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기의 축구 파노라마 58]반란 5인방 이태호 최순호 박경훈 변병주 최인영 선수촌 탈주사건

[김덕기의 축구 파노라마 58]반란 5인방 이태호 최순호 박경훈 변병주 최인영 선수촌 탈주사건

슈퍼리그 열기가 늦여름 마지막 무더위만큼이나 뜨겁던 1983년 9월초 태릉선수촌에서 벌어진 뜻밖의 사건이 축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이른바 5인조 탈주사건.

8월24일 조윤옥-이세연 체제에서 멕시코 세계청소년 4강신화의 주인공 박종환 감독으로 사령탑이 바뀐 대표 팀은 곧바로 태릉선수촌에 입촌 LA 올림픽 1차 예선전에 대비한 훈련에 돌입했다.

그러나 새로운 각오와 결의가 식기도 전인 9월6일 오전 태릉선수촌과 축구협회를 벌집 쑤셔 놓은 듯 시끄럽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멕시코 4강 신화를 만들어 낸 박종환 감독은 고참급인 이태호 최순호 최인영 변병주 박경훈의 훈련태도가 못마땅했다.

박 감독은 "운동을 따라 할 수 없는 선수는 보따리를 싸도 좋다"는 불호령과 함께 연일 선수들을 녹초로 만들었다.

주장을 맡았던 이태호는 "박종환 감독이 나하고 병주 경훈이를 불신하는 것 같다"며 가시방석 같은 자신의 입장을 토로한 것은 사건이 벌어지기 하루 전이었다.

이날 저녁을 마치고 이태호 최순호 변병주 박경훈 최인영 등 5인조는 잔디밭에 둘러 앉아 고달픈 선수촌내 훈련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누군가가 "이렇게 불신을 받고 고달플 바엔 박 감독 말대로 차라리 보따리를 싸자"고 했고 모두 "좋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태호가 반란 5인조 중 1년 선배였고 또 한명의 동기로 정용환이 있었다.

9월6일을 거사일로 잡은 이들은 당시 유일하게 자가용을 갖고 있던 최순호의 차에 모든 짐을 실어 놓은 뒤 정용환에게 거사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정용환은 처음 대표 팀에 발탁된 터라 이들과 같인 행동할 수 없었다.

5인조들은 "나는 남아 있겠다"는 정용환의 말을 뒤로 한 채 오전 10시 최순호의 차로 태릉선수촌 정문을 나섰다.

최순호는 "뒤에 들으니 태릉선수촌 입장을 고려하여 우리가 담을 넘어갔다고 했지만 사실과 다르다. 최인영도 박 감독과 같은 서울시청 소속이라 처음에는 주저하다가 친구 의리를 내세우자 같이 행동했다"고 털어 놓았다.

전진관 3층 305호실에서 눈을 붙이려던 박 감독에게 이 소식이 알려진 것은 이들이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축구협회 회장실에서 순수영부회장 이윤식사무총장과 마주 앉아 '대표팀 사퇴서'를 불쑥 내민 정오께였다.

박 감독은 "훈련이 고될 것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진짜 보따리를 쌀 것 까지는 생각 못했다. 앞이 캄캄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괘씸한 생각이 더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축구협회는 이튿날인 9월7일 긴급이사회를 열어 탈주 5인조에게 '3년 선수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최순호는 "3년 자격 정지라는 것은 선수생활을 그만 두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태호는 대우 소속이었지만 나머지 선수들은 프로팀과 입단 계약을 맺고 프로데뷔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일을 당하니 안팎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이해 12월 LA올림픽 1차 예선을 통과한 대표 팀도 이들이 필요했지만 현대 럭키금성 창단으로 본격적인 프로축구 시대를 연 축구계는 이들의 발을 계속 묶어 놓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대한축구협회는 1984년 시즌 오픈을 앞둔 3월3일 "대표팀에서 집단 이탈한 5명이 개전의 정이 뚜렷하고 국민화합의 정신에 입각해서 이 날짜로 자격정지를 해제한다"고 밝혔다.

이들에게 족쇄가 채워진 진 178일만의 일이었다.

조이뉴스24 /김덕기(축구전문대기자)saong5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