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이순병의 고언(苦言)] 윤석열과 이재명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저는 지난해 말 다음과 같은 짧은 글을 지인 몇 분의 카톡방에 올렸습니다. "윤석열의 불법적 계엄과 이재명의 합법적 내란은 어느 쪽이 더 위험한가? 자꾸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떠오른다. '죽어나는 건 조조 군사'라고, 애먼 국무위원들만 목이 날아가고 있다."

대통령이나 대표라는 직함을 생략하는 것에 대하여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위의 글을 읽고 제가 말하는 불법과 합법의 근거가 뭐냐는 분도 있고, 그래도 윤석열은 진정성이 있지 않느냐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두 사람의 지지세력들이 상대방에게 갖고 있는 생각들을 나타내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꺼낸 것은 지지세력들을 동원하여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역사적 과오와 그 결과를 생각해보자는 뜻이었습니다.

취임 후 이어진 미숙함으로 민심을 잃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사법적 위기에 몰린 이재명의 줄 탄핵, 그리고 대약진운동에 실패한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이 세 가지 사태는 자기에게 주어졌다고 믿는 권한을 이용해 위기를 돌파하려 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윤석열은 국민이 직접 뽑은 국가 대표이고, 이재명은 당원들이 뽑은 당 대표입니다. 법률 전문가이지만 걸어온 길은 서로 달랐습니다. 한 사람은 너무 빨리 속내를 드러내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도대체 속내를 알 수가 없어,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주는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선 당시 윤석열 지지자들은 문재인이 저지른 수많은 반헌법적 행위들을 빨리 정리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윤석열이 실기하는 바람에 불씨가 다시 살아나 결국 지금 같은 대형 화재로 번졌습니다. 윤석열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그의 국가관이나 정치적 목적은 순수하지만 수단이 매번 서툴렀음을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나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는 못합니다. 정치 상황이 국가 운영에 큰 장애가 되자, 계엄군을 국회에 들여보내는 강수를 두었습니다. 송곳으로 급소를 노리지 않고 망치를 들이댄 겁니다. 노회한 이재명이 윤석열의 성정이나 정치적 경험 부족을 놓칠 리가 없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도 윤석열의 미숙한 수단이 또 이재명에게 걸려든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반면에 이재명은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인지 솔직히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무릎을 칠만큼 많은 수단을 구사하고 있음을 국민들은 알고 있습니다. 자기를 따르던 부하들이 생사를 헤매어도 본인은 빠져나가는 전술을 구사하는 비정함도 있습니다.

목적 없는 수단은 길 모르고 운전하는 것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국가를 그렇게 몰고 가면 어떤 결과가 올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중국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의 사망으로 끝이 났고, 등소평의 등장으로 역사 책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덩샤오핑은 마오의 공로가 7, 과오는 3으로 평가하여 더 이상의 논란을 잠재웠습니다. 제가 본 관련 책들도 대부분 그런 식으로 얼버무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억하는 것은 그 비극적 내란을 겪고 난 뒤 때린 자와 맞은 자가 길에서 만났지만 서로 알면서도 그냥 스쳐지나 가기만 했다는 대목입니다. 때린 자도 말이 없고, 맞은 자도 말이 없었지만, 그들이 말이 없던 이유는 서로 달랐을 겁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하나의 결론은 낼 수 있었습니다. "맞은 놈만 억울하다." 그러니 그런 세태를 여러 번 겪다 보면 세상을 억울하지 않게 사는 방법만 무성한 나라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번 사태를 보면서 제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비상계엄으로 너무나 소중한 국가 인재들이 버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장관이나 장군을 키우기 위해 국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은 자기의 소신에 따라 의견을 낼 수 있고, 그것이 명령불복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편 군인은 다른 의견을 낼 수는 있지만 일단 명령이 떨어지면 그대로 이행해야 합니다. 명령에 목숨을 거는 것이 군인의 도리이자 명예입니다. 전쟁에 임해서도 그 전쟁의 당위성 판단은 대통령과 국회의 몫입니다. 그런데 이번 계엄 사태에 동원되었던 장군들이 국회에서 계엄의 정당성에 대한 답변을 요구받았을 때 그들의 태도가 어떠했는지는 여기서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왕을 잘못 만나면 애먼 문관과 무관들의 목숨이 날아갔지만, 지금은 왕이 아니라 국회가 장관과 장군들의 목숨을 쥐락펴락하고 있습니다.

국회가 이렇다 보니 대통령 관저 앞에서 관계 기관끼리 맞서는 기막힌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어른 없는 집안꼴이 된 겁니다. 저는 법을 잘 모르지만, 하이에크의 책을 읽고서 법 사상에서 대하여 배운 것이 있습니다.

20세기 영국의 정치 철학자이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하이에크는, 사회철학의 요체는 질서의 상호의존성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지혜와 관용'으로 받아들입니다. 사회주의에 맞서서 자유주의의 가치를 믿었던 그는 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간 정신이 진화의 산물이듯, 사회제도를 설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법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닌, 사회질서의 근간이 되는 규칙, 즉 법에 왜 복종해야 하는 지를 밝히는 것이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한 마디로 법은 함께 살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지 최선의 도구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이 장악한 국회가 하는 행위는 결코 함께 살기 위한 수단도 도구도 아닙니다.

막강한 입법권을 갖고 있는 민주당이 지금 하는 행위는 하이에크가 바랐던 법의 정신에 반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안타까운 제도적 약점입니다. 보수적 국민들은 전임자 문재인의 많은 범헌법도 임기 동안 참았습니다. 참고 싶어서 참은 것이 아니라, 참아야만 대의민주주의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윤석열입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박근혜에 이어 국민이 직접 뽑은 지도자를 또 끌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법으로만 유지되는 나라는 좋은 나라가 아닙니다. 손자병법에서는 전략 중 가장 낮은 단계는 군율로 다스리는 것이고, 최상의 전략은 민심을 얻는 것이라 했습니다. 중국을 처음 통일한 진시황은 군주를 뺀 모든 사람들이 법을 따르도록 하는 엄혹한 법치주의로 강국으로 만들었지만, 그가 죽은 지 5년만에 진 나라는 멸망했습니다. 물론 지금 한국은 최고권력자도 법 아래 있습니다. 그 누구도 법 위에 있으면 안 되지만, 지금 민주당은 법을 만들어 법 위에 있으려고 합니다.

대통령의 부인이 300만원짜리 가방을 받은 것은 법적 판단을 떠나 결코 잘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만한 일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은 윤석열입니까, 이재명입니까.

불교에서는 삶에 고통을 주는 3가지 요인을 '탐냄, 화냄, 어리석음'이라고 가르칩니다. 어떤 것이 더 나쁘냐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한 가지 질문은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알면서 나쁜 일을 저지르는 것과,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 모르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가."

지금 전 세계의 정치인들과 정치학자들이 한국 국민들이 이 위기를 어떻게 풀어나갈 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70점이냐 60점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100점 아니면 0점인 선택지밖에 없는 시험처럼, 잘못되면 회복이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아픔을 슬기롭게 이겨내어 정치학 교과서에 새로운 민주주의의 성공사례로 실리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주요뉴스



alert

댓글 쓰기 제목 [이순병의 고언(苦言)] 윤석열과 이재명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뉴스톡톡 인기 댓글을 확인해보세요.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