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올림픽의 해인 1988년 새해가 시작된 지 닷새가 되는 1월5일 오전 10시.
서울 무교동 금세기 빌딩 11층 포철 축구단 서상달 단장 사무실에 두툼한 파커 차림의 김종부가 대우 이재명 단장, 안종복 사무국장과 함께 나타났다.
김종부는 22개월간의 방황을 마감한다는 기대 때문인지, 과보호 해주던 이 단장, 안 국장 곁을 떠나야 하는 두려움 때문인지 상당히 긴장하고 상기된 모습이었다.
단장실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서상달 포철 단장과 이회택 감독이 웃는 낯으로 이들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으나 김종부의 굳은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이 단장이 "잘 부탁합니다. 큰 선수로 키워 주십시오."라고 말문을 열었다.
연봉 협상 결렬로 간판 선수 최순호를 임의탈퇴선수로 공시할 작정까지 하고 있는 서단장은 한눈에 김종부가 최순호 대역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180cm가 넘는 큰 키에 잘 빠진 몸매가 더욱 그러했다.
서 단장은 "용의 해인 무진년 새해 벽두부터 용띠인 김종부를 받아들여 매우 기쁩니다. 김종부가 큰 선수가 되도록 도와 주겠습니다."라고 답례했다.
김종부는 잠시 후 준비된 입단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1986년 3월29일 현대와 가계약한 뒤 대우행을 선언함으로써 현대 팀 해체 파동, 축구협회 집행부 총사퇴 등 축구계에 일파만파를 일으킨 '김종부 파동'이 매듭지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모든 용서는 그라운드에서 빌겟습니다."라고 짤막하게 소감을 밝힌 김종부의 표정은 처음과 변함이 없었다.
이 단장은 "전통있는 포철로 이적시켜기쁘다."고 했지만 김종부에게 대우 유니폼을 입히지 못한 아쉬움이 역력했다.
김우중 회장의 뜻에 따라 포철로 이적은 시켰지만 수년간 김종부에게 쏟아 넣은 투자와 정성은 물론 현대와의 피나는 싸움에서 이겼다는 승리감을 맛보지도 못한 채 김종부를 놓친 것을 생각하면 아쉬움은 더해갔다.
조이뉴스24 /김덕기(축구전문대기자)chooggu@joy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