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종성 기자] 올해 주주총회 시즌이 임박하며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기업들도 대응에 고심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하며 기업가치 제고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행동주의 펀드 여러 곳이 연대해 한 기업을 공격하는 울프팩(wolfpack·늑대 무리) 전략도 전격적으로 활용되는 모양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다음달 15일 열리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들에게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들이 제안한 '자사주 소각'과 '현금배당' 등의 안건에 대해 반대하는 의결권 위임을 해달라며 주주들의 표를 모으고 있다.
삼성물산에 주주제안을 한 곳은 영국계 자산운용사인 시티오브런던, 미국계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 한국계 안다자산운용 등 5곳의 행동주의 펀드 연합이다. 시티오브런던 등은 해외에서도 일관되게 주주환원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행동주의 펀드로 평가받는다.
이들은 삼성물산에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보통주 1주당 4500원(우선주 4550원) 배당 등을 요구하고 있다. 앞서 나온 삼성물산 이사회가 내놓은 보통주 1주당 2550원(우선주 2600원)보다 75% 더 많은 규모다. 요구사항을 모두 반영하면, 총 주주환원 규모는 1조2364억원에 달한다.
삼성물산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주주제안상 요구하는 총 주주환원 규모는 지난해뿐만 아니라 올해 회사의 잉여현금흐름 100%를 초과하는 금액"이라며 "이런 규모의 현금 유출이 이뤄진다면 회사는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사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체 투자재원을 확보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삼성물산 이사회는 올해 주주환원정책으로 보통주 총 781만주(지분율 4.2%)와 우선주 전량인 16만주(지분율 9.8%)를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금액으로 약 1조원 이상, 삼성물산 자기주식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시티오브런던 등 행동주의펀드 연합 측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율은 1.46%로, 이번 주총 '표 대결'에서 이들의 제안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단기적으로 특별한 영향은 없을 수 있지만, 올해 주총에서 이와 같은 행동주의펀드의 요구가 더욱 거셀 것으로 예상되며 기업들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박종렬 흥국증권 연구원은 "울프팩 전략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전략으로, 펀드 연합은 최근의 트렌드"라며 "여론 형성 측면에서도 훨씬 유리하고, 이 과정에서 기업 총수가 조금이라도 변화할 여지를 줄 수 있다는 생각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물산을 첫 시작으로 다른 기업에 대한 행동주의 펀드들의 목소리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른바 '조카의 난'이라 불리며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박철완 전 금호석유화학 상무도 행동주의펀드와 손잡고 올해 금호석화 주총에서의 표 대결을 예고했다. 박 전 상무는 2년 만에 주주제안을 내고 '자사주 소각'을 요구했다. 전체 주식의 18%에 달하는 자사주가 소액주주의 권익을 침해하고 있다며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특히 올해는 주주제안을 하며 기업 거버넌스(지배구조) 개선에 전문성을 보유한 차파트너스자산운용과 손잡았다. 차파트너스는 앞서 맥쿼리인프라, 남양유업, 사조오양 등을 대상으로 한 행동주의에 나선 바 있다.
KT&G는 차기 사장 선임을 놓고 싱가포르계 행동주의 펀드인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의 공세를 받고 있다. FCT는 지난 20일 국민연금에 KT&G 사장 후보자 선임과 관련한 입장문 형태의 주주 공개서한을 보냈다. 해당 서한에는 KT&G 사장 후보자 중 앞서 있다고 평가되는 2명의 내부 출신 후보자에 대한 반대 견해를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은 KT%G 지분 6.2%를 보유한 3대 주주다. 또 2대 주주인 중소기업은행도 국민연금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FCP는 판단하고 있다. FCP는 올초 KT&G 전·현직 이사들을 상대로 '자사주 활용 감시에 소홀해 회사에 1조원대 손해를 끼쳤다'며 배상 소송 제기 청구서를 보내기도 했다.
현대엘리베이터도 행동주의 펀드의 주요 타깃으로 꼽힌다. KCGI자산운용은 지난해 8월 현대엘리베이터에 주주서한을 보내 당시 현정은 회장의 사내이사직 사임을 중심으로 지배구조 개선을 제안한 바 있다. 감사위원회가 견제와 감시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KCGI는 현대엘리베이터가 취득한 자사주의 악용 가능성도 지적하며,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의 전량을 소각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올해 주총도 유사한 요구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는 2024년 정기주총 프리뷰 보고서를 통해 "올해도 지난해에 이어 활발한 행동주의 캠페인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번 정기주총 시즌은 행동주의 펀드와 일반주주들의 기업 거버넌스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재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종성 기자(star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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