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기의 축구파노라마 53]최순호 프로 첫 연봉 3천만원대 돌파

[김덕기의 축구파노라마 53]최순호 프로 첫 연봉 3천만원대 돌파

그라운드에 스산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프로선수들의 마음도 덩달아 뒤숭숭 해진다.연봉 재계약 작업에 들어가는 '스토브리그'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해의 농사를 잘 지은 선수는 보다 따뜻한 겨울을 나기 위해 구단과의 일전을 벼르는가 하면 성적이 신통치 못한 선수는 '올해 또 얼마나 깎여야 하나'하는 걱정에 잠을 못 이루게 된다.

1985년 시즌을 앞둔 스토브리그도 예외는 아니었다.1984년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다 현대로 이적한 허정무는 국내 최고 연봉 선수로 대우해주겠다는 구단과의 약속에 따라 85시즌 연봉 3,000만원대를 돌파하겠다고 단단히 별렀다.

6게임 연속골에 9골로 팀 내 최다 골을 기록한 럭키금성 조영증도 3,000만원대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84시즌 2,400만원의 연봉을 받았던 허정무는 2,900만원에 묶였고 조영증도 440만원이 인상된 2,880만원에 그쳤다.

국내 프로축구 사상 처음 3,000만원대의 연봉을 돌파한 선수는 포철의 최순호였다.

84년 2,760만원을 받아 최고 연봉 선수자리에 올랐던 최순호는 크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3,200만원을 받아 최고 스타임을 입증했다.

"더 받을 수도 있었지만 83년 9월 태릉선수촌 이탈로 3년간 선수자격정지라는 징계를 받고 있는 중이라 그냥 참고 말았다. 당시 계약서에는 포철이 임의로 작성한 것이지만 그대로 받아 들였다."

최순호는 당시 포철과의 연봉 줄다리기 내용을 밝히지 않았지만 단순한 연봉 재계약 외에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 있었음을 시사했다.

최순호는 84년부터 포철이 프로로 변신함에 따라 83년 9월 아마추어 팀 포철에 사표를 제출하고 84년 연봉 2,760만원으로 프로 포철과 새로운 계약을 했다.

국가대표 5인조 태릉선수촌 무단이탈 사건으로 징계 중이던 최순호는 징계가 풀릴 경우 활약상에 따라 4월에 연봉을 상향 조정키로 합의 했으나 징계가 풀린 뒤에도 연봉 조정은 없었다.

후기리그 들어 11골을 터뜨리며 슈퍼 그라운드를 현란하게 누비던 최순호는 9월말 허리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한데다 84년 시즌이 끝난 뒤 존경하던 한홍기 감독이 사령탑에서 물러남에 따라 심한 정신적 갈등을 빚었다.

최순호는 이 같은 상황에서 84년말 새로 등장한 통일계약서로 인해 연봉협상 테이블에 나섰으나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84년까지 각 구단이 만든 계약서로 선수와 2년 기한의 계약을 체결했던 것을 85년부터는 모든 구단이 통일된 계약서로 1년씩 계약을 체결키로 변경했다.

징계가 풀린 뒤에도 연봉조정이 없었던 최순호는 이 기회를 통해 3,600만원의 연봉을 요구 했으나 구단은 84년 연봉 2,760만원을 제시, 난항을 겪었다.

최순호가 이에 승복치 않자 포철은 3,200만원의 연봉이 기록된 통일계약서를 작성, 최순호의 사인을 받아냈다.

최순호는 자신이 제시했던 3,600만원과는 거리가 있었으나 국내 프로 선수 가운데 처음으로 3,000만원대 선수가 됐다는 자부심과 포철과의 인연을 생각해서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이때부터 최순호의 포철에 대한 열정은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조이뉴스24 /김덕기(축구전문대기자) saong5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