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

'우생순 신화는 없다. 매경기 최선을 다할 뿐이다.'

12년차 주부 오성옥(36, 오스트리아 히포방크)의 노련함 앞에 세계 여자핸드볼계의 강호들이 잇따라 주저앉고 있다.

한국 여자핸드볼팀이 베이징에서 연일 승전보를 날리며 온 국민에게 눈물과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올림픽 때만 잠시 조명을 받고는 다시 '그들만의 리그'로 돌아가곤 하던 비인기 종목 '여자 핸드볼'이 설움은 아랑곳 없이 베이징 코트에 땀범벅을 해가며 '금빛 메달'을 향해 순항 중이다.

여자 핸드볼팀은 지난 9일 올림픽 조별 예선전 첫 상대로 세계 최강 러시아를 만나 후반 중반 9점 차까지 뒤지던 경기를 순식간에 따라붙어 결국 29-29 극적인 무승부를 기록하며 '우생순 신화 재연' 서막을 올렸다.

이어 11일에는 유럽 챔피언이자 러시아와 우승 각축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 독일에 30-20 대승을 거뒀으며, 13일에는 역시 유럽 강호 스웨덴을 맞아 전후반 내내 앞선 경기를 펼쳐 31-23으로 이겼다.

14일 현재 2승1무의 성적으로 조 선두에 올라선 가운데 사실상 8강 티켓을 예약해 놓은 상태다.

여자 핸드볼팀은 이번 베이징올림픽에 나서기 전만 하더라도 이른바 '죽음의 조'에 편성돼 있어 8강 진출 여부마저 불투명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올림픽이 열리자마자 여자 핸드볼팀은 '절망'을 '희망과 기대'로 돌려놓고 있다. 그 배경에는 임영철 감독을 중심으로 한 모든 선수들의 빛나는 투혼이 자리잡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선수단의 버팀목이자 맏언니인 오성옥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오성옥은 이미 3차례나 은퇴했다가 조국이 부를 때마다 다시 코트로 돌아와 투혼을 발휘, 한국을 7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올려놓은 주역이다.

그녀는 센터백으로 나서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템포를 늦추며 경기 전체를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상대팀 수비라인의 틈이 보일 때면 노장답지 않은 빠른 스피드로 과감하게 돌파한 뒤 상대 기를 꺾는 골을 뽑아내곤 한다. 러시아전 1골, 독일전 5골, 스웨덴전 3골을 기록했는데 출장 시간도 적고 많은 골을 넣은 것은 아니지만 꼭 필요할 때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그의 활약은 절대적이다.

키 171㎝, 몸무게 64㎏의 30대 중반 '아줌마'가 어떻게 그런 강한 체력과 폭발적인 돌파 능력을 보여주는지 의아할 정도다. 오성옥만 코트에 나서면 상대팀은 밀착 강압수비를 펼치느라 진땀을 흘린다.

오성옥은 고교 2년 때인 지난 1989년 5월 태극마크를 처음 단 뒤 한국체대 2학년이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대표팀의 막내로 출전, 한국이 88서울 올림픽에 이어 2연속 금메달을 따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은퇴했지만 1999년 대표팀 선배 임오경(37)이 뛰던 일본 실업 히로시마 이즈미(현 메이플레즈)에 입단해 다시 선수로 복귀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핸드볼 부활을 외치며 대표팀을 이끌었고, 2004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대표팀의 부름을 받아 은메달을 따내면서 '우생순' 드라마의 주역이 됐다. 이후 3년간 오스트리아에서 조용히 클럽 선수로 활동하다 다시 돌아왔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결승 덴마크전에서 심파 편파판정의 설움을 기억는 그녀는 이번 베이징에서만큼은 눈물을 흘리지 말자는 각오로 후배들을 다독이며 경기에 임하고 잇다.

그녀는 베이징 출전에 앞서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5회 연속 올림픽에 참가하게 돼 뜻깊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 올림픽이다"며 "한국이 세계 최강이란 걸 보여주고 싶다"고 다짐했다.

한국 여자 핸드볼팀은 오성옥 외에도 오영란(36, 벽산건설), 홍정호(34, 일본 오므론), 박정희(33, 벽산건설), 허순영(33, 덴마크 아르후스) 등 '30대 부대'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위해 연일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문현구기자 brando@joy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