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원래 잘 나가는 컴퓨터업체였다. 요즘 세대들에게는 아이팟(iPod)이란 MP3 플레이어로 유명하지만, 한 때는 세계 컴퓨터 시장을 20%나 점유하던 실력자였다.
초기 제품인 애플1, 애플2는 컴퓨터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들에겐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같은 존재다. 기술력이나 성능만 놓고 따지면 매킨토시로 대표되는 애플의 실력은 세계 PC 환경을 독식하고 있는 IBM PC나 윈도 운영체제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애플엔 딱 2% 부족한 것이 있었다. '호환'이란 신조류를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다. '괴팍한 천재'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기술력만 믿고 '고립 정책'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경쟁업체를 상대로) 고립정책을 택했던 애플은 결국 고객들로부터도 고립되는 슬픔을 맛봤다. 노회한 스티브 잡스도 최고의 제품이 반드시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라는 진리는 몰랐던 것이다.
요즘 애플은 잘 나가는 디지털 음악업체이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이젠 디지털음악이 컴퓨터 부문을 앞지른다. 디지털 음악은 애플의 '차세대 성장동력'인 셈이다.
하지만 최근 애플의 디지털 음악 전략을 유심히 살피다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대목이 적지 않다. 자꾸만 '매킨토시의 망령'을 떠올리게 한다.
애플은 mp3 형식의 파일이 주류를 이루는 디지털 음악 시장에서 여전히 '아이팟 폐쇄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애플 관계자들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1970, 1980년대를 거치면서 호된 맛을 봤던 '고립 전략'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리얼네트웍스와 벌이는 공방은 애플식 '고립 전략'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플은 지난 29일(이하 현지 시간)엔 리얼네트웍스를 '해커 같은 기업'이라며 맹공격했다. 해커들이 쓰는 수법을 차용해 아이팟에 무임승차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애플이 이처럼 흥분하는 것은 리얼네트웍스가 지난 26일 발표한 하모니(Harmony)란 소프트웨어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리얼네트웍스의 '하모니'는 한 마디로 범용 소프트웨어이다. 자사 온라인 뮤직 스토어에서 다운받은 파일을 아이팟에서도 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제품이다. 아이팟 뿐 아니다. 윈도 미디어, 리얼 미디어 등 모든 디지털 음악기기에서 호환되도록 하겠다는 것이 하모니의 기본 컨셉이다.
하지만 애플은 '하모니'와 조화시킨다는 것을 거부했다. 아이팟 차기 모델을 내놓을 때는 하모니를 막아버리겠다고 선언했다.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엄포도 놓았다.
애플 입장에선 리얼네트웍스가 '잘 나가는' 아이팟을 이용해 자사 소프트웨어를 팔아 먹으려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애플이 과연 이렇게까지 흥분할 문제인가란 의문이 강하게 든다. 차라리 '초기부터 내려온 호환이란 전통을 따르려 했다'는 리얼네트웍스의 항변이 더 설득력있게 들린다. '그렇게 할 경우엔 아이팟 판매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란 리얼네트웍스의 주장 역시 훨씬 그럴듯해 보인다.
리얼네트웍스는 지난 4월에도 애플 측에 제휴를 제의했다가 퇴짜를 맞은 적이 있다. 거듭된 러브콜을 거절당한 리얼네트웍스는 "애플이 PC 시장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다시 컴퓨터 얘기로 돌아가보자. 많은 전문가들은 1980년대 애플의 최대 실책으로 '매킨토시 폐쇄 정책'를 꼽고 있다. 당시 애플은 매킨토시 운영체제에 대한 라이선싱을 허용해 달라는 개발자들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만약 애플이 매킨토시를 과감하게 개방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많은 전문가들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윈도 독점 체제를 구축하기 힘들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금 애플은 디지털 음악시장에선 최고의 실력자로 꼽힌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팟'이란 히트 상품에 대한 애착이 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애플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아이팟 고립정책'을 고수할 경우엔 매킨토시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수도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대중을 상대로 한 신기술, 신제품은 나눌수록 더 커지기 때문이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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