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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정, "그간 온갖 사이코 역할 다 해봐"


영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에서 남자주인공 태한 역을 맡은 박광정

"저 방위 출신 아닙니다."

박광정과의 첫 대화는 뜬금없이 군대 이야기로 시작됐다. "큰형이 ROTC 출신이고 작은형은 육사를 다녔습니다. 저도 83년부터 대구 2군사령부 수송대에서 현역으로 복무했구요."

박광정은 최근 MBC 드라마 '하얀거탑'에서 '장준혁'(김명민 분)과 '노민국'(차인표 분)과의 외과과장 선거에서 실리를 챙긴 '박창식'으로 분해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26일 개봉한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감독 김태식, 제작 필름라인)에서는 아내의 불륜에 괴로워하는 소심한 남자 '태한'을 맡아 관객들 앞에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섰다.

"예전에 '마지막 방위'라는 영화에 출연한 덕인지 사람들이 저를 방위출신으로 아시더라구요" 박광정에 대한 주변의 오해는 그의 체격이 다른 남자배우들에 비해 단단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왜소해 보인다는 표현을 써도 실례가 되지 않느냐고 묻자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넘버3'의 '랭보'로 스크린에서 강한 인상 남겨

박광정은 대학로에서 연극연출가로 명성이 높다. 자신이 운영하는 극단을 가지고 있으며 연극배우로도 무대에 자주 올랐다. 그렇지만 박광정은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1997년 송능한 감독의 작품 '넘버3'의 엉터리 시인 '랭보'로 유명하다. 보라색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여자주인공 이미연을 유혹했던 랭보는 송강호가 연기한 불사파 두목과 함께 당시 한국영화가 만들어낸 최고의 조연 캐릭터였다.

"그때 랭보 역을 맡은 배우가 따로 있었는데 출연을 고사하는 바람에 제가 하게 됐습니다" 송 감독은 탐욕스러운 이미지의 랭보를 원했지만 박광정의 출연으로 '랭보'의 캐릭터를 바꿨다. 박광정은 유약한 지식인의 위선적인 모습을 독특한 개성으로 풍자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박광정은 충무로와 여의도 그리고 대학로로 상징되는 한국의 영화, 방송, 연극계를 자유롭게 오고 가는 몇 안 되는 배우다. TV 출연 드라마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물었다. 그는 KBS 성장드라마 '학교' 시리즈를 꼽았다. 학생주임 선생님으로 출연했던 박광정은 "대본 자체가 교실의 모습을 왜곡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그려 좋았다"고 한다. 당시 '학교'에 출연했던 신인연기자들은 현재 연예계를 주도하고 있는 스타로 자리를 잡았다. 그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도 '학교'에 애착을 가진 이유라고 덧붙였다.

남자 배우도 노출에 민감하다?

김태식 감독의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제목 그대로 주인공 태한이 자신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는 택시운전기사 '중식'(정보석 분)을 만나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치정극이다. 하지만 김태식 감독은 대게의 치정극과 달리 인생의 페이소스와 40대 중년 남성의 비루한 일상. 그리고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는 결말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의 치정극을 만들어냈다. 그 중심에는 남자 주인공 태한을 연기한 박광정이 존재했다.

"저도 알몸을 보이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데 작품의 전개상 꼭 필요한 장면이라 생각해서 벗었습니다." 박광정은 한 여름에도 반팔을 잘 입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맨살을 드러내길 꺼려한다고 한다. 그러나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에서는 알몸 목욕신을 비롯해 세 차례 맨몸을 드러냈다.

"관객들이 중식의 부인 옆에서 알몸으로 누워 '복 받으실 거에요'라는 대사에서 많이 웃으시더라구요" 박광정은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며 다시 촬영시절로 되돌아간 듯 했다. 올 4월 개봉했지만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대부분 2년 전 여름에 촬영됐다. 박광정은 영화 속에서 호흡을 맞췄던 정보석과 조은지에 대한 찬사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는 '태한'의 소심함에 무게 중심이 가 있는 작품이다. 도장을 파며 신경질을 내는 태한의 모습이나 태석의 부인 옆에서 웅크린 태한의 흐느낌이 없었더라면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현실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 힘이 들었을 것이다.

몸 팔러 다닌다고 욕먹어

박광정은 충무로와 여의도에서는 조연이지만 대학로에서는 주연이다. 그리고 연출가다. 전통을 자랑하는 연우무대 출신에 각종 연극관련 시상식에서 숱하게 트로피를 받아봤다. 무엇보다 TV드라마와 영화 쪽에 얼굴을 내밀었던 1세대 대학로 배우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학로 사람들에게 몸 팔러 다닌다고 욕 많이 먹었습니다" 연극배우의 고된 삶은 생계를 어렵게 했다. 그러나 대학로 연극배우라는 자존심으로 그들은 버텼다. 박광정은 그런 분위기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 당연히 욕을 먹었다. 결과적으로 박광정은 후배들에게 활동영역을 넓힐 수 있는 물꼬를 텄다. 송강호, 설경구, 황정민을 위시한 대학로의 숱한 연극배우들이 탄탄하게 다져진 연기력을 무기로 충무로와 여의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출연료로 배우들 월급 줘야지요" 박광정이 TV와 영화를 넘나드는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연극만으로 기본적인 생활이 어렵기에 박광정은 드라마나 영화 출연 제의를 비교적 거절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배우 박광정보다 연극연출가 박광정의 자리에 조금 더 책임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였다.

"그간 온갖 사이코 역을 다 해봤기 때문에 이제는 좀 얌전한 역을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연기자 박광정이 해보고 싶은 역할에 대한 답이었다. 지금 당장 바라는 것을 물었다.

"먼저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가 조금 더 많은 극장에서 상영되기를 바라는 것 하나와 다음달 2일부터 시작되는 서울연극제에서 좋은 성과를 얻는 것이죠 뭐" 박광정은 연극을 올리기 전 일주일이 가장 피크라며 자리를 정리했다. 어느새 그는 극단 파크의 연극 ‘죽도록죽도록’의 연출가 박광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조이뉴스24 김용운기자 woon@joynews24.com 사진 김동욱기자 gphoto@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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