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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쥴리 벽화' 소동, 증오만 남았다


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 외벽.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인 김건희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쥴리 벽화'가 검은 페인트 등으로 덧칠돼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했다. [사진=정호영 기자]
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 외벽.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인 김건희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쥴리 벽화'가 검은 페인트 등으로 덧칠돼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했다. [사진=정호영 기자]

[아이뉴스24 정호영 기자] 1일, 일명 '줄리 벽화'로 세간을 흔든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을 찾았다. 약 2주 전 이 서점 외벽에 그려진 해당 벽화는 야권 대선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인 김건희씨의 루머를 소재로 했다.

벽화를 주도한 서점 주인 A씨는 숱한 언론 인터뷰에서 '표현의 자유'를 입에 담았지만, 내용은 풍자나 자유를 빙자한 인격살인이나 다름없었다.

벽화에는 김씨의 얼굴을 본뜬 여성 그림과 '쥴리의 꿈', '영부인의 꿈', '쥴리의 남자들' 등의 글귀가 담겼다. 김씨의 미확인 사생활 의혹을 인용한 '2000 아무개 의사', 2005 조 회장' '2009 윤서방 검사' 등의 문구도 새겨졌다. 김씨가 만나온 남성들이라는 취지일 게다.

친(親)여·야 성향 시민들이 벽화를 놓고 언성을 높이며 대립하기 시작했다. 벽화가 부각된 지난달 30일 경찰에 관련 신고만 40여건 접수됐다고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여성혐오·인격모독 논란에 불이 붙었다.

문제가 커지자 A씨는 지적된 글귀'만' 흰 페인트로 덧칠해 감추는 방법을 택했다. 반발한 누군가에 의해 벽화 절반은 다시 검은 페인트로 뒤덮였다. 인위적으로 감춰진 비방은 다른 비방이 대신했다.

'쥴리 벽화'가 새겨진 외벽에 붙은 고(故) 육영수 여사 추모공연 포스터가 훼손돼 있다. [사진=정호영 기자]
'쥴리 벽화'가 새겨진 외벽에 붙은 고(故) 육영수 여사 추모공연 포스터가 훼손돼 있다. [사진=정호영 기자]

이날 목도한 벽화는 흉물에 가까웠다. 문재인 대통령, 여권 대선주자를 향한 조롱조의 글귀와 욕설이 공백을 채웠다. 보수 지지자가 붙인 듯한 고(故) 육영수 여사 추모공연 포스터는 처참하게 훼손돼 있었다. 이념을 가르는 '증오 시대'의 한 단면으로 보였다.

윤 전 총장 측이 벽화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벽화 소동은 진정 국면으로 가나 싶었다. 하지만 벽화에 불만을 품은 한 단체가 A씨 등을 경찰에 고발한 데 이어 A씨도 검은 페인트로 벽화 일부를 덧칠한 인물을 재물손괴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외벽 밖의 진흙탕 싸움 '2라운드'가 예고된 상태다.

2일 '쥴리 벽화'가 하얀 페인트로 덧칠돼 있다. [사진=뉴시스]
2일 '쥴리 벽화'가 하얀 페인트로 덧칠돼 있다. [사진=뉴시스]

주말 낮이었지만 서점 앞은 한산했다. 이따금 지나가는 시민들이 신기한 듯 휴대폰을 꺼내 말없이 사진을 찍을 뿐이었다. 현장에는 오갈 데 없는 증오만 남은 듯했다. 그로부터 하루 뒤인 2일 오후, A씨는 논란이 된 벽화 전체를 흰 페인트로 덧칠했다. 누가 상처를 받아도 페인트 덧칠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인 걸까. '조롱 벽화'가 며칠 새 우리 사회에 남긴 것이 증오 외에 뭐가 더 있을까 싶다.

/정호영 기자(sunris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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