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라도 데려와라"…재계, '핵심 인재' 유치戰


젊은 오너들 주도로 인적쇄신 바람…'순혈주의' 깨고 인재 앞세워 미래 준비 속도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인공지능(AI)과 로봇·자율주행·빅데이터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 나선 주요 대기업들이 '순혈주의 파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공채 출신을 우대하던 기존 조직 분위기에서 벗어나, 사업 영역이 겹치는 경쟁사나 심지어 이종 업계에서도 인재를 적극 영입하며 미래 준비에 나선 모습이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농협을 제외한 자산 기준 상위 15개 그룹 주요 계열사의 사장급(CEO 포함) 인사를 분석한 결과, 공채가 아닌 외부 출신은 37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외부 출신이 가장 많은 곳은 7명인 삼성으로 나타났고, 현대자동차그룹과 두산그룹이 각각 6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인공지능(AI)과 로봇·자율주행·빅데이터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 나선 주요 대기업들이 '순혈주의 파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진=아이뉴스24 DB]

특히 지난해 말 인사와 올해 주주총회를 통해 각 기업들이 신기술과 사업 경쟁력 확보에 중점을 두고 외부 출신 인사를 경영진에 대거 합류시킨 점이 눈에 띈다.

삼성전자의 경우 사장급 이상 20명 중 7명이 외부 영입 인사인 것으로 파악됐다. 임원급에선 지난해 정기 임원 인사에서 사내 최연소 임원으로 화제를 모았던 박창서 삼성전자 연구위원(상무)이 가장 눈에 띄는 인물로 평가된다. 1980년생인 박 상무는 구글에서 8년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한 인재로, 반도체 제조 공정에 AI 기술을 접목해 데이터를 관리하고 엔지니어링 업무의 혁신을 이끄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랩(Lab) 장을 맡았다.

지난해 말 인사에서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장 자리에 오른 박용인 사장도 외부서 영입된 인물이다. LG반도체(현 SK하이닉스)에서 반도체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박 사장은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DB하이텍 등을 거쳐 지난 2014년 삼성전자에 합류했다. 지난 2010년 퀄컴에서 삼성전자로 옮긴 강인엽 사장도 시스템LSI사업부장 등을 거쳐 지난해 말 미주 사업 총괄 자리에 올랐다.

삼성전자 DS부문 경영지원실은 최근 전사자원관리(ERP) 전문가도 영입했다. SAP 코리아에서 글로벌 ERP 전략에 대해 자문한데 이어 두산그룹에서 디지털라이제이션 서비스를 맡아온 이남호 씨를 상무로 선임했다.

또 이달에는 IBM, 인텔에서 슈퍼컴퓨팅 기술 개발을 담당해온 로버트 위즈네스키를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산하 미국 시스템 아키텍처 연구소를 이끌게 된 위즈네스키 부사장은 슈퍼컴퓨팅과 소프트웨어 설계 역량을 바탕으로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 칩 기술 고도화에 따른 고성능컴퓨팅(HPC) 기술과 AI 등 첨단 반도체 개발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로버트 위즈네스키 신임 삼성전자 부사장 [사진=링크드인]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지난 2020년부터 '정의선 회장' 체제가 되며 순혈주의가 깨지고 있다. 특히 장재훈 현대차 사장과 이노베이션 담당인 지영조 사장이 대표적 인물로 평가된다.

장 사장은 삼성그룹 공채 출신으로, 삼성물산에서 근무하다가 닛산과 노무라증권 등을 거쳤다. 벨연구소 연구원이었던 지 사장은 맥킨지, 액센츄어 등에서 컨설턴트로 일한 후 삼성전자 전무로 영입돼 기획팀 부사장까지 오른 뒤 현대차로 옮겼다.

미 항공우주국(NASA) 최고위직 출신인 신재원 사장도 현재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본부를 이끌고 있다. 현대차의 AI '싱크탱크'로 불리는 에어스 컴퍼니(AIRS Company)의 수장도 네이버랩스의 인텔리전스그룹 리더로 근무하던 김정희 최고데이터책임자(CDO)가 맡고 있다.

SK도 지난해 말 임원인사에서 새롭게 선임된 대표이사 9명 중 박원철 SKC 대표, 안재현 SK디스커버리 대표, 이규원 SK머티리얼즈 대표 등 3명을 외부에서 영입된 인사들로 채웠다. 박 SKC 대표는 글로벌 컨설팅사 BCG와 OCI, GS에너지, 하나자산운용 에너지인프라투자본부 대표 등을 거쳐 2018년부터 SK수펙스추구협의회 신규사업팀장을 지냈다. 안 SK디스커버리 대표는 대우, 이 SK머티리얼즈 대표는 이마트 출신이다.

