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 정부 보유 잔여지분 전량 매각으로 통신분야의 '공룡 기업' KT가 완전 민영화됐다.
KT가 정부의 직접통제에서 벗어나 자본시장에 편입된 지 3년. 당시의 정책목표는 달성됐나. 뛰는 '공룡'이 되기 위한 혁신 작업은 얼마나 성공을 거두었나. 민간기업간 경쟁구조로 바뀐 국내 통신시장은 경쟁력이 높아졌나.
한국전기통신공사(KT)가 완전 민영화된 것은 2002년 5월, 정확히 말해 정부의 잔여지분 (28.3%)이 매각돼 새 주인에게 주권이 교부되고 교환사채(EB)가 발행된 2002년 5월 25일이다.
하지만 정부가 KT를 민영화하기로 확정한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인 1987년 7월이다. 80년대 후반 미국의 통신시장 개방요구가 거세지자 정부는 통신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한편, KT 민영화를 추진키로 했다.
◆ KT 민영화는 개방압력과 공기업 민영화 의지의 합작품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KT 민영화 작업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일각에서는 KT 민영화의 배경에 대해 "1997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과 체결한 양해각서 이면에 포스코, 한국통신공사, 한국전력공사 같은 국가기간산업의 완전매각, 적정가 매각 조항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러나 이 같은 루머와 관계 없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국민의정부'가 집권하면서 금융, 노동, 기업, 공공 등 4대 부문에 대해 강력한 구조조정(개혁)을 실시했고, 국내 최대 공기업인 KT 완전 민영화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김창곤 전산원장(전 정보통신부 차관)은 '정보통신서비스정책'이란 저서에서 "98년 7월 공기업민영화 기본방침이 발표됨으로써 한국통신의 완전민영화는 탄력을 받게 됐다"고 술회했다.
그 후 2000년 6월 10일 '공기업민영화추진위원회'에서 2002년 6월까지 정부가 가진 KT 지분을 완전 매각하기로 결정하면서, KT 완전 민영화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결과적으로 2002년 5월 25일 정부대신 민간이 KT의 새 주인이 됐으니, 정부는 약속을 지킨 셈이다.
정부는 국제사회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력했다. 2001년 한 해 동안 국내 매각을 통해 333만주(1.1%)를 팔고, 2차 해외예탁증서(ADR) 발행(17.8%), MS와 전략적 제휴를 통한 매각(11.8%)으로 총 30.7%를 파는데 성공했다. 2002년 전반까지 정부 보유 KT 지분을 28.4%로 낮출 수 있었던 것.
"KT 민영화는 국제사회에서 국가신인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중요한 사안 가운데 하나였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말이다.
하지만 2002년 2월 현재 6월말까지 잔여지분(28.3%)을 모두 팔 수 있을지는 불투명했다. 정통부 관계자는 "당시 주식시장이 안 좋아 물량을 받아주기 힘든 상황이어서 주식을 팔려면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해야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투자자를 끌어 모으기 위해 증권사 도움을 받기로 했다. 같은 해 3월 잔여지분(28.4%) 매각전략 수립을 위해 자문사(JP모건)와 주간사(현대증권, LG증권, 삼성증권)를 선정, 이를 통해 1개 기업이 한번에 취득할 수 있는 지분한도를 5%에서 15%로 확대하고 주식과 채권을 연계하는 내용의 매각방안을 확정했다.
증권사 아이디어가 성공을 거두면서 2002년 5월 25일 드디어 KT는 완전 민영화될 수 있었다. 정부는 총 매각물량 8천857만4천429주(교환사채 포함, 28.3%) 전량을 매각해 4조7천830억1천916만6천원을 벌어들였다.
