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항구] ㉞임자도 재원항


임자대교 건설 후 목포행 차도선 끊겨…

[아이뉴스24 대성수 기자] 전라남도 신안군의 서북쪽 맨 끝단에 자리하고 있는 섬이 임자도이다. 재원도는 임자도의 부속 섬으로 비교적 서쪽의 먼 바다에 위치한다.

재원도라는 명칭은 중국에 가는 조공선이 이 섬에 양곡을 보관했기에 ‘재물의 원천이 되는 섬’이라는 뜻으로 ‘재원(財源)도’라 불리게 됐으며, 이후에는 먼 곳에 위치한다고 해 있을 '재(在)', 멀 '원(遠)' 자를 써 현재의 재원도(在遠島)로 칭해졌다고 한다.

그만큼 재원도는 서해의 먼 바다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주변에 많은 어선이 정박할 수 있는 규모가 큰 항구가 없고 인근 바다에서는 새우, 조기 등과 같은 수산물이 많이 잡혀 비교적 최근까지 파시(波市)가 형성됐던 섬이다.

지난 2021년 3월에 완공된 임자대교. [사진=서해해경청]

1980년대 중반 파시가 끝나고 2021년 3월에는 이 섬의 관문역할을 하던 임자도가 연륙되면서 재원도는 목포와 연결되는 여객선마저 다니지 않는 섬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재원도는 주 어업철인 4~8월에는 수많은 어선이 정박해 어업을 준비하고 선원들이 휴식을 취하는 어업항으로서의 기능은 여전히 활발한 편이다. 이 때문에 재원도는 거주 인구보다 방문객인 선원들의 수가 더 많다고 한다.

“섬 주민은 30~40여명인데 어선이 40척 이상 정박해 있어 선원들은 약 300여 명이 됩니다.”

재원도 토박이인 함옥규 씨(64·재원마을)는 “정박하는 어선 대부분이 한국 국적이고 선원들도 한국인이라며 많은 어선이 기상이 악화하면 재원도로 피항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부둣가를 따라 길 양옆으로 술집, 다방, 여관, 식당, 가게들이 즐비했었습니다. 어선들이 어찌나 많이 정박하던지 목섬까지 이들 배를 발로 딛고 건너서 걸어갈 정도였습니다.”

1960년대 무렵의 재원도 모습. 재원도 항구에 파시가 형성되면 어떤 때는 재원도와 임자도 목섬까지 약 1km의 바다가 어선으로 가득 차서 배 위를 걸어서도 목섬에 건너갈 정도였다고 한다. [사진=재원도 주민 최상인씨(69·재원리)]

함 씨는 이런 파시(波市)가 4월부터 8월까지 매일 형성됐으며, 심지어 가설극장까지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들 파시는 1980년대 중반 무렵 사라졌다고 한다.

“어떤 때는 꽃게를 너무 많이 잡은 어선들이 꽃게를 그물채 매달고 항구로 들어와 주민들에게 그냥 떼어 가라고 했습니다. 게가 워낙 흔해 수게는 거름으로 쓰고 암게만 팔거나 먹었습니다.”

선주이자 재원도 문화해설사를 겸하고 있다는 함씨는 파시가 성황을 이루던 70년대 초까지 재원도의 풍요로움을 이렇게 설명했다.

또 다른 토박이인 최상인씨(69·재원리)씨는 “여객선이 다니기 전에는 임자도 목섬선착장과 재원도 간에 ‘뗀마(작은배)’라고 불리는 노 젓는 도선이 하루 2회 운항했으며, 주민들은 도선에서 내린 다음 진리항까지 2시간 30분을 걸어가 다시 배를 타고 육지에 나갔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작은 섬에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식수난이 심해 주민 대다수가 밤을 새워 조금씩 고이는 샘물을 양동이에 담아 길었다”고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했다.

또 다른 주민은 “재원도의 경우 원래부터 논이 없었고 보리, 고구마, 콩 등이 주업이었기에 봄철에는 특히 심한 식량난을 겪었다”고 소개했다.

재원도 주변에 대한 안전순찰과 선박출입항 대행소 등을 점검하기 위해 목포해양경찰서 지도파출소 소속 해경 함정이 재원도항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사진=서해해경청]

한편, 재원도의 주민들은 해양경찰의 상주를 희망하고 있다.

재원도의 경우 먼 바다에 접해 있어 많은 어선과 선원 때문에 치안문제도 있고, 어선입출항 신고를 위해서 1시간 거리의 송도나 전장포까지 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신안=대성수 기자(ds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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