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도가 푼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삼차각설계도'는 4차원 시공간에서 '무한육면각체'를 건축하는 설계도다"

[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9월23일은 천재 시인 이상(李箱,1910-1937)의 탄생 111주년이다. 한 물리학도가 이상의 손꼽히는 난해시 ‘삼차각설계도’(1931)와 ‘건축무한육면각체’(1932)의 수수께끼를 4차원 기하학으로 해석한 논문을 발표해 눈길을 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머세드 물리학 박사과정생 오상현 씨(GIST 물리전공 2020년 졸업)와 GIST 기초교육학부 이수정 교수는 한국어문학국제학술포럼이 발간하는 'Journal of korean Culture' 최신호에 '이상 시의 4차원 시공간 설계 및 건축'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저자는 이상의 시 '삼차각설계도'의 '삼차각'과 이후 1년 뒤에 발표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육면각'이 같은 의미임을 수학적으로 증명하고, ‘삼차각설계도’는 4차원 공간상에서의 설계도를 의미하며,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삼차각설계도'를 바탕으로 4차원 공간에서 건축하는 과정을 시로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상이 설계한 4차원 공간이란 1개의 시간축과 3개의 공간축이 결합된 4차원 시공간이며, 이는 시에 다수 등장하는 상대론적 개념이 4차원 시공간을 다루는 이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상은 당대 최신의 물리학 이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4차원상에서 임의의 도형을 설계 건축하는 시도를 연작시에 남겼고, 이 과정에서 기하학적 용어를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이 이 논문의 요지다.

이수정 지스트 기초교육학부 교수(왼쪽, 교신저자)와 오상현 캘리포니아대학교 머세드 물리학부 박사과정(제1저자) [사진=GIST]

‘삼차각’과 ‘육면각’, ‘무한육면각체’등은 이상이 만들어낸 조어다. 7부작으로 이루어진 '삼차각설계도'에는 기하학과 물리학, 특히 상대론과 우주론에 관한 용어들이 다수 언급되며 문자 외에 다양한 도식이 등장한다.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이들의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지만 완벽하게 앞뒤가 맞는 해석은 나오지 않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오상현 씨는 논문에서 "‘삼차각’은 4차원 공간상에서 물체의 물리적 위치를 '초구면좌표계(hyperspherical coordinates)'로 나타낼 때 필요한 세 개의 각도값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육면각’이란 삼차각의 적분으로 얻어지는 초입체각이며, 그와 동시에 4차원상에서 한 점에서 만나는 여섯 개의 면이 이루는 각"이라고 설명한다.

2차원 평면도형에서 두 개의 선이 만나 이루는 각을 '일차각', 3차원 입체도형에서 3개의 면이 만나 이루는 각을 '이차각'이라 한다면 4차원 시공간에서의 각도값을 '삼차각'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2차원 평면에서 어느 한 점의 위치는 x축과 y축을 기반으로 (x,y)라는 좌표로 표현할 수 있으며, 3차원 공간에서는 (x,y,z) 좌표로 나타낼 수 있다. 3차원 공간의 위치는 x,y,z축으로 이루어지는 직교좌표계 외에도 기준점에서의 거리와 각도를 값으로 한 구면좌표계로도 표현할 수 있는데, 이 때의 두 각도(위도와 경도)를 2차원 각도라 할 수 있다. 나아가 4차원 공간에서의 한 점의 위치를 표시할 수 있는 '초구면좌표계'가 있다면 이 좌표계에는 세 개의 각도가 존재하며 이상이 이를 '삼차각'으로 표현했다는 해석이다.

저자는 또한 ‘육면각’은 3차원 도형에서 임의의 한 점을 추가해 '각진 4차원 도형'을 그리면 한 점에 6개의 면이 만난다는 것에 착안해 고안된 용어라고 해석하고, '삼차각'과 '육면각'은 결과적으로 같은 뜻이며 ‘육면각체’는 각진 4차원 도형, ‘무한육면각체’는 무한히 많은 점으로 이루어진 4차원 도형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상은 "정적인 3차원 건물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는 동적인 물체와 사건의 흐름까지 기획하고자 하는 시도를 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육면각'에 대한 설명. 3차원 입체인 0123에, 4차원상의 다섯번째 점인 4를 더해 5개의 꼭지점을 가진 4차원 도형 01234를 얻었다고 가정하면 이 오면체의 꼭지점 하나는 여섯 개의 면(012, 013, 014, 023, 024, 034)으로 둘러쌓인다.즉, 4차원 공간에서 하나의 삼차각 크기는 여섯 개의 면에 의해 정의되는 육면각이다. [사진=GIST]

연구팀은 두 시에 등장하는 시구들을 통해서도 이같은 해석을 뒷받침했다. 논문에는 '삼차각설계도'와 '건축무한육면각체' 연작시에 등장하는 다양한 물리학적, 기하학적 표현들이 특수상대론과 일반상대론을 암시하고 있음을 제시하고, 궁극적으로 이상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들에 대해 유추한다.

이상(본명 김해경)의 시 '삼차각 설계도_선에 관한 각서I' 의 한국어 번역본. [사진=GIST]

'각서1'의 도식과 '스펙트럼', 'X, Y, Z라는 세 개의 축'에 대한 해석. 도식의 각 점에 색을 입히면 각 점에서 나오는 빛의 스펙트럼을 활용해 2차원 평면에 3차원 공간을 표현할 수 있다. 이상은 이런 방식으로 차원확장을 시도했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사진=GIST]

연구팀은 “이 논문으로 이상의 초기시가 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4차원 시공간에서의 설계와 건축을 문학적으로 구현하려는 시도였음이 규명됐다” 면서 “이번 연구는 이상의 4차원 기하학을 활용한 사유와 독창적인 상상력이 작품에 구현된 경로를 조명했으며, 이상의 난해시를 파해하기 위한 후속 연구의 디딤돌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수정 교수는 지난 2020년 1학기에 개설한 ‘이상문학과 과학’ 수업에서 오상현 씨가 기말리포트를 통해 제시한 삼차각 관련 아이디어의 중요성에 주목해 이후 함께 지속적인 회의와 작업을 거쳐 이번 논문을 완성했다고 전했다.

논문은 KCI(한국학술지인용색인)에서 검색할 수 있으며, 아래 링크에서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754263

논문의 주요 개념과 논점을 요약‧소개하는 영상(20분) :: https://youtu.be/hoH1GrumJ58

/최상국 기자(skcho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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