◆KT 민영화 주요 경과
| 구분 | 주요경과 |
| 2000년 6월 | 정부, KT 완전민영화 방침 확정(전기통신사업법 개정해 외국인지분한도 33%→49%로 확대) |
| 2001년 | 2월 국내 매각(1.1%), 6월 ADR 발행(17.8%), 12월 전략적 투자(11.8%) 등 정부지분 총 30.7% 매각. 정부 28.4%, 일반인 34.4%, 외국인 37.2% 지분 확보. |
| 2002년 3월 17일 | 정부지분 매각전략 수립을 위한 주간사, 자문사 선정. 자문사 선정위원회(위원장: 정통부 정보통신지원국장, 위원: 재경부 국유재산과장, 기획예산처 공공2팀장, 정통부 통신업무과장, 남중수 KT 재무실장, 김영진 서울대 교수, 이인무 고려대 부교수). |
| 2002년 4월 29일 | 공기업민영화추진위원회 서면의결로 매각방안 및 소유지배구조 개편방안 확정. 주식매각방안: 우리사주 5.7% 사전할당, 잔여물량(22.7%)을 기관투자가 4%, 일반투자자 3.7%, 전략투자자 15%로 할당해 교환사채와 유가증권 매출방식으로 동시 매각. 소유지배구조개편방안: 소유와 경영인 분리된 전문경영인 체제 확립. 사외이사 기능강화로 부실경영 감시기능 확충. |
| 2002년 5월 6일 | 공기업민영화추진위원회, 정부 매각방식 발표. |
| 2002년 5월 7일 | 주식 공모매각 공고. |
| 2002년 5월 18일 | 주식청약 완료. |
| 2002년 5월 21일 | 교환사채(EB) 청약 완료. |
하지만 정부가 KT를 민영화하면서 ▲ 민영화 의지를 과시하기 위한 완전매각 ▲ 국세수입 극대화를 위한 적정가 매각 등에 지나치게 치중했다는 지적도 있다.
'황금주(golden share)'같은 안전장치를 만들지 않아 국가의 기간망을 포함한 통신산업의 핵심 역량이 공익성보다는 시장논리의 지배에 놓이게 됐다는 것이다. 2005년 2월28일의 전화사고도 돈 안되는 유선전화에 설비투자를 게을리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정부의 완전민영화 정책 때문이었다는 지적이다.
우리 정부도 영국이 1984년 브리티시텔레콤(BT)를 민영화하면서 했던 것처럼 모든 주식을 매각하되, 거래가 불가능한 '특별주' 1주(황금주)를 정부가 갖고 중요 의사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없었을까. 국가 이익을 침해하거나 국민 후생에 크게 반하는 사안은 거부할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도 '황금주'를 도입하자는 이야기는 있었다. "당시 양승택 정보통신부 장관이 황금주 도입여부를 검토해보라고 했지만, 상법상 문제가 있었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당시 잠깐 언급은 됐지만 황금주는 주주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 황금주의 원조격인 영국이 그 후 BT와 공항공사의 황금주를 소각한 이유를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황금주'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민영화 과정에서 공익성 의무는 추가됐다. 2001년 국회는 '한국통신공기업폐지법률안'을 개정하면서 '공익성 보장 의무규정'을 집어넣었다.
이후 정통부는 고시를 통해 KT에 ▲ 농어촌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 의무와 ▲ 국가안전보장, 군사, 치안 등 국가중요통신의 안정적 제공 의무를 부여했다.
2003년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하면서 기간통신사업자의 주주에 대해 공익성을 심사하는 제도도 도입했다. 성격조차 모호한 무국적 자본이 민영화 이후 외국인 지분한도 규정이 배제돼 외국인 지분한도가 49%로 늘어난 KT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 KT 민영화 직후 주요주주 현황
| 구분 | SK텔레콤 | 우리사주 | 국민연금 | LG그룹(LG전자, LG투자증권) | 대림 | 템플턴(Templeton) | 브랜즈(Brands) | MS | 캐피탈 |
| 지분율 | 11.34% | 5.67% | 3.10% | 1,74% | 1.38% | 4.38% | 3.60% | 2.97% | 2.98% |
◆ 민영화 결과는 SK텔레콤의 독립?
