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0주년을 맞은 지난 15일, 대형 TV 모니터로 서로의 생사를 확인한 남북의 이산 가족들은 오열했다.
60년을 기다려왔건만, 이날의 '상봉'은 그러나 카메라와 광통신망을 연결해 원격으로 대화를 나누는 간접적인 것에 불과했다. TV 모니터를 부여잡고 통곡하는 이들의 모습에 국민들의 눈시울이 더욱 뜨거워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19일 경남대 행정대학원 안보정책전공 석사과정을 졸업하는 이광수(40)씨는 이번 남북한 '영상상봉'에 남다른 감회를 가진 이들 가운데 하나다.
북한에 부모님과 6남매 형제를 둔 그는 지난 96년 9월 잠수함을 타고 동해안으로 침투한 26명의 무장간첩 가운데 유일하게 극적으로 생존, 전향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TV로 남북의 가족이 서로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눈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실제로 이를 지켜보면서 북받치는 감동에 온 몸이 떨렸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이산가족 상봉이 계속돼야 하는데' 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지난 97년 해군 군무원으로 특채돼 해군 정신교육 교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씨는 2003년 경남대 법행정학부를 졸업한데 이어 이번에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무사히 마치게 됐다.
"학부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거센 경상도 사투리와 한자어, 영어를 섞어 쓰는 남한 말에 애를 먹었다"는 그는 지금은 오히려 귀를 쫑긋 세우지 않으면 북한 사투리조차 잘 느껴지지 않을 만큼 표준어를 훌륭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TV 뿐만 아니라 탈북자들의 '인터넷 카페'를 통해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으며, 북한 관련 소식이라면 빼놓지 않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IT 기술을 활용한 영상상봉이라는 획기적인 방식이 도입되면서 남북관계 개선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 같다"면서도 "북한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경계심도 잊지 않았다.
지난 6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의 회담을 통해 역사적으로 시도된 남북한 영상상봉은 KT가 지난 6월29일부터 8월15일까지 연인원 2천명을 투입, 북측과 남측의 광케이블을 연결해 성사됐다.
이 씨는 "대한민국으로 와서 처음엔 고민도, 방황도 많이 했지만 경남대와 학과 학우들, 해군에서 많은 도움을 줘 극복할 수 있었다"며 "이제는 도움을 준 분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고 평화통일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게 얘기했다.
학과 공부 뿐 아니라 안보강연에도 열심인 그는 내년 초에는 박사과정에도 진학할 예정이다. 지난 99년 결혼해 두 명의 딸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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