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테니스계의 전설 빌리 진 킹은 1980년대 초반 한 꼬마 테니스선수의 경기를 지켜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힘과 순발력, 그리고 테니스 감각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직감했다. 그리고는 "저 아이는 언젠가 그랜드슬램 대회을 달성할 것이다"고 예언했다.
그의 예언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1987년 당시 18세였던 슈테피 그라프는 프랑스오픈 정상에 오른 뒤 이듬해 호주오픈, 프랑스오픈, U.S오픈, 윔블던 단식을 모두 휩쓸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특히 당시 서울에서 열린 24회 올림픽 여자 테니스 단식에서도 금메달을 따내 '골든슬램'이란 신조어를 창조하기도 했다.
1969년 6월14일 독일 네케라우에서 태어난 그라프는 독일이 배출한 슈퍼스타다. 포물러1의 미하엘 슈마허와 함께 게르만 민족의 힘을 과시한 상징으로도 일각에선 평가한다.
탁월한 재능과 강인한 승부욕을 모두 갖춘 덕에 합계 377주(합계)나 세계랭킹 1회에 올라 이 부문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87년 8월17일∼1991년 3월10일에는 186주 연속 1위를 빼앗기지 않았다.
통산 그랜드슬램대회 단식 우승횟수는 21번이다. 복식에서도 1차례 정상을 차지한 경험이 있다. 윔블던에서 7번, U.S오픈 5번, 프랑스오픈 6번, 호주오픈 4번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
WTA 단식 우승은 모두 103회, 통산 상금액은 2천13만835달러에 달한다. 통산 103승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와 크리스 에버트에 이은 역대 3위에 해당된다. WTA '올해의 선수상'은 8차례나 수상했다.
그라프의 폭풍같은 질주 뒤에는 '원치 않은' 변수도 작용했다. 1993년 독일 함부르크 대회에서 한 광팬이 코트에 난입해 모니카 셀레스의 등을 칼로 찔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때문에 당시 그라프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셀레스는 1년 이상 치료와 휴식이 필요했고, 이후 다시는 예전의 기량을 되찾지 못했다.

테니스코트에서 이룰 것을 다 이룬 그라프는 1999년 8월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그는 세계 3위였는데 지난 1975년 11월 컴퓨터랭킹이 도입된 이후 은퇴시점 순위로는 최고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라프는 코트를 떠난지 2년 뒤인 2001년 10월 남자테니스계의 슈퍼스타 안드레 애거시와 결혼해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애거시와 사이에서 1남1녀를 둔 그는 현재 어린이를 위한 자선재단을 운영하며 사회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김형태 기자 horse@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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