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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커진 세입자…건조기에 에어컨까지 '옵션 쇼핑'


겨울 비수기, 전셋값 하락 속 역전세난에 집주인은 세입자 모시기 경쟁 나서

[아이뉴스24 김서온 기자] "세탁기는 기본이고 건조기 없으면 계약할 수 없다는 세입자 목소리가 커진 상태입니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시장에서는 임차인 우위 현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전국 아파트 매매·전셋값 내림세가 매주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우면서다. 특히, 금리 인상 기조가 올해에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매물이 쌓이고 있는 지역에서는 옵션 조건을 더 강하게 요구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4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2년 12월 4주 전국 주간 아파트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1.13%)보다 낙폭을 키워 1.22% 떨어졌다. 가격하락 폭이 큰 급매거래가 추가 하락으로 연결되며 낙폭은 커지고 있다.

급등했던 전셋값이 크게 하락하면서 지난해 11월 기준 서울 주택 전세 갱신계약 가운데 계약갱신청구권(이하 갱신권) 사용 비중은 40%선으로 떨어졌다. 금리 인상 여파로 갱신계약 10건 중 4건은 갱신권을 쓰지 않고 재계약을 한 것이다.

전셋값이 2년 전 전셋값보다 떨어져 집주인이 오히려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역전세난'도 확대되고 있다. 부동산114가 2년 전과 지난해 1건 이상 전세 거래가 발생한 서울 아파트 9천606개 주택형의 전셋값을 분석(최고가 비교)한 결과, 계약금액이 2년 전 계약금액보다 낮아진 경우는 1천774개로 전체 18%에 달했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파트 전경. [사진=김성진 기자]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파트 전경. [사진=김성진 기자]

전셋값 하락 기조와 함께 역전세난 현상이 퍼지고 있는 전세시장은 겨울철 한파와 비수기까지 맞이하면서 임차인을 찾기 더욱 어려워졌다.

상황이 이렇자 전세시장에서 임차인들의 목소리가 커졌고, 집주인에게 구체적인 '옵션'까지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통상 관례로 전세는 들어오는 세입자가, 월세는 집주인이 도배와 장판을 새로 맞춰주지만, 최근 전세 세입자가 귀해지면서 도배 장판은 물론 구체적인 옵션 설치를 조건으로 다는 경우가 생겨나는 것이다.

실제 강남구 도곡동 일원 한 대단지 아파트에서 나온 전세 매물은 계약갱신청구권을 이미 사용한 세입자가 계약기간 1년을 남기고 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혀 집주인이 현재 보증금보다 낮게 시장에 내놨다.

20곳이 넘는 부동산에 매물을 풀었지만 3달 동안 A씨 1명이 관심을 보였고, 당장 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집주인은 A씨가 요구한 모든 옵션 요구를 들어주고 이전보다 낮은 가격에 전세 계약을 맺었다.

해당 거래를 중개한 도곡동 B부동산 관계자는 "입지도 좋고 학군도 좋아 세입자 구하는 게 쉬운 동네였는데, 최근 전셋값이 떨어지고 역전세난이 생기면서 세입자를 찾기 쉽지 않다"며 "강남 구축 아파트라 옵션이랄게 없었지만, A씨가 에어컨을 요구해 거실에 시스템에어컨을, 방 3곳에는 벽걸이 에어컨을 설치했다. 전세 세입자가 부담하는 도배 장판도 집주인이 책임졌다"고 말했다.

또한, 매수심리가 크게 쪼그라들고 이에 매수 시점을 뒤로 미룬 실수요자들이 전세로 돌아서면서 추가 가전 비용 지출을 막기 위해 집주인에 가전을 요구하는 예도 있다.

서초구 방배동 C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최근 이 일대 아파트에 들어갈 예비 전세 세입자가 세탁기와 건조기, 식기세척기를 들여주면 당장 계약하겠다고 했다"며 "임차인을 구해야만 하는 집주인은 울며 겨자 먹기로 세입자가 요구한 모델과 같은 상품을 설치해주고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집주인이 방범 시설 설치 또는 금액을 지원하거나, 기존엔 반려동물과 거주하는 것을 반대했음에도 펫팸족(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들을 이르는 신조어)을 전세 세입자로 맞이하는 것을 꺼리지 않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일원 D부동산 대표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경우 도배 장판이 찢어지는 등 훼손이 생길 수 있는데 이때 세입자의 원상복구 의무 없이 전세 계약을 한다던가, 반려동물 거주를 제한했던 집주인들이 조건을 바꾸기도 한다"고 했다.

진태인 집토스 아파트중개팀장은 "통상 옵션의 경우 누가 부담해야 한다는 개념은 없다"며 "원룸의 경우 1인 가구가 많아 빌트인으로 세팅된 곳이 많고, 신혼부부나 아이가 있는 가족이 임차인으로 들어오면 이미 가전제품을 갖추고 있어 설치된 제품을 오히려 빼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도배나 장판 등 시설물 개량의 경우 전세는 들어오는 돈이 없어 전세 세입자가 귀하지 않으면 세입자가 하는 편이고, 월세 형태의 경우 월세를 받기 때문에 집주인이 부담한다"고 덧붙였다.

세입자가 귀해진 최근 전세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전세 세입자의 구체적인 요구를 들어주는 분위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진 팀장은 "현재 전세 세입자가 귀해 이러한 분위기는 당분간 유지 될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시장은 수요와 공급에 맞춰 갈 수밖에 없다. 시장이 안정되고 역전세난 현상이 가라앉는다면 판도가 또 바뀌겠지만, 최근에는 전셋값이 급락하고 있어 안정기를 찾을 때까지 이 같은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서온 기자(summ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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