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로컬의힘]당진 버그내순례길… '길 위에서 평안을 얻다'


'한국의 산티아고'… 지역 명소 넘어 세계적 순례길로 자리매김

[아이뉴스24 이숙종 기자] 프랑스 생장피에드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이르는 800km 여정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코로나19 이전에는 한해 30만명이 다녀갈 만큼 세계적인 명소로 유명하다. 하루에 20km이상, 한달을 꼬박 걸어야하는 고된 일정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걷는 이유는 단순하다. 걸으면서 치유를, 위로와 평안을, 또 희망을 얻기 때문이다. 걷는 것 만으로 삶의 선물이 되는 순례길이 한국에도 존재한다. 바로 충남 당진 버그내 순례길이다.

솔뫼성지를 시작으로 합덕성당과 신리성지 등 10곳의 장소를 둘러볼 수 있는  총 17.5km의 버그내 순례길 [사진=이숙종 기자]
솔뫼성지를 시작으로 합덕성당과 신리성지 등 10곳의 장소를 둘러볼 수 있는 총 17.5km의 버그내 순례길 [사진=이숙종 기자]

◆ 걷는 것만으로 삶의 선물이 되는 길

새해가 밝아도 코로나19 장기화는 우리 삶을 여전히 지치고 고되게 한다. 신년 인사도 조심스러워지는 시기, 문득 '길을 걷는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고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라는 시 구절이 떠올랐다. 새해 인사 대신 걸으며 나와 이웃의 안녕을 기원해 보기에 좋은 곳을 찾아 나섰다.

버그내 순례길이 시작되는 솔뫼성지. 김대건 신부와 프란치스코 교황 조형물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사진=이숙종 기자]
버그내 순례길이 시작되는 솔뫼성지. 김대건 신부와 프란치스코 교황 조형물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사진=이숙종 기자]

버그내 순례길은 천주교 박해기 신자들 간 만남의 공간이었던 버그내 시장과 합덕성당, 조선시대 3대 방죽 중 하나인 합덕제를 지나 무명 순교자 묘역과 조선의 카타콤바(비밀교회)로 불리는 신리성지를 거쳐 복자 김사집 프란치스코를 기념하는 하흑공소까지 17.5km의 코스로 연결 돼 있다.

솔뫼성지에서 하흑공소까지 17.5km의 버그내 순례길이 시작되는 곳 [사진=이숙종 기자]
솔뫼성지에서 하흑공소까지 17.5km의 버그내 순례길이 시작되는 곳 [사진=이숙종 기자]

순례길은 국내 첫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 탄생지 솔뫼성지에서 출발한다. 19세기 충청도 천주교 순교자들의 역사가 깃든 이곳은 이름처럼 소나무 동산이 장관이다. 이곳에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솔뫼성지를 방문했을 때 김대건 신부의 생가 앞에 앉아 고개 숙여 기도하던 모습이 동상으로 제작돼 있다.

솔뫼성지 내 김대건 신부 생가 앞에는 2014년 이곳을 방문해 기도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이 동상으로 만들어져 있다. [사진=이숙종 기자 ]
솔뫼성지 내 김대건 신부 생가 앞에는 2014년 이곳을 방문해 기도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이 동상으로 만들어져 있다. [사진=이숙종 기자 ]

솔뫼성지를 지나 무명 순교자의 묘역에 도착했다. 1972년 발굴 당시 목이 없는 시신 32구와 묵주 등이 발견되자 마을 주민들이 6개의 봉분에 나눠 합장을 한 곳이다. 이름도 없이 낮은 곳에서 신앙을 지켰던 순교자들이 잠들어 있는 이곳을 둘러보고 있으면 절로 숙연해지는 감정이 인다.

이름도 없이 신앙을 지켰던 무명 순교자들이 잠들어 있는 묘역  [사진=이숙종 기자]
이름도 없이 신앙을 지켰던 무명 순교자들이 잠들어 있는 묘역 [사진=이숙종 기자]

이어 조선에서 가장 규모가 큰 천주교 교우 마을인 신리가 가까워 오면서 조선의 카타콤바로 불리는 신리성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신리성지는 박해시대의 교우촌으로 손자선 토마스 성인의 생가이자 조선교구5대교구장인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가 내포지방의 선교활동을 지휘하던 주교관이자 교구청으로 사용된 초가집이 복원 돼 있다. 곳곳에 경당(기도하는곳)이 있어 차분하게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을 갖기도 좋다.

'조선의 카타콤바'로 불리는 신리성지  [사진=이숙종 기자]
'조선의 카타콤바'로 불리는 신리성지 [사진=이숙종 기자]

순례길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이곳을 찾게 됐는지 묻지 않아도 서로의 발걸음에 맞춰 걷게 된다. '나'를 보듬으며 '함께' 걸어가는 길이다.

◆ 교황 방문 후 유명세

지난 2014년 교황 방문 이후 솔뫼성지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버그내 순례길도 유명세를 탔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주말 기준 평균 1500여명 정도로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았다. 버그내 순례길이 산티아고 순례길과 규모면에서 비교할 수 없다고 해도 순교자들의 숭고한 정신이 깃든 장소를 둘러보면 그 이상의 큰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당진시는 지역 천주교 유적지를 하나로 잇는 버그내 순례길을 명소로 만들기 위해 대한민국 산티아고순례자협회, 한국관광공사 등과 손잡고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순례길마다 기념 스탬프를 찍고  10곳의 순례길을 모두 완주하게 되면 기념 뱃지를 선물로 받을 수 있다. [사진=이숙종 기자]
순례길마다 기념 스탬프를 찍고 10곳의 순례길을 모두 완주하게 되면 기념 뱃지를 선물로 받을 수 있다. [사진=이숙종 기자]

대한민국 공식 산티아고 순례자 여권에 버그내 순례길을 홍보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버그내 순례길 이정표를 설치하는 등 버그내 순례길의 관광 자원화를 추진하고 있다. 버그내 순례길 스탬프도 만들어 순례길을 완주한 여행자들에게 의미있는 선물도 제공한다.

지난해에는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버그내 순례길 스마트폰 앱도 개발했다.

버그내 순례길 앱은 순례길 위치정보와 함께 위치 거점의 상세한 정보, 날씨, 걸음 수, 활동 칼로리 등 부가 정보를 한 번에 보여준다. 시는 2028년까지 30억원을 들여 버그내 순례길 주변을 정비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시 관계자는 "버그내 순례길은 종교를 떠나 누구나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며 "한번만 다녀가는 여행지가 아니라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 마음이 쉬어가는 의미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관광 인프라 조성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진=이숙종 기자(dltnrwhd@i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로컬의힘]당진 버그내순례길… '길 위에서 평안을 얻다'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