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언어, 이대론 안 된다] ‘제고’에만 ‘기여’하는 공공언어…우리말이 없다


‘그들만의 공고한 언어 벽’ 있는 것일까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금일 동 기관은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국가 발전에 기여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전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흔히 볼 수 있는 공공기관 보도자료 중 하나이다. 공공기관이 사용하는 언어 중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를 꼽으라면 ‘제고’와 ‘기여’ 등이다. 공공기관에서 ‘제고’와 ‘기여’는 일상어처럼 통용되고 있다. ‘제고’와 ‘기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마치 공문서가 갖춰지지 않는 것처럼 인식될 정도이다.

위 문장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다만 이 문장이 공공기관에서 나온 공문서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모든 국민이 접하는 공공언어는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다가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이 권고한 '공공언어 바로 쓰기'를 참고해 위 문장을 고쳐보면 "오늘 우리 기관은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정도가 된다.

공공기관 공문서에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제고'와 '기여' 등이다.국립국어원은 쉬운 우리말을 사용하라고 권고했다. [사진=국립국어원]

제고(提高)는 ‘수준이나 정도 따위를 끌어올림’이란 뜻을 지닌 한자어이다. 기여(寄與)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도움이 되도록 이바지함’이란 뜻의 한자어임을 알 수 있다.

국립국어원이 내놓은 ‘한눈에 알아보는 공공언어 바로 쓰기(개정)’에는 ‘제고하고→높이고’로, ‘기여하는→이바지하는’ 것으로 바꿔 쓸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공공언어에는 ‘제고’와 ‘기여’가 판을 치고 있다.

지난 5일 한국식품연구원(식품연)은 ‘여성 갱년기 증상 완화 프로바이오틱스 연구, 2021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 선정’이란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이 자료에서 백형희 식품연 원장은 '코멘트'를 통해 "…갱년기 증상을 경감시키기 위한 기능성식품으로 사용 가능함에 따라 갱년기 증상 치료는 물론 갱년기 증상으로 인한 생활 활동 효율 감소에 따라 소모되는 직·간접 비용을 감소시켜 의료비 및 사회경제적 비용 절감 효과 및 국내 프로바이오틱스 시장 규모 확대로 인한 신규 일자리 및 고용창출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문장이 긴 것은 물론 여러 요소가 무차별 나열돼 있다 보니 무엇을 정확히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여기에 마지막 부분에서 ‘고용창출에 이바지한다’ 또는 ‘일자리 만들기에 이바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등으로 써도 문제가 없는데 굳이 ‘고용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공공기관에게 있어 '기여'는 한자어가 아닌 일상어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습이다.

한자어로 써야 할 때도 있다. 의미상 한자어를 쓰지 않으면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는 그럴 수 있다. 문제는 굳이 한자어를 쓰지 않아도 되는데 한자어를 쓰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데 있다. 한자를 써야 권위가 있는 것처럼, 혹은 뭔가 있어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배경 때문일까.

지난 6일 한국수력원자력은 ‘한국수력원자력, 폴란드 신규원전 수주전 총력’이란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서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한국형 원전은 안전성, 기술성, 경제성 등 모든 측면에서 세계 최고라 확신한다”며 “한수원이 UAE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우수한 건설 역량을 바탕으로 폴란드의 저탄소 에너지 전환 정책에 기여하고 100년에 걸친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역시 ‘폴란드의 저탄소 에너지 전환 정책에 기여하고’라고 썼다. ‘기여’를 ‘이바지’라는 쉬운 우리말로 고쳐 쓰는 게 그만큼 어려운 것일까. 아니면 ‘기여’라는 것을 우리 말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공공기관, 그들만의 언어벽’이 존재하고 그 벽은 절대 깰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가 있는 것일까.

'공공언어 경쟁력을 높여 국가 언어발전에 이바지하는 공공기관'의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세종=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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