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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적 비화폰 논쟁, '이제 그만'


 

정보통신부 국정감사의 단골 메뉴인 도·감청 이슈가 올해도 결론 없이 끝나고 말았다.

올해는 복제휴대폰을 통한 도청 가능성 문제가 새롭게 제기됐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도청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정통부의 해명을 누구도 뒤집지 못한 채 끝났다.

결국 3천300만명에 달하는 소비자들의 궁금증과 우려를 부풀려 놓기만 하고 '한바탕 잔치'는 막을 내린 셈이다.

당장 시중에서 도감청 방지 제품의 판매가 급증하는 데서 드러나듯, 그 후유증이 결코 적지 않음에도 또 그냥 일회성으로 스쳐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국감 막판에 불거진 비화단말기 논쟁은 오랜 도·감청 논쟁의 실상을 집결시켜 놓은 듯 했다. 도·감청 문제를 보는 국회의원들의 시각과 정통부의 시각차를 극명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또한 결론은 없었고, 소비자들만 혼란의 도가니로 내몰리게 됐다. 일부 의원들이 국감 후에 '청문회'를 추진하고 있어 결론을 기대할 일말의 여지는 남아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비화단말기 논쟁은 청문회를 연다고 하더라도 '결론'은 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번 국감에서 진행된 비화단말기 논쟁은 한편의 '코메디'였다.

◆비화단말기 논쟁의 시작

지난 6일 정통부 국감에서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청와대 경호실이 지난 4월 일부 국무위원과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화 휴대폰을 지급했다"며 "국민에게 도청이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정부는 비밀통화를 하겠다는 부도적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이날 또 "정통부가 지난 2001년 12월 각급기관에 2002년 8월31일 비화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니 비화 휴대폰 구입 및 이용료 예산을 확보하라는 공문을 보냈고, 부산광역시와 전남도청 등은 실제로 예산을 편성하기까지 했다"며 "이는 정부 스스로 이동전화 도청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 아니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정통부는 "지급된 단말기는 대통령과 핫라인 연결을 위해 일반인이 사용하는 전화기와 똑 같은 것을 지급한 것일 뿐, 비화 전화기가 아니다. 현재 청와대에는 비화단말기가 1대도 없다"고 반박했다.

두번째 지적에 대해 진대제 정통부 장관과 변재일 차관은 답변을 통해 '비화 단말기는 전시(戰時)나 국가위난에 대비한 국가지도통신망(일명 충무계획) 구축에 필요한 것으로, 공문을 보낸 것은 사실이나 일반인들이 CDMA 통화가 도청이 된다는 사실로 오해할까봐 집행을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통부 공보관은 8일 "비화기 개발은 국가정보원의 '국가정보통신보안지침'에따라 96년부터 개발해온 것으로 현재 단말기 수준에서는 개발됐지만 시스템 차원에서는 개발이 안돼 (정통부가) 형식승인을 내주지 않고 있어 국내 보급은 한대도 안됐다"고 설명했다.

◆국가지도통신망이란

이번 비화기 논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가지도통신망'이란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가지도통신망의 기원은 197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을지연습'과정에서 전쟁 발발시 일반인의 통화가 폭주해 통신망이 불통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한 별도의 망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따라 등장한 것이 '보안망'이다.

보안망은 당시에는 요즘처럼 이동전화 망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여서 'EMX'라는 별도의 망을 구축, 사용했다.

그러나 국내에 디지털 이동통신망인 CDMA 망이 본격적으로 구축되면서 96년 4월 상용서비스에 들어간 신세기통신망(현 SK텔레콤으로 합병)을 사용하게 됐다. 별도의 망을 깔려면 수조원의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미 당시에도 민간망 사용으로 인한 보안 취약이 문제로 대두돼 '비화기술'개발의 필요성이 지적됐고, 이에 따라 전자통신연구원(ETRI) 산하의 국가보안기술연구소가 96년 중반부터 비화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이번에 논쟁이 된 비화단말기는 이렇게 해서 개발에 들어간 것이다.

'2급 비밀'로 분류돼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오래 전부터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또 비화기술은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이동전화 서비스의 도청 방지를 위해 개발된 것이 아니라, 비상시 특수인들을 위해 개발된 것이다.

정통부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 국감 과정에서 문제가 된 일부 지방자치 단체의 비화단말기 구입 예산도 이같은 맥락이다.

한가지 궁금증은 왜 2002년 8월 31일부터 비화서비스를 하려던 정통부가 갑자기 이를 중단했으며, 현재까지 비화기술 개발이 완료되지 못했나 하는 것이다.

이는 전시를 대비한 국가지도망이 구축되지 못했거나, 적어도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안이다. 이에 대해 정통부는 정확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극명한 관점의 차이

예를 하나 들어보자.

민간 아파트를 지을 때 건물의 안정성을 규정하는 각종 기준들이 있다. 철근의 두께와 갯수, 내력 벽의 강도, 콘크리의 점도 등이 포함돼 있다. 건물이 무너지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전방에서 군인들이 묵을 막사를 콘크리트 건물로 짓는다고 생각해 보자. 이때는 민간 아파트에 적용되는 것보다 훨씬 높은 강도의 기준이 요구될 것이다. 유사시 건물에 적의 폭격이 가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때 누군가 "정부가 군에서 짓는 건물에 훨씬 엄격한 강도를 요구하기 때문에 민간 아파트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 아니냐"고 주장한다면 어떨까?

이번 비화단말기 논쟁도 이와 비슷하다.

"정부가 국가지도통신망에 비화기술을 적용하려는 것은 민간 서비스가 도청이 될 수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냐"고 의원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통부는 "국가지도통신망은 전시를 대비한 것이어서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비화기술을 적용해야 한다. 이 것이 CDMA망이 도청가능함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론이 날 수 없는 이유

양 쪽의 주장 모두 보는 시각에 따라 충분히 일리가 있다. 바로 이같은 이유로 비화단말기의 논쟁은 청문회까지 가더라도 결론이 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일반인이 사용하는 CDMA 이동통신이 도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국가지도통신망에 비화기술을 적용하려 한다'는 논리를 인정한다면 커다란 사회적 파문을 몰고 올 것이다.

민간인은 허술한 망을 사용케 하고, 국가만 안전한 망을 사용하려 한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어차피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망인 신세기통신의 망을 사용하고 있다면 국가가 전시에 우려하는 도청의 가능성은 평소에도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원들의 주장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따라서 당장 CDMA 망이 도청에 뚫렸다는 명백한 사실이나, 이를 입증할 기술이 공개되지 않는 이상, 양측의 논쟁은 소모전에 그칠 공산이 크다.

CDMA 기술은 세계 여러나라에서 이동전화 서비스에 이용되고 있지만 '도·감청'논쟁이 우리나라처럼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CDMA 서비스를 상용화 한 나라라는 점에 비춰보면 '당연하다'는 시각도 나올 수 있지만, 한편으론 '부끄럽다'는 감정에 쌓이게 할 수도 있다.

미국의 군인도 퀄컴이 제작한 'QSec-800'단말기를 일부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보안기능을 강화한 이 제품의 존재 때문에 미국 내에서 심각한 도청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지금 벌어지는 도감청 논쟁의 성격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단면이다.

/백재현기자 bria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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