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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작가가 쏘아올린 '학교 폭력'의 짙은 그늘 [원성윤의 人어바웃]


[아이뉴스24 원성윤 기자] "내 소원이 뭐였는 줄 아니? 나도 언젠가는 너의 이름을 잊고, 너의 얼굴을 잊고, 어디선가 널 다시 만났을 때 '누구더라' 제발 너를 기억조차 못하게.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하지 않니? 내 세상이 온통 너라는 게. 내 세상이 온통 너인 이유로 앞으로 네 딸이 살아갈 세상은 온통 나겠지. 그 끔찍한 원망은 내가 감당할게. 복수의 대가로."(‘더 글로리’ 4화 동은의 대사 중)

김은숙 작가가 지난해 12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JW매리어트 서울에서 진행된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제작발표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김은숙 작가가 지난해 12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JW매리어트 서울에서 진행된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제작발표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 작가 김은숙이 주목한 '피해자 서사' 그리고 '복수'

'더 글로리' 스페셜 영상 [사진=넷플릭스]
'더 글로리' 스페셜 영상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2023)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 동은(송혜교 분)이 가해자 연진(임지연 분)의 딸 담임을 맡으면서 복수극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그동안 학교 폭력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은 많았음에도 이토록 뜨겁게 각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리의 연인'(2004)부터 '도깨비'(2015), '미스터 선샤인'(2018)까지 때론 유쾌하면서 역사적 이야기를 쉴새없이 펼친 김은숙 작가가 이번에 주목한 건 바로 '학교 폭력'이었다. 그는 제작발표회에서 '더 글로리'를 쓰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내가 죽도록 때리면 더 가슴아플 것 같아? 죽도록 맞으면 더 가슴아플 것 같아?'라고 물었다. 그 짧은 순간에 많은 이야기가 확 펼쳐졌다. 엄마 작업실 컴퓨터를 켰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가 '더 글로리'였다" 역시 김은숙, 이라는 뻔한 얘기 대신 이 작품이 주목 받은 건 피해자 서사에 중심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했다는 점이다. 특히 피해자가 학교 폭력에 시달린 뒤 극단적 선택을 하는 기존 이야기와 달리 그 이후 삶에 대한 이야기에 주목하고, 가해들과의 인생과 다시 결합해 나가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구성한 점이 흥행의 이유로 꼽힌다.

◆ "컴퍼스로 찌르고 막 웃어요" 124만 구독자 보유한 '곽튜브'가 흘린 눈물

곽튜브.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모습. [사진=tvN]
곽튜브.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모습. [사진=tvN]

'더 글로리'는 현실에도 존재한다. 124만 구독자를 보유한 여행 유튜버 '곽튜브'(본명 곽준빈)가 과거 학교 폭력(학폭)을 당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다 학교폭력을 당했다. 항상 맞고 다녀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했다"고 말했다.

"제가 어린 시절에 덩치가 작고 키로 꼴찌였다. 동급생인데 저는 항상 그들의 밑이었다.매점에서 빵을 사 오라고 한다든지, 체육복을 빌려 가서 안 돌려준다든지, 이동 수업 때 교과서를 옮겨놓으라든지, 심지어 컴퍼스로 제 등을 찔렀다. 제가 아파하는 걸 보고선 웃더라"

그의 이야기는 학교 폭력의 전형성을 담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하고 1년을 집에 박혀서 해외 축구만 봤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 없는 데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에 해외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고 해외여행을 결심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곽튜브의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된 건 그동안 묻혀있던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점이다. 그는 학교폭력 피해자들에게 "피해자들은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 찾곤 한다"며 "절대 본인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곽튜브의 고백이 이어지자 유재석은 조용히 어깨를 다독였다.

◆ 야구선수 추신수가 간과했던 건 바로 '피해자'

SSG랜더스 추신수 선수. [사진=정소희 기자]
SSG랜더스 추신수 선수. [사진=정소희 기자]

이처럼 올해 초 학교폭력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추신수는 지난 21일 미국 댈러스 지역 한인 라디오 DKNET에서 안우진이 WBC 대표팀 최종 명단에 들지 못한 것을 두고 "분명히 잘못된 행동을 했다"면서도 "외국으로 나가서 박찬호 다음으로도 좋은 선수가 될 재능을 가진 선수인데 한국에서 야구를 하고 있지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용서가 쉽지 않은 것 같다"며 "어릴 때 잘못을 뉘우치고 출장 정지도 다 받았는데 국제대회를 못 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우진은 지난해 리그 최고의 투수로 활약했으나, 고교시절 학교폭력 이슈로 대표팀 최종 명단에서 제외된 바 있다.

추신수는 자타공인 우리나라 최고의 타자다. 메이저리그를 거쳐 SSG랜더스로 이적하면서 한국 팬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럼에도 이번주에는 추신수에 대한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학교 폭력에 있어서는 대중들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내 가족이자 친구의 일이기도 하고, 내 자식의 일이라고 치환해서 생각하면 그리 쉽게 용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분노는 바로 이 지점이었다는 점을 알고 추신수 선수가 해명해야 할 차례다.

◆ 현실은 늘 불편한 법…사각 지대서 학교폭력은 계속 증가하는 중

2022년 학교폭력 실태자료 [사진=교육부]
2022년 학교폭력 실태자료 [사진=교육부]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폭력 사안 조치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총 3만1240건에 달하던 건수는 2020년 2만5903건으로 잠시 줄었던 것을 제외하면 계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21년에는 4만4444건까지 늘어났다. 지난해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 폭력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피해유형별 응답 비중은 언어폭력(41.8%), 신체폭력(14.6%), 집단 따돌림(13.3%) 순으로, 이는 2021년 1차 조사 대비 집단따돌림(14.5%→13.3%), 사이버폭력(9.8%→9.6%)의 비중은 감소하고, 신체폭력(12.4%→14.6%)의 비중은 증가한 수치로 나타났다. 언어폭력이 나이가 들면서 신체폭력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유경 이화여대 학교폭력예방연구소 소장은 "초등학생은 중·고등학생에 비해 학교폭력 감지 민감도가 높아, 학교수업 정상화에 따라 신체적·언어적 상호작용이 증가하면서 습관성 욕설, 비속어 사용 등에 대해 보다 민감하게 '학교폭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중·고등학생과 구분되는 초등학생의 피해유형별 실태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향후 대응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현실은 늘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우리는 그 현실을 직시하고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 '학교폭력'의 짙은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는 학생들을 구제할 수 있다. 불이 붙었을 때 장작을 넣어야 불이 잘 붙는 법이다. 사회적 공론화에 올라온 '학교 폭력'에 대해 이제 정부와 정치권이 좀 더 현실성 있는 방안을 내놓을 차례다.

/원성윤 기자(better2017@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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