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의사과학자와 관련해 두 가지 연구비 시스템이 있다.
‘1+1’ 시스템
A 연구소에 근무 중인 김 교수는 최근 외부 기관으로부터 연구비 1억원을 타냈다. 그의 기초의학 관련 연구 성과가 앞으로 해당 분야에 선도적 연구가 될 것이란 평가를 받았다. 연구비를 제공한 외부 기관은 김 교수에게 연구비 1억원뿐 아니라 김 교수 소속기관인 A 연구소에 간접비 명목으로 1억원을 추가로 지급했다. ‘1+1’인 셈이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지원으로 A 연구소로부터 간섭 없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다. A 연구소 또한 김 교수의 탁월한 연구 성과로 1억원을 지급받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1-0.2’ 시스템
B 연구소에서 차세대 의학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이 교수는 관련 협회로부터 연구비 1억원 공모에 응모해 선정됐다. 이 교수가 최근 검토하고 있는 연구가 차세대 의학의 흐름을 바꿔놓을 것이란 평가를 받았다. 관련 협회는 이 교수에게 1억원을 지급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교수가 받은 연구비 1억원 중 약 20%는 이 교수가 소속돼 있는 B 연구소가 간접비 명목으로 떼 갔다. 결과적으로 이 교수는 8천만원만 연구비만 제공받는 셈이다. 이후에도 이 교수는 B 연구소에서 자신의 연구와 관련 없는 잡무와 함께 연구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김종일 서울의대 유전체의학연구소장은 “의사과학자를 간단히 정의하라면 ‘의사이면서 과학을 잘해야 하는 사람’”이라며 “과학을 흉내만 내는 게 아니라 과학을 진짜 잘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과정(트레이닝)을 잘 받아야 하고 계속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정종오 기자]](https://image.inews24.com/v1/d797655e10c70e.jpg)
이 두 가지 연구비 시스템에서 누구든 ‘1-0.2’ 보다는 ‘1+1’ 시스템이 연구의 자율성을 확보하는데 매우 적합한 제도라는 것을 인정한다. 문제는 ‘1-0.2’ 시스템이라는 연구비 문화에 우리나라에 여전하고 대부분 이 시스템을 따른다는 데 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소속 기관의 여러 업무를 병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인다.
우리나라 의사과학자 시스템도 다르지 않다.
김종일 서울의대 유전체의학연구소장은 서울의대에 입학할 때부터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되기보다는 연구하는 의사과학자가 되겠다는 뜻을 굳혔다. 당시 김 교수가 의대에 입학할 즈음 ‘유전공학’이란 분야가 거론되고 있었다.
진로를 선택할 때 김 소장은 여러 관계자들에게 먼저 ‘연구를 하고 싶은데 의대를 가서 연구하는 게 좋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단과대(공대나 자연대)를 가야 하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여러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의대에서도 임상의만 있는 게 아니라 기초의학이 있으니 의대를 가서 연구를 계속하는 게 좋을 것”이란 답을 했다고 전했다.
서울의대에 입학해서는 김 소장에게 임상의도 매우 흥미는 끄는 부분이 됐다. 김 소장은 “의대 생활을 하면서 환자를 보는 임상의도 좋아 보여서 임상도 하면서 연구를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당시 제가 졸업할 때는 ‘임상+연구’를 병행하는 선배 모델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연구만 하든지’ 아니면 ‘환자만 보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모델이 대부분이었다는 거다.
의사과학자를 지향할 때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로 김 소장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꼽았다. 김 소장은 “그 직업(의사과학자)을 잡아 연구를 진행하다가 다른 이유로 연구비가 떨어진다거나, 그 연구를 그만두는 일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하다 보면 미래가 불안정하다”며 “불안정한 그 미래를 과연 내가 선택할 수 있을까, 이게 (의사과학자를 하고 싶은 이들에게)가장 어려운 점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2009년 다른 연구팀과 함께 한국인 게놈 서열 분석을 내놓았다. 게놈 서열 분석 연구는 당시 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된 한국인 게놈서열 분석 관련 논문에 에 김 소장은 제1저자로 참여했다.
김 소장은 이 연구의의에 대해 “(당시) 전 세계에서 게놈을 연구하는 과학자들 대부분 백인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실정이었다”며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인들은 백인과 다른 특성이 있을 것이란 고민에서 시작한 연구”라고 전했다.
김 소장 연구팀의 성과가 바탕이 돼서 아시아인 게놈에 존재하는 특수한 상황에 따라 질병을 예측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이어 2012년에는 한국인 폐암 환자에게서 새로운 돌연변이를 찾아내는 성과도 거뒀다. 이 돌연변이가 폐암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보고한 연구 성과였다.
정부의 의사과학자 육성 정책에 대해서 김 소장은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의사과학자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미래의 불안감’”이라며 “이 불안감을 부추기는 것 중 하나가 정부의 지원정책인데 정부 지원이 일회성이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A라는 지원정책으로 그 과제에 선정되더라도 몇 년 뒤에 A 지원정책이 사라져 버린다는 거다. 김 소장은 “A라는 지원정책에 선정돼 한 3년은 숨통이 트였는데 3년 뒤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의사과학자들은) 직면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몇 년 전 미국에서 일을 하고 있는 A 동기와 만난 이야기를 전했다. 김 소장이 들려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A는 최근 큰 연구비를 하나 따냈다. 이를 기반으로 관련 연구를 당분간 확대하려고 했다.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A는 진료는 20%만 하고 연구에 80%를 투자하려고 했다. 자신이 연구시간을 늘리는 만큼 줄어드는 진료는 누군가 담당해야 했다. A는 병원에서 월급 20%만 받기로 했다. 자신이 깍은 월급(80%)만큼 병원에서 다른 의사를 고용해 줄어든 진료를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병원에서 주러든 A의 월급 80%는 연구비에서 받을 수 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내 연구비에서 내 인건비의 80%를 받겠다는 거다. 진료를 20%만 하니까 병원에서는 20%의 월급만 받겠다는 식이다.”
미국은 이런 시스템이 가능하다. 이 시스템을 우리나라에서는 적용할 수 없다. 김 소장은 “A 동기의 사례는 굉장히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연구를 많이 하든, 적게 하든 월급은 똑같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우리나라의 의사과학자 육성과 관련된 지원과 환경이 많이 바뀌어 본인이 원한다면 그 연구를 계속해도 자기나 병원에 크게 손해가 안 가는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며 “미국처럼 연구비에서 월급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연구비를 타오면 20~30% 정도는 간접비로 소속 기관이 사전에 떼 간다. 김 소장은 “미국의 경우 간접비는 연구비에 많게는 100%, 적게는 25%를 추가로 제공한다”며 “우리나라는 1억원 연구비를 받으면 (간접비 2천만원 먼저 떼 가고) 8천만원만 받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미국에서는 연구를 잘하는 병원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런 ‘1+1’ 시스템이 정착되면 병원에서는 의사과학자에게 “연구를 더 열심히 해라”고 주문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거다.
김 소장의 의사과학자에 대한 개념은 명확하다. 김 소장은 “의사과학자를 간단히 정의하라면 ‘의사이면서 과학을 잘해야 하는 사람’”이라며 “과학을 흉내만 내는 게 아니라 과학을 진짜 잘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과정(트레이닝)을 잘 받아야 하고 계속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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