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돈과 시련의 연속.' 이명박 정부 집권 첫해를 함축하는 말이다.
지난 2월25일 10년 만에 진보에서 보수로의 정권교체를 달성한 이명박 정부는 48.7%의 대선 득표율과 530만표라는 압도적인 표차의 여세를 몰아 이른바 '경제 살리기'를 근저로 힘찬 출발을 예고했지만 기대와 달리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각종 악재가 연이어 터지면서 흔들렸다. 지지율이 20%대에 머물면서 강력한 개혁드라이브를 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연간 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위 경제 강국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며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747'은 없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30일 청와대에서 2008년 마지막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그동안 국정운영의 소회를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 1년을 회고하면 후회도 있고 보람도 있었다"고 평가한 뒤 "발전하는 조직은 어려움 속에서 배우는 조직이다.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정부 출범 이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심하게 대응할 필요는 없다"며 "오히려 담대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집권 초부터 인사파동, 종교편향,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권 출신) 강부자(강남 부자) 내각 등으로 물의를 빚었다. 정치권에서 이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국회의원을 통해야만 일이 된다는 '만사형(兄)통'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급기야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시작된 87년 이후 최대 규모인 촛불시위가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첫 해를 장식했다.
지난 1년 이 대통령의 리더십은 국정 및 사회적 상황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다.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및 정권 초창기 공직기강을 다잡으며 강력한 개혁정책들을 밀어붙였다. "좌고우면하지 말라,너무 늦다,빨리 하라"고 공직자들을 다그치는 게 다반사였다. 최고경영자(CEO) 시절에 붙여진 이른바 '불도저형'의 리더십을 보여준 것이다.
한 사회학자는 이 대통령의 리더십과 관련, "이명박 대통령은 섬김 리더십과 변혁적 리더십을 특히 강조하면서 'MB호'의 새 돛을 올렸다"면서 "섬김 리더십은 '국민을 위한 봉사와 헌신에 초점을 두면서 국민을 섬기는 리더십'을 말한다. 변혁적 리더십은 '국민의 욕구수준을 가일층 상승시키고 상승된 욕구에 호소함으로써 개인과 조직의 변혁을 유도하는 리더십'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인사파동으로 출발부터 '발목'
새 정부는 대선 압승의 여세를 몰아 순항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첫 인사부터 실패했다. 장관 후보자 중 상당수가 수십억원대 재산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월 대통령 취임식을 전후로 이춘호 여성부 장관 내정자(2월24일 사퇴)를 비롯해 남주홍 통일부, 박은경 환경부 장관 내정자(2월27일) 등이 잇따라 물러났다.
또 7월에는 쇠고기 파동 등과 관련해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등을 교체했고 이어 특별교부금을 모교에 지원해 물의를 빚은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도 경질했다.
또 청와대 참모진과 대통령직인수위도 이 대통령과 배경이 같은 위주로 구성돼 제 식구 챙기기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정권 초반 여론은 급속히 등을 돌렸고,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증폭시킨 원인으로 작용했다.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의 인사 실패는 특유의 불도저식 국정과 직관에 의존하는 정치 탓"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일각에선 자기 사람에만 기대는, 폭넓지 못한 인사 스타일이 화를 초래했다는 말도 나온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인사파동 이후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촉발된 촛불집회의 화마에 휩싸였다.
올해 4월 미국산 쇠고기를 사실상 연령이나 부위 제한 없이 수입하는 내용으로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데 대한 반발로 시작된 촛불집회는 지난 5월2일부터 8월15일까지 전국적으로 2천398차례, 연인원 94만여명(경찰 추산)이 참석하며 이명박 정부는 물론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10대들 사이에서 확산된 '광우병 공포'에서 촉발됐던 촛불집회는 졸속협상 비판 및 검역주권 논란, 나아가 이명박 정부의 실정 비판 등으로 확산됐다.
두 번에 걸친 대통령의 사과와 쇠고기 추가 협상 등으로 사태가 수습됐지만 정부로선 출범 초기 정책 추진에 큰 타격을 받았다. 촛불집회가 '참여 민주주의의'냐 '인터넷 중우정치'냐는 평가가 엇갈리지만 기성 정당과 언론에 대한 불신으로 대의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게 확인시켰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마음이 급했다.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밤에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다. 아침이슬 노래도 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독단적 스타일로 '소통부재'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의 독단적인 스타일과 그에 따른 국민과의 '소통 부재'가 지지층의 이탈과 민심 이반을 낳게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자성, 그리고 국정 반전책 모색의 출발점은 여기에서 나왔다.
이 대통령의 두 차례 대국민 사과와 청와대 수석 참모진 전원교체 및 소폭 개각은 물론 국민과의 소통 강화를 위한 각종 방안이 추진됐다.
이 대통령은 그 여세를 몰아 8.15를 기점으로 '녹색성장'이라는 새 비전을 제시하며 사실상 이명박 정부의 재출범을 선언했고, 이후 국정은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지지도도 회복되기 시작해 현재 30% 안팎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9월 초 불거진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국내 경제를 강타하면서 새 정부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 이 대통령 스스로 현 위기를 "전대미문의 위기"로 규정했을 정도다.
환율이 폭등하고 주가가 폭락하면서 97년의 외환위기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공포심이 확산됐고, 정부의 안이한 초동대처로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이 대통령의 신뢰에 치명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정운영 미숙과 대내외적 요인으로 수많은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성과도 적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은 짧은 기간에 ▲규제 개혁 ▲4강외교와 자원외교 ▲권위 탈피 ▲공무원 의식 개혁 등 적잖은 성과를 일궜다.
특히 이전 진보정권 10년간 소원했던 한미관계를 복원한 것을 비롯해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4강(强)과의 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며 정상외교의 지평을 확대했다.
미국과는 '21세기 전략적 동맹관계', 일본과는 '성숙한 동반자 관계의 신시대 개척', 중국 및 러시아와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등으로 이전 정부에 비해 모두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관계를 구축했다.
이 대통령은 집권 2년차엔 정권의 명운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경제살리기'와 '서민보듬기'에 올인하는 동시에 국정 장악에 가일층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1월2일 신년연설을 한다. 이 대통령의 이번 연설 화두는 단연 경제위기 극복방안이다. 상당 시간이 이에 할애된다. 희망적인 메시지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의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면 기회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위기 속에서 어떻게 기회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정부의 정책방향을 설명하고 국민적 단합과 의지, 경제 각 주체의 고통분담 등을 호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상한 상황인 만큼 비상한 각오와 자세로 대처해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킬 것이라는 게 이 대변인의 전언이다.
서울시장 재직 때 함께 일했던 한 측근 정치인은 "이 대통령은 순수하다"면서 "그러나 일을밀어 붙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김영욱기자 kyw@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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