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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 세입자 안 받아요" 한숨 돌린 집주인들 '왜'?


일선 중개업소 "임대인들, 전 세입자와 동일 직업군 임차인 기피"
비교적 자금 융통 수월한 전문 직종 임차인 꺼리는 현상도
한은 "깡통전세·역전세 비중 점차 늘면서 역전세난 우려 커질 것"

[아이뉴스24 김서온 기자] "우리 집은 이제 변호사한테 전세 안 줍니다. 직접 세입자가 변호사 부부였는데, 피도 눈물도 없이 사정을 봐주지 않았어요. 정해진 계약기간보다 1년 6개월을 더 빨리 나간다고 해서 사방팔방으로 새 세입자를 구하러 뛰어다녔는데, 본인들이 변호사라며 법대로 할 테니 연 12%에 달하는 이자를 달라고 했어요. 갱신계약 후 얼마 되지 않아 나간다는 통보에 시간이 촉박했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깡통전세와 역전세 비중이 높아지면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것이란 우려에 전세 수요가 크게 줄어드는 분위기다. 특히, 올해 하반기부터 그간 늘어났던 갭투자 물량의 계약기간이 만기도래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전세난 문제가 다시 또 주택시장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역전세난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드는 가운데, 이미 한 차례 역전세난 고비를 넘긴 임대인(집주인)들 사이에서는 특정 직업군의 세입자는 받지 않겠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다수 직전 세입자로부터 임차권 등기에 걸려 월 수백에서 수천만원대에 달하는 지연이자까지 물어줘야 했던 집주인들이다.

서울 도심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정소희 기자]
서울 도심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정소희 기자]

실제 강남구 도곡동 일원 아파트 한 채를 임대 놓고 있는 60대 A씨는 세입자의 중도 퇴거 통보에 돌려줄 보증금을 마련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한다. A씨는 "2년을 거주하고 갱신계약을 했는데 채 6개월이 지나지 않아 갑자기 나가겠다고 했다"며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고 역전세난에 새 세입자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임대인들이 보증금을 받아 그대로 보관만 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토로했다.

A씨는 급작스러운 상황에 인근 14곳에 달하는 부동산에 매물을 내놨고, 지인을 비롯해 사모임에도 도움을 구하며 새 임차인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상황이 여의찮았다. 대출로도 보증금 전액을 반환하기 어려워 임차인에게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으나 세입자도 이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A씨는 "임차인 부부가 자신들은 변호사라며 법대로 하겠으니 퇴거 통보 이후 3개월이 지나 임차권 등기를 걸고 12%에 달하는 이자를 달라고 했다"며 "임차권 등기 설정 이후에도 열쇠를 돌려줘야 집을 보여줄 수 있는데 처음엔 열쇠도 주지 않아 예비 세입자들에 집을 보여줄 수 없었다"고 했다.

이어 "임차권 등기 후 한 달여간 열쇠를 받지 못했고 지연이자는 제때 지급했으나 지연이자와 함께 언제까지 보증금 전액을 돌려주겠다는 각서에 공증받고 나서야 열쇠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며 "선처를 부탁했지만, 변호사임을 강조하며 법대로 모든 조처를 하겠다는 말에 더 이상 사정할 수 없었다. 다만, 다시는 세입자로 변호사를 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중개업소에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일선 중개업소에서도 특정 직업군에 속한 임차인은 받지 않겠다는 요구를 하는 집주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강남구 일원 한 중개업소 대표는 "역전세난에 새 세입자를 구하고, 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을 한 차례 겪은 일부 임대인들은 직전 세입자와 같은 직업군의 임차인 받지 않을 것이니 직업을 살펴봐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며 "대다수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전문 직종이 그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는 대출 규모가 크거나 자금 융통이 비교적 수월한 전문직 종사자의 경우 전세 계약 만료나 중도 퇴거 시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더라도 상황에 따라 을 마련해 이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전세보증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면 임차권 등기를 설정하고 집을 비운 후 새 전셋집 보증금을 충당하거나 매입 자금을 구하기 어려워 집주인이 새 임차인을 구하거나 돌려줄 보증금을 마련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동구 상일동 일원 한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 중인 40대 B씨는 전세 계약기간 만료 후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고려했으나, 새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으면 보증금을 줄 수 없다는 집주인의 말에 계약기간이 끝나고도 옴짝달싹 못했다.

B씨는 "원래 계약기간이 끝나면 이사를 하려고 계획했는데, 다른 임차인이 들어오지 않으면 보증금 반환이 어렵다는 집주인 말에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며 "당장 새집으로 이사 갈 보증금을 통으로 마련하기 힘들다. 두 달이 지나 집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보증금을 일부 돌려주고 내던 월세도 내지 않는다는 조건에 2년을 더 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좋은 현상은 아니지만 집주인들 입장에서는 역전세난에 보증금 반환이 어려운 상황을 겪다 보니 임차권 등기를 걸고 나갈 여력이 있는 세입자를 꺼리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며 "전세사기나 보증금 리스크에 세입자가 집주인의 경제력과 직업을 따지는 면접이 성행했다면, 최근 일각에선 역으로 임차인을 가려 받고 있다"고 했다.

이어 "모든 전문직 종사자가 자금 융통이 쉽고, 전문직이 아니라 일반직군에 있다고 해서 자금 융통이 어려운 것은 당연히 아니다"며 "다만, 집주인들의 실제 사례를 비춰볼 때 고소득자가 속한 특정 직군이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은행이 발간한 보고서 '깡통전세·역전세 현황 및 시사점'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깡통전세 계약 중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에 만기도래하는 비중은 각각 36.7%, 36.2%이며, 역전세는 각각 28.3%, 30.8%로 추정된다. 집주인이 집을 팔아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은행 물가연구팀 관계자는 "전세보증금이 7억원을 넘는 고가 전세나 담보대출이 많은 주택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이 어렵다"며 "특히, 임차인이 선순위 채권자 지위도 확보하지 못한 경우에는 경매가 진행되더라도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서온 기자(summ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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