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기자] 삼성전자의 플래그십 스마트폰은 '갤럭시S' 시리즈다. 2010년 첫 모습을 드러낸 이후 올해까지 총 8세대를 거쳤다. 시작은 아이폰 대항마였지만 현재는 그 자체로 글로벌 1위인 삼성전자를 상징하는 그 자체로 부상했다.
아이폰의 대항마로 불린 갤럭시S지만 사실 첫 대항마는 따로 있었다. 옴니아를 빼놓을 수 없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듯 옴니아가 있었기에 갤럭시S가 자리할 수 있었다.

애플이 지난 2007년 첫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글로벌 휴대폰 지형도가 크게 변했다. 손 안의 PC라 불린 스마트폰이 전면에 등장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기존 휴대폰 업체들은 아이폰의 성공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애플은 휴대폰 시장에서는 꽤 뒤떨어진 후발주자였다. 후발주자의 단 한번의 맹공에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 셈이다. 아이폰의 기세를 꺾고,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전략폰 출시가 급선무였다.
그래서 내놓은 삼성전자의 카드가 '옴니아'였다. 옴니아의 위세는 대단했다. 삼성전자의 하드웨어 역량과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결합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말 그대로 '전지전능'을 꿈꿨다.
첫 옴니아는 2008년 11월 27일 SK텔레콤을 통해 출시됐다. 4GB 모델은 96만8천원, 16GB 모델은 106만8천100원이나 했다. 이후 옴니아HD, 옴니아2가 연달아 출시됐다. KT를 통해서는 쇼옴니아를, LG유플러스에서는 오즈옴니아가 판매됐다. 영국과 미국 지역에서는 옴니아7이라는 명칭으로 론칭됐다.

다만, 결과는 참혹했다. 미진한 생태계와 느린 속도, 각종 버그, 모바일에 익숙치 않은 PC UX 등에 발목이 잡혔다. 심하게는 망치로 옴니아를 깨부수는 영상이 돌기도 했다. 모든 것이 가능했지만, 모든 것이 잘 되지 않는 폰으로 전락했다.
시장조사업체 마케팅인사이트의 2010년 당시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옴니아2는 소비자만족도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특히 외관과 디자인, 키패드와 터치, OS, 인터넷, 앱 사용면에서 최저점을 받았다. 압도적인 1위는 아이폰이었다.
비록 옴니아의 실패를 통해 좌절을 맛봤지만 삼성전자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시련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은 끈기를 보여준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서 진행된 '애니콜 화형식'은 지금도 회자되는 사건이다. 애니콜 불량률이 치솟던 시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놈담이 아니라 마누라, 자식 빼놓고 다 바꿔라"라고 말할만큼 품질혁신의 의지를 드러낸 때였다.
결국 이 화형식을 통해 삼성전자는 국내 점유율을 50% 이상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삼성전자는 옴니아 단종을 선언하고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체(OS)로 전략을 수정했다. 절치부심한 삼성전자는 새로운 스마트폰을 고안했다. 소량다품종이 아닌 삼성전자를 대표할 수 있는 브랜드로 '갤럭시'를 구축하고 최상위 모델인 '갤럭시S'를 공개했다.

삼성전자 갤럭시S가 첫 공개된 시기는 2010년 3월 23일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ITA2010에서 첫 선보였다. 아이폰 대항마로 알려지면서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국내는 3개월 후인 6월 24일 SK텔레콤을 통해 출시됐다. 가격은 94만9300원으로 책정됐다. 신종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과 SK텔레콤 하성민 대표, 구글의 앤디 루빈이 함께했다.
4인치 슈퍼 아몰레드 디스플레이와 9.9mm 얇은 두께, 1GHz 클럭속도의 삼성 모바일AP, 16GB 저장공간, 500만화소 오토포커스 후면 카메라 등 높은 하드웨어 성능을 갖췄다.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이 늘어남에 따라 활용폭이 더 넓어졌다.
삼성전자는 초도물량으로 5만대를 생산해 전국에 공급했다. 첫날 5시간만에 1만대가 동났다. 5일만에 10만 가입자를 돌파했다. 20만 가입자는 10일만에, 50만 가입자는 1개월만에 달성했다. 삼성전자의 호조로 SK텔레콤까지 덩달아 실적 향상을 이뤘다.
국내서는 이통사의 입김이 강했던 시기로 제조업체의 니즈보다는 이통사의 요구대로 스마트폰이 출시되는 시기였다. 갤럭시S는 SK텔레콤 전용폰으로 출시됐다. 타 이통사로눈 스펙을 소폭 낮춘 변종 모델로 판매됐다. LG유플러스로는 같은해 8월 19일 갤럭시U가 KT에서는 같은해 10월 11일 갤럭시K로 모습을 달리했다.

옴니아와는 달리 갤럭시S는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디자인부터 성능까지 많은 호평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마케팅 전략이 주효했다. 애플 아이폰에 대항할 수 있는 대표 제품이 부재한 상황에서 갤럭시S를 그 옆에 앉혀 반사효과를 누렸다.
갤럭시S는 다음해인 2011년 1월 1000만 대 돌파에 성공했다. 국내서는 200만대, 유럽에서 250만대, 북미에서 400만대, 기타 150만 대를 팔아치웠다. 그로부터 1년후인 2012년 1월 누적 판매량 2500만 대를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2011년 출시된 갤럭시S2가 갤럭시S의 대중화에 기여하면서 삼성전자는 휴대폰 강국인 노키아를 누르고 글로벌 휴대폰 시장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옴니아는 비록 단종됐지만 윈도폰은 추후 ‘아티브’라는 브랜드를 통해 재부활했다.
/김문기기자 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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