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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여행]<35> 치매 어르신과의 커뮤니케이션은 가능하다


대만의 유명 작가이자 사회문화비평가인 룽잉타이의 에세이집 '눈으로 하는 작별'을 읽으면서 가슴이 아릿했다. 치매로 점점 말을 잃어가는 아버지가 안타까운 그녀는 두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해보라고 시킨다. 외국에서 자란 두 손주들은 "할아버지와 무슨 얘기를 해요"라며 얼굴을 찡그리지만 만 원 상금을 내걸자 연달아 질문을 던진다. 할아버지의 대답은 늘 그렇듯이 단답형이다. "응", "그래", "좋지".

옆에서 큰 애에게 힌트를 준다. "고향에는 뭐가 있었는지 여쭤봐." "할아버지 고향에는 뭐가 있었어요?" 아버지는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대답한다. "뭐가 있더라…. 차나무, 흰 꽃이 피는 차나무가 있었지." "그러고요?" "그리고…. 도롱뇽." "네? 도롱뇽이요?" 두 아이는 귀를 쫑긋 세운다. "어떤 도롱뇽이요? 카멜레온 말인가요?" 아이들이 계속 귀찮게 묻고 졸라대지만 아버지는 다시 침묵 속으로 빠진다. 둘째에게 눈짓하며 귓속말로 일렀다. "할아버지의 엄마에 대해 여쭤봐."

"우리 엄마?" 갑자기 등이 꼿꼿해지고 목소리도 또렷해진다. "얘기 하나 해줄까…." 드디어 성공이다. "눈이 엄청나게 많이 내린 날이었지. 학교에서 집까지 꼬박 두 시간 동안 산길을 걸어야 했어. 새하얀 눈 때문에 눈이 부셔서 집에 도착할 때쯤에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단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들어서는데 어머니가 하얀 쌀밥이 담긴 밥공기를 주시는 거야."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당시 모습을 직접 몸짓으로 보여주었다. 아이들이 깔깔 웃고 큰 애는 소곤소곤 항의했다 "안 돼. 만 원은 나랑 나눠야 해. 엄마가 널 도와줬잖아."

"어머니의 손에서 밥공기를 받아 식탁에 올려 놓으려는데 눈이 부셔서 그만, 놓쳐버린거야. '쿵'하고 밥공기가 땅에 나뒹굴고 밥알이 땅바닥에 흩어졌지." 식탁 밑으로 형을 발로 차려던 둘째는 가만히 있으라는 첫째의 으름장에 얌전해졌다. 아버지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어머니 가슴이 얼마나 아팠을까. 눈이 부셔서 그런 줄도 모르고 반찬도 없이 밥만 주니까 화가 나서 밥공기를 집어던질 줄로만 알았던 거야. 하루 종일 일하느라 퍼렇게 얼어붙은 손으로 자신은 굶으면서 아들 주려고 지어 놓은 쌀밥인데 그 쌀밥이 땅바닥에 나뒹구니까. 어머니는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대성통곡을…." 목이 메어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했다. "어머니 죄송해요…." 아이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치매어르신과의 대화는 어긋나고 불편하지만, 마음으로 들으면 그 사람이 바라보는 풍경과 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돌봄에 지친 가족들은 '치매환자하고 무슨 얘기를 해요?'라며 손을 내젓는다. 대부분 엉뚱한 소리를 듣는 것이 고역이어서 자리를 피한다. 어린아이 달래듯이 살살 구슬리거나 '위험해요, 하지 마세요'라는 말만 늘어놓는다.

지난해 대전사회서비스원의 용역을 받아 '치매어르신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주제에 대해 연구할 때 실망을 많이 했다. 언어, 기억, 인지능력이 사라지는 치매 어르신과 의사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치매를 가진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시점을 바꾸면, 그들의 이야기가 비로서 들리기 시작한다.

연구를 위해 현장에서 일하는 현장전문가들로부터 에피소드를 수집해 봤다. 다행히 좋은 사례들도 있었다.

