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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SSKK'와 '우문현답'


[아이뉴스24 소민호 기자] 조지 오웰(1903~1950)은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서 고통받던 시절인 1940년쯤,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인간의 존엄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요약하자면, 그는 인도나 미얀마에 살면서 그 많은 동양인들의 존재를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느껴본 적이 없었음을, 어느 순간 자각하게 된다.

그저 병풍처럼 장식물에 불과했음을, 영국인처럼 희노애락애오욕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시키는 일만 하는 노예에 불과했다고 여겼음을 자책했다고 전해진다.

2023년의 시점에서 조지 오웰 식의 '자각'을 떠올려 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이 벌어지는 사실을 목도하노라면, 선진국이라는 미국의 학교나 도로 한복판에서 수십명을 쏴죽이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거나, 남아메리카 어느 나라의 한적한 교외지역에 몇십명이 집단수용 당한 채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내가 아닌 타인은 존엄한 존재가 아니라 장식에 불과하거나 부리는 일만 하는 열악한 생물체라 무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새삼 소스라치게 느껴지곤 해서다.

외국에서만일까.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직위나 빈부를 갈라 '강약약강'하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강한 자에겐 약하고, 약한 자 앞에서 강해지는 이들이야말로 사회적 약자의 존엄을 애써 무시하는 행태로 읽힌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이런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핼러윈을 기념하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 것을 걱정한 일선 경찰관이 있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그는 소신있게 과도한 인파 집중이 가져올 가능성, 현장에서 크고작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을 경험과 통찰력으로 예상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자고 건의했다.

하지만 그 간절함은 허망하게도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요청은 거절당했고, 참사가 벌어진 이후에는 사고를 우려한 보고서가 묵살됐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그 보고서 자체를 삭제하려 했음도 잘 알려져 있다.

하급 경찰관 개인의 존엄한 생각을 상급자들이 참사 전후 모두 무시한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 159명과 그 유족들의 존엄마저 무시당하는 현실을 마주하는 중이다.

MZ세대의 '괜찮은 일자리' 판단 기준에 '시키는 대로만 일 하는 조직' 따위는 없다. [사진=경총]
MZ세대의 '괜찮은 일자리' 판단 기준에 '시키는 대로만 일 하는 조직' 따위는 없다. [사진=경총]

그렇다면 상명하복의 문화가 강한 경찰 조직이어서 보고서를 묵살했고, 그 흔적마저 지우려고 했을까. 우리 사회의 각 단위 조직을 잘 들여다보면 경찰과 거의 유사하거나 오히려 더 경직된 곳까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소위 잘 나가는 기업집단 또는 스타트업에서나 수평적 문화를 주창하고 호칭까지 자유롭게 할 뿐, 여러 집단들의 의식은 조지 오웰이 살았던 시대처럼 "나만 소중하고 타인은 장식물"이라는 수준에 가까워 보인다.

'SSKK'라는 용어가 유행어였던 적이 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까라면 깐다"는 정신은 개발연도에 패스트팔로어가 되기 위해 필요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MZ세대가 사회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시대다. 그들이 스포츠에서 상위권에 오르고, 예술계에서 전인미답의 경지에 오르고, 과학계에서 세계적 주목을 받는다.

그래서 현명한 선배들은 '우문현답'을 찾는다. "우리에게 닥친 문제,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을 줄인 성어인데, 그분들은 자신의 고정관념이 아니라 현장에 몸담은 이들에게서 답을 찾아왔다. 자신만이 똑똑하다며 아랫사람 업신여기거나 만기친람하지 않고, 과감하게 권한을 위임해 효율을 높여왔다. 언제까지 '아재정신'으로 무장한 채 아랫사람에게 SSKK 정신을 주문할 것인가, 자문해 본다.

/소민호 기자(smh@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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