"눈 떠 보니 딴 세상이더라. 잔여지분을 매각하고 나니 SK텔레콤이 KT의 경영권을 위협할 만한 1대 주주가 돼 있었다" 당시 공기업민영화추진위원회에 참여했던 관계자의 말이다.
2002년 5월 정부 지분 28.4%은 SK텔레콤(11.34%), 우리사주(5.67%), 기관투자사(동양투신운용, 대한투신운용, 한국투신운용, 동양종합금융 등 4%), 일반투자자(3.7%), LG전자(2.28%), 대림산업(1.38%)에게 돌아갔다.
SK텔레콤은 원주형태로 9.55%, 교환사채(EB) 형태로 1.79%를 매입하면서 KT의 1대 주주가 됐다.
SK텔레콤의 1대 주주 등극은 삼성·LG·SK·포스코·현대자동차 등 재벌그룹들이 KT 지분을 '황금분할'하고, 이를 통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구조를 유지하려고 시도했던 정부에 충격을 줬다.
누구도 쉽게 SK텔레콤이 2002년 5월 18일과 20일, 21일에 걸쳐 주식 9.55%와 EB 1.79%를 확보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
18일 SK텔레콤이 전략적 투자가에게 배정된 원주 물량 5% 전량을 청약하고, 신청비율에 맞춰 3.78%의 원주를 확보했을 때까지만 해도, '설마 SK텔레콤이 3.78%의 원주를 청약한 전략적 투자가에 할당된 11.34%의 지분을 모두 확보할까' 의심했다.
SK텔레콤이 당시 잠재적 물량부담(오버행) 해소를 위해 필요했던 KT 지분은 9.55%. 그러나 SK텔레콤은 KT가 갖고 있던 SK텔레콤 지분(9.27%, MS의 KT신주인수권부채권 2.97% 주식전환시 KT의 SK텔레콤 지분)을 견제할 수 있는 9.55%의 주식을 확보했음에도 21일 EB 1.79%를 추가로 확보했다. 정부나 KT로부터 KT의 경영권을 장악하려 한다는 의혹까지 받으면서 말이다.
경쟁 기업이 KT의 최대주주 지위나 경영권을 행사해 자사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걸 막기 위한 '생존적 차원의 결정'이었든(SK텔레콤의 주장), KT 경영권을 위협하면서 오버행 이슈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려 했든(KT의 주장) 결국 SK텔레콤은 같은 해 7월 EB 1.79%를 매각하고 그해 11월 KT와 지분을 맞교환(스왑)하기로 합의하게 된다.
당시 SK텔레콤 보유 KT 지분 9.64%(1조5천172억원)와 KT 보유 SK텔레콤 지분 9.27%(1조8천518억원)를 스왑하기로 한 것이다.
그후 2003년 1월 KT와 SK텔레콤은 상호 지분 매매 대금을 결제하게 된다. KT는 특정기업의 지배 위협을 해소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민영화를 이뤘고, SK텔레콤은 KT로부터 완전 독립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KT가 갖고 있던 SK텔레콤 지분은 SK텔레콤이 만들어질 때부터 경영권 방어, 경쟁전략 추진, 기업가치 극대화에 장애가 돼 왔다"며 "KT는 98년 하반기 타이거펀드가 경영권을 위협했을 때에도 반대급부를 조건으로 협조하겠다는 등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KT 관계자는 "MS의 신주인수권부사채가 주식으로 전환되기 전 KT가 갖고 있던 SK텔레콤 주식은 18.28%였는데 당시 비상근 이사로 남중수 KTF사장을 파견했던 것을 SK텔레콤이 이사회 결의로 쫓아내는 등 KT 보유 지분이 경영상 압박이었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윤휘종기자 yhj@inews24.com, 김현아기자 chaos@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