들과 함께 성장하며, 밥 한 공기에 진심을 담아온 시간의 결과물이죠. ‘밥 정말 맛있다’는 말 한마디에 책임감을 느끼고, 이 일이 제 천직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버텨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농업이 살아야 지역이 살고, 지역이 살아야 농촌의 미래가 있다”는 믿음으로 묵묵히 ‘농자천하지대본’을 실천하고 있다.

/용인=정재수 기자(jjs3885@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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