LG그룹도 지난 2018년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외부인사 수혈 움직임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지난 2018년 13명의 외부인재를 그룹으로 끌어들였던 LG는 2019년 16명, 2020년 22명, 지난해에는 28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특히 핵심 계열사인 LG전자가 외부 인재 영입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LG전자는 글로벌 기업 P&G에서 브랜드마케팅 분야 전문가로 활동한 김효은 상무를 글로벌마케팅센터 브랜드매니지먼트담당으로 영입한 데 이어 고객과 시장 트렌드 분야 전문가인 이향은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교수를 생활가전(H&A)사업본부 고객경험 혁신 븐야 상무로 끌어들였다.

또 최근에는 스마트 TV 사업 생태계 확장을 위해 삼성전자 출신인 조병하 전무도 영입했다. TV 사업을 담당하는 HE(홈엔터테인먼트)사업본부 산하 HE플랫폼사업담당으로 합류한 조 전무는 2009년부터 2020년까지 삼성전자 미국 법인에서 근무하면서 갤럭시 스마트폰 앱 생태계를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한 후 삼성전자 전장 사업 자회사 하만에서 차량용 앱 관련 업무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 회장이 신사업 먹거리로 낙점한 AI도 외부 인재를 중심으로 움직여지고 있다. AI 전문가 서정연 서강대 교수와 이문태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를 핵심 인재로 선발한 LG는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에 'LG AI 리서치센터'를 신설, 현재 북미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AI 인재 영입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로봇 분야를 신사업의 한 축으로 보고 세계적인 로봇 과학자 데니스 홍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기계공학과 교수를 자문역으로 영입해 주목 받았다.

김상현 롯데 유통군 총괄대표(왼쪽)와 안세진 롯데 호텔군 총괄대표 [사진=롯데그룹]

'순혈주의'를 고수했던 유통업계도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비대면 소비 확산 등 유통산업의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내부 인재들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파격 인사는 대내외적으로 크게 주목 받았다. 지난해 말 정기인사에서 홈플러스 대표를 지낸 김상현 부회장을 롯데쇼핑 수장으로 영입한데 이어 롯데백화점 대표에 신세계 출신인 정준호 대표를 앉혔기 때문이다.

또 롯데멤버스에는 신한DS 디지털본부장 출신 정봉화 상무를 DT전략부문장으로 임명했고, 호텔군 수장에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 커니 출신으로 LG그룹과 LS그룹, 놀부 대표를 역임한 안세진 사장을 기용했다. 이 외에 강성현 롯데쇼핑 마트사업부 대표, 나영호 롯데쇼핑 이커머스사업부 대표도 모두 외부에서 영입됐다.

임원급에서도 외부 인재 영입이 활발하다. 유통군 헤드쿼터(HQ)는 올해 1월 오라클, 이베이코리아에 몸 담았던 현은석 부사장을 디지털혁신센터장에 선임한 데 이어 백화점의 럭셔리 상품군을 총괄하는 MD1본부장에 지방시 코리아 지사장 겸 대표를 지낸 이효완 전무를 영입했다. 이달 초에는 P&G, LG전자, LG생활건강을 거친 마케팅·브랜딩 전문가 이우경 부사장을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선임했다.

여기에 신 회장은 외부 인재 영입을 위해 최근 그룹 내부에 외부 인재 영입 전담팀인 '스타(STAR)' 팀도 신설했다. 기존 인재육성팀의 역할을 확대 개편한 이곳은 외부 인재 확보부터 최고경영자(CEO)로 키우기 위한 관리까지 맡는다.

신세계그룹에선 강희석 이마트 사장, 송현석 신세계푸드 대표, 이길한 신세계인터내셔날 대표 등이 외부 출신 인재다. 송 대표는 오비맥주, 이 대표는 호텔신라를 거쳐 영입됐다.

CJ그룹 역시 외부 출신 인재가 곳곳에 포진해 있다. 최은석 CJ제일제당 대표는 삼일회계법인, 구창근 CJ올리브영 대표는 삼성증권 출신이다.

재계 관계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대기업들이 그룹 공채에 기반을 둔 연공서열과 순혈주의 기조로 조직을 이끌어 왔지만, 최근 젊은 오너들이 경영 일선에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외부 인재 영입이 활발해지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과거 성장 전략에 맞춰진 경직된 조직문화로는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이 어렵다고 판단해 이 같이 나선 듯 하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에는 경쟁사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하는 것은 상도의를 깨뜨리는 일종의 '불문율'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AI나 빅데이터 같은 미래 산업의 근간이 되는 기술은 특히 실무 경험이 풍부한 인재가 적어 경쟁사에서 근무했던 사람이라도 꼭 필요하다면 더 좋은 조건을 제안해 영입해야 한다고 보는 기업들이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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