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12월21일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가 LA에서 태어났다. '플로 조'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진 조이너는 88년 서울올림픽 여자 육상 100m에서 10.49초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200m와 400m 계주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해 3관왕에 올랐다.
UCLA대학에서 밥 커시의 지도를 받은 조이너는 82년 미 대학체육위원회(NCAA) 200m에서 우승한 뒤 이듬해 400m 타이틀을 획득하며 주목받는 스타로 떠올랐다.
84년 고향에서 열린 LA 올림픽에 미국대표로 출전한 그는 200m에서 은메달을 따낸 뒤 3단뛰기 금메달리스트인 알 조이너와 87년 결혼에 성공했다.

정상을 향해 나아가던 조이너는 88년 서울에서 이룬 성과로 AP통신 선정 '올해의 여자 선수'에 뽑혔고, 미국 최우수 아마추어 선수에게 수여되는 설리번상까지 품에 안았다. 이룰 것을 모두 이룬 그는 이듬해 은퇴를 선언하며 눈부셨던 선수 생활을 정상에서 마무리했다.
기다란 손톱과 치렁치렁한 머리, 그리고 화려한 메이크업으로 유명했던 그는 패션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89년 미국프로농구(NBA)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유니폼을 직접 디자인해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그러나 98년 충격적인 소식이 전세계에 타전됐다. 그토록 건강하고 강인했던 조이너가 수면도중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다는 뉴스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38세.
믿을 수 없는 소식에 사람들은 그의 사망 원인에 대해 논란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올림픽 이후 계속돼 온 그의 약물복용설은 점점 증폭돼 갔다. 도핑테스트에서 걸리지 않는 특수 약물을 복용한 게 확실하다는 주장이 난무했다.

하지만 결론은 없었다. 조이너의 정확한 사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진정 갑작스런 심장마비에 불과한지, 심장에 이상을 일으킬 만한 약물을 오랫동안 투여했기 때문인지는 아직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조이너의 짧은 생애에는 스포츠 전문 기자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모두 담겨 있다. LA의 극빈가정에서 11명의 형제 중 7번째로 태어나 두 다리 만으로 성공을 거둔 그의 삶은 확실히 평범하지 않다.
어쩌면 내리막길을 거부하고 최고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섰기에 그에 대한 신화가 증폭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땅에서 열린 올림픽, 우리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는 그 무대에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100m 결승라인을 통과한 조이너의 모습은 약물복용에 관계없이 우리들 기억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LA시는 2000년 5월 시를 빛낸 공로로 LA 남부 미션비에호에 그의 이름을 딴 공원을 개장했다.
/김형태 기자 horse@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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