"H어르신은 쉴 새 없이 혼잣말을 하다가도 갑자기 옆에 있는 사람을 꼬집는 등 과격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해요. 요양보호사들이 어르신에게 기저귀 교환이나 목욕 등의 케어를 할 때는 신속하고 민첩하게 할 일을 끝내고 도망치듯이 멀어져야 했어요. 제 차례가 돼 식사 케어를 하는데 어르신이 '우리 어머니 보고 싶어요'라고 하기에, '어머니가 미인이셨죠? 어머니 이름이 뭐에요?'라고 대답을 했더니 뜻밖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얌전해지셨어요. 저도 여유 있게 식사 수발을 끝낼 수 있었죠."

치매어르신의 마음을 읽고 대화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치매 어르신의 폭력적 행동을 치유할 수 있었다는 경험은 의외로 많았다. 치매가 중증으로 진행되면, 폭력적이거나 폭언을 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무반응, 무감동의 상태에 빠진다.

"어르신 어느 동네에서 오셨어요?" 무반응이다. "어르신, 동네가 방게골이죠?" 어르신이 살던 고향 이름을 듣자 조금 반응을 보인다. "아, 거기요. 방게골 맞아유." "저도 거기서 살았어요. 혹시 아들이 누구에요?" 다시 무반응 상태로 돌아간다. "동식이 아녀요?" 아들 이름을 대자, 어르신의 얼굴이 갑자기 활짝 펴진다. "맞아유. 동식이여유." 갑자기 번개라도 맞은 듯 활기를 되찾는다. "동식이 친구 있었죠? 제가 동식이 친구예요."

심지어 말은커녕 혼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중증 치매 어르신에게도 좋은 커뮤니케이션은 기적을 일으킨다. 중증의 치매 환자가 갑자기 의식이 명료해지며 또렷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현상을 현장에서는 '불이 들어온다'고 표현하는데 의외로 이런 경우들이 종종 있다.

치매 어르신의 '무능함'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여전히 이들이 할 수 있는 가능의 영역에 초점을 맞춘다면,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치매 케어가 얼마나 힘든데, 이야기할 시간이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치매 케어가 힘든 이유가 바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치매 어르신이 폭력 폭언을 사용하고 배회하는 등 문제 행동은 바로 '도와달라'는 구조 신호이다. 구조 신호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기계적으로 그들을 대한다면, 돌봄의 행위는 중노동이 될 뿐이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 맺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해와 공감, 위로가 없다면 기저귀 갈고 식사 수발을 하는 그 일은 그냥 고달픈 노둥이 될 수 밖에 없다.

한 연구 참여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치매 노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순간적인 행위이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잠시, 곧 과거의 집착과 염려와 근심, 폭언과 폭행으로 바뀔 수도 있지만 순간의 몰입과 경험이 축적되면서 두 사람 간의 관계는 점차 긍정적이고 상호 호혜적인 것으로 바뀌게 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서로 무관심하며 갈등 관계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치매를 가진 사람과의 대화는 일반인들의 논리적이고 맥락적 대화와는 다른 구조를 갖게 된다. 언어적, 비언어적 소통이 필요하며 사람중심케어(Person Centered Care)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배회하는 어르신에게 '어르신, 그 쪽으로 가지 마세요' 대신 '어르신, 우리 이 쪽으로 가볼까요?'라고 말하거나 '안 돼요. 제발 그만 하세요. 아까 했잖아요. 또 하시네요' 대신에 '잘하셨어요, 좋네요. 어제보다 더 잘하셨네요'라고 이야기한다. 어르신의 고향, 가족, 좋아하는 음식 등을 기억했다가 대화를 시도하는 등 치매 어르신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의외로 어렵지 않다.

◇김동선 조인케어(www.joincare.co.kr)대표/우송대학교 사회복지아동학부 초빙교수는 30대에 초고령국가 일본에서 처음 노인문제를 접한 뒤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 두고 노인문제전문가로 나섰다.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마흔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노후대책7'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번역)' '노후파산시대, 장수의 공포가 온다(공저)' 등을 썼으며 연령주의, 치매케어등을 연구하고 있다. 치매에 걸려서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며 좋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요양 현장을 만들기 위해 '사람중심케어실천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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