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기의 축구파노라마]⑭한국축구 흔든 김종부 쟁탈전

[김덕기의 축구파노라마]⑭한국축구 흔든 김종부 쟁탈전

1987년 11월11일. 한국축구사상 초유의 대규모 ‘하극상’이 벌어졌다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에서 비롯된 프로축구팀 현대의 팀해체 파동은 마침내 한국축구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던 일선감독 코치들의 대규모 시위와 농성으로 비화, 한국축구의 존폐가 걸린 전대미문의 '쿠데타'로 이어졌다. 이날 오후2시 제42회전국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던 효창운동장은 응원의 함성 대신 구호와 기이한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최순영회장은 퇴장하라''현대는 팀해체를 철회하라' '국기인 한국축구의 영화를 되찾자'

11월7일 충격적인 현대의 '자폭선언'이 있은 이틀 뒤부터 모임을 갖기 시작하던 프로, 실업, 각급 학교팀등 전국 일선 감독, 코치들은 11일 오전 여의도63빌딩에서 개최된 축구협회가 긴급이사회에서 집행부가 총사퇴하고 임시대의원 총회를 열어 재신임을 묻기로 결정한데 자극을 받아 본격적인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이회택(포철), 이차만(대우), 박세학(럭키금성), 김정남(유공) 등 4개 프로팀감독과 김삼락(동북고), 김기복(중앙대), 정병탁(연세대), 김재한(주택은행) 등 아마추어 팀 감독 및 코치 50여명은 이날 최순영회장의 영구퇴진 및 현대프로팀의 해체결정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문을 택했다.

당시 한국축구지도자협의회 김삼락회장과 프로지도자협의회 박세학회장, 과거 국가대표 청룡팀 멤버였던 이회택 감독 등 40대 감독들이 주축이 된 이들의 결의문을 통해 "최순영회장 임기 중에 프로2팀과 은행4팀이 해체됐다. 할렐루야를 아마추어 팀으로 전환시킨 최회장이 더 이상 협회장으로 남을 수 있느냐"며 최 회장의 영구 퇴진을 주장했고 현대그룹에 대해서는 팀 해체 결정을 즉각 철회하되 그렇지 않을 경우 전축구인이 나서 현대자동차 불매운동까지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1시간여동안 효창구단에서 시위를 벌인 이들은 '국기인 한국축구의 영화를 되찾자'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축구협회 사무국에 몰려가 축구협회의 행정무능을 규탄하며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곡예를 펼치듯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프로축구가 와해될 위기에 처한 데다 프로축구의 공중분해는 곧 한국축구의 파멸로 이어진다는 의식이 이들을 결속시켜 집행부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이날 오후7시 150여 감독, 코치들의 지지서명을 받아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겠다고 결의를 보인 이들 가운데 리더 격인 김삼락 감독은 "대세는 이미 새로운 집행부를 원하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기염을 토했다.

이때까지 만해도 최 회장은 "현대의 팀 해체는 전적으로 현대 책임일뿐 선수등록규정개정 등 축구협회 행정에는 추호의 하자가 없다. 임시대의원총회의 결과에 따라 진퇴를 결정하겠다"고 말했으나 이들의 농성소식을 전해 듣고 불과 하루만인 11월12일 임시대의원총회 결과에 관계없이 회장직을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축구를 살리자'라는 명분아래 축구사상 처음으로 집단행동에 나섰던 이들 일선 감독, 코치들은 결국 소기의 목적을 달성, 농성에 돌입한지 26시간 만인 11월12일 오후4시께 농성을 풀었다.

그러나 당시 농성에 참여했던 한감독은 "최순영회장이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기다렸다는 듯이 김우중 대우 그룹회장의 새 회장 추대론이 일어 농성 초기의 순수한 동기를 퇴색시켰고 이후 일부인사들이 국가대표팀 감독에 연이어 발탁돼 논공행상에 의한 감독 임명설이 나돌아 안타까웠다"고 아쉬워했다.

조이뉴스24 /김덕기(축구전문대기자) chooggu@joy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