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1월11일 오후 이회택 이차만 박세학 김정남 김삼락 김기복 정병탁 김재한 등 일선 감독 코치 50여명이 효창운동장에서 ‘최순영 회장 영구 퇴진’ ‘현대 팀 해체 철회’ 를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이후 종로구 견지동 축구협회 사무국에 몰려가 협회의 행정 무능을 규탄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같은 시간 체육부장관실에서는 ‘현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간담회가 열리고 있었다.
조상호 장관을 비롯, 이경문 청와대교문비서관, 김종하 대한체육회장, 최순영 축구협회장, 유홍수 프로축구위원회회장과 프로구단의 이양섭 현대자동차사장, 변규칠 럭키금성스포츠사장, 조규향 유공단장, 서상달 포철단장, 이재명 대우단장 등 관계자들이 빠짐없이 참석, 사안의 중대성을 실감케 했다.
조상호 장관은 이 자리에서 "체육발전과 축구 중흥이라는 대국적 견지에서 극단적인 팀 해체만은 재고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양섭 현대자동차사장은 즉답을 피한 채 "이 문제를 그룹 중역회의에 보고해서 검토 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현대그룹에 대한 강온 양면 여론이 비등해지는 사이 11월12일엔 최순영회장이 "임시대의원 총회결과에 상관없이 회장직을 무조건 내 놓겠다"고 밝힘으로써 극적타결의 중대한 전기가 마련돼가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 팀 해체 철회의 걸림돌은 김종부였다.
유공, 포철, 럭키금성 등 김종부 스카우트와 이해관계가 없는 3개 구단은 "김종부를 제3구단이나 아마추어 팀, 또는 군 팀으로 보내야 분쟁의 돌파구를 원만하게 조정할 수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김종부를 절대 양보 못한다"고 냉담한 반응을 보이던 대우는 11월18일 김삼락, 이회택, 차경복, 홍인웅씨 등 축구지도자협의회 대표 4명이 방문한 자리에서 "제3구단에 보내겠다"고 결정, 우여곡절 끝에 김종부는 포철로 트레이드되고 만다.
결국 '현대 해체파동'은 외관상 해피엔딩이었고 관점에 따라서는 한때의 떠들썩한 해프닝쯤으로 여겨질만 하다. 그러나 '현대파문'은 일반 팬들로 하여금 무분별한 스카우트 경쟁의 폐해, 재벌의 비뚤어진 스포츠관, 축구계의 구조적 모순 등을 여과 없이 확인할 수 있게 했으며, 무엇보다도 축구인들의 가슴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조중연, 김호곤 코칭스태프를 퇴진시키고 김호-김인권 체제로 재탄생한 현대는 88시즌 우승팀 포철과 뜨거운 선두경쟁을 벌이며 창단 첫 우승을 노렸으나 월드컵 대권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방해로 준우승에 머무른다.
조이뉴스24 /김덕기(축구전문대기자) chooggu@joy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