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성]신세계의 '속보이는' 문제 해결

지난 달 PC 시장을 강타했던 63억원 규모 유통 사고의 해결 과정이 지지부진하다.

신세계아이앤씨(I&C) 측은 이번 사건이 소속 개인의 횡령 혹은 배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다 보니 사건 전말이 모호한 점은 있다. 그래서일까? 이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뤘던 신세계아이앤씨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업체들 모두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다소 껄끄러워 보인다.

한자리에 모여 앉아 잘잘못을 가리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협상 카드를 제시하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전형적인 대기업의 '문제 해결 비법'이 엿보이는 것 같다는 말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혹은 대기업과 개인간에 문제가 생겼을때 일단 외부의 논란을 잠재우고 당사자와 합의를 통해 '조용히' 해결하는 방식을 가끔 본다.

문제는 '합의'라는 것이 약자인 중소기업이나 개인을 배려하지 않고 대기업의 논리로만 진행되는 경우다. 이때는 이미 '외부'의 논란을 잠재워버렸기 때문에 피해 당사자들의 주장이 힘을 얻기 어렵다.

신세계 역시 피해 업체들에게 '제안'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16개 피해 업체들이 주축이 된 '사고대책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당초 사건이 불거졌던 11월 중순경에는 정면 대응을 하려 했다. 신세계 본사 앞에서 항의 농성을 하고 기자회견을 갖기로 했던 것.

하지만 이들의 농성 계획은 돌연 취소됐다. 신세계 측 관계자가 피해 업체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한 것이다. 이 때 신세계 측은 '외부, 즉 언론에서 왈가왈부하면 해결이 더뎌질 수 있다'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업체들은 신세계의 말을 믿고 '조용히' 기다렸다. 떠들썩한 보도로 주목을 받는 것 보다, 피해액을 돌려받아 심각한 자금 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3주가 흘렀다. 그 사이 관련 보도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세간의 관심도 줄어들었다. 그게 다였다. 사건에 대한 해결 방안 제시는 커녕 아직까지 신세계 측의 명확한 책임자조차 만나보지 못했다는 것이 대책위 설명이다.

아차 싶었던 피해 업체들은 부랴부랴 기자회견이다 항의 농성이다 하면서 다시 논란거리로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쉽지 않다.

딱히 수를 찾지 못한 대책위는 최근 신세계 측에 대응안 마련을 촉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뒤 늦게 강수를 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말 발'이 먹힐지는 미지수다. 한번 가라앉은 관심을 되살리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곤란한 상황을 벗어난 신세계는 이젠 서두를 이유가 없어졌다.

기자는 피해업체들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24일 신세계 측에 문의를 했다. 하지만 신세계 측은 "알아보겠다"고 한 뒤 아직까지 아무런 답을 주지 않고 있다.

굳이 신세계아이앤씨가 올해 초 화려하게 내걸었던 윤리경영, 상생경영까지 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최소한 피해를 입었다는 업체들과 제대로 협상 테이블에 앉는 모습이라도 보였으면 이렇게 입맛이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신세계의 주장대로 개인의 횡령 혹은 배임 사건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도의적 책임이라도 지려는 모습이 더 아름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해결될 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적어도 신세계아이앤씨가 '피해업체 입 다물게 해 놓고 시간 끄는' 업체로 남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