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기의 축구파노라마]⑫한국축구 뒤흔든 김종부 쟁탈전

[김덕기의 축구파노라마]⑫한국축구 뒤흔든 김종부 쟁탈전

1987년 시즌 마지막 경기를 불과 하루 앞두고 축구계를 강타한 현대 해체의 날벼락은 12월28일 팀 부활 공식 선언으로 급반전되기 까지 51일간 이 땅의 프로축구역사를 바꾸게 한 중대한 사건들의 결정적 빌미로 작용했다.

현대 해체 선언의 불안한 그림자는 11월5일 축구협회 이사회가 선수 등록의 소급적용을 결의하면서 드리우기 시작했다.

이사회 결의는 그해 8월 고려대를 졸업하고도 추가 등록기한(7월한)을 넘긴 김종부가 기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등록을 신청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 극히 이례적인 특혜성 결정이었다.

김종부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던 대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튿날 오전 선수등록카드 3부, 통일계약서, 졸업증명서 등 등록 서류를 프로축구위원회와 축구협회에 접수시켰다.

이로써 김종부는 1년7개월만에 선수 자격을 회복했고 현대와 대우의 김종부 스카우트 전쟁은 마침내 막을 내리는 듯했으나 기실 사건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현대는 "대한축구협회가 특정선수와 특정구단의 편익을 위해 선수등록 규정을 개정하고 소급적용하는 등 법규의 보편타당성과 행정의 공정성을 잃었다"고 비난하면서 "이런 풍토에서 프로팀 운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팀 해체의 배경을 밝혔다.

현대 해체의 급보를 11월8일 부산에서 들은 프로축구위원회 유흥수회장은 그날 밤 서둘러 상경, 사태 해결을 위해 현대 그룹 정세영회장과의 접촉을 시도한 끝에 11월10일 아침 면담이 성사됐으나 '완강한 의지'만 확인 했을 뿐이다.

현대 해체가 결코 엄포가 아닌 가능한 현실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자 프로, 실업, 각급 학교 팀 감독 코치들이 속속 모임을 갖기 시작했고 축구계는 태풍 전야의 불안한 위기감에 휩싸였다.

현대 팀 해체의 회오리는 바야흐로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축구협회는 11월 11일 여의도 63빌딩에서 긴급 이사회를 열고 집행부 총사퇴를 결의 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임시 대의원총회에 의한 새 집행부가 구성될 때까지 수습위원회를 만들어 축구행정을 운영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을 뿐 해체 문제를 해결할 묘안은 여전히 난감한 실정이었다.

그러나 일선 축구인들의 반응은 가히 전투적이었다.

11월11일 오후 이회택 이차만 박세학 김정남 김삼락 김기복 정병탁 김재한 등 일선 감독 코치 50여명은 효창운동장에서 ‘최순영 회장 영구 퇴진’ ‘현대 팀 해체 철회’ 를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한 뒤 종로구 견지동 축구협회 사무국에 몰려가 협회의 행정 무능을 규탄하며 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조이뉴스24 /김덕기(축구전문대기자)chooggu@joy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