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1월6일 프로축구위원회를 거쳐 축구협회에 선수 등록을 한 김종부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고 생각, 삼척에서 벌어질 현대와의 주말 2연전(11월 7,8일)을 앞두고 동해에 묵고 있던 대우 캠프에 합류했다.
김종부는 떠나기에 앞서 매스컴과의 인터뷰를 통해 “춥고 긴 터널을 빠져 나온 기분이다”고 소감을 밝히며 격려해 준 팬들에게 그라운드에서의 멋진 플레이로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종부는 또 현대에 대해 “현대도 나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 현대 측이 관용을 베풀어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김종부의 희망사항이었을 뿐 현대는 축구협회의 조치에 즉각적인 반격으로 맞서 사태를 또다른 국면으로 몰고 갔다.
현대는 11월6일 오전 “축구협회가 특정 선수와 팀을 위해 자체 규정을 개정, 일반적인 법 규정의 보편 타당성과는 어긋난 행정을 보였다”고 비난하면서 주말 2연전에 출전치 않겠다고 프로축구위원회에 정식 통보했다.
현대는 동시에 이날로 삼척에서 주말 2연전에 대비중이던 팀을 서울로 철수시켜 이같은 의지를 확인시켰다.
현대는 이날 밤 늦게까지 고위 임원회의를 열어 팀의 장래를 심각하게 재검토하고 있었고, 프로축구위원회는 현대의 경기 불참 통보 문제를 다루기 위해 11월7일 오전9시 긴급이사회를 소집했다.
그러나 걷잡을 수 없이 몰려오는 먹장구름은 피할 수 없었다. 그것은 곧 현대의 충격적인 팀 해체 선언, 즉 자폭으로 이어졌다.
출범한 지 3년11개월만에 난파된 호랑이 현대 축구단의 임원 선수들은 팀 해체 통보를 받고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11월7일 오후2시. 경기도 안양 선수단 숙소에 몰려 온 선수들은 모두 허탈해 있었고 일부 선수들은 눈물을 흘렸다.
현대 조중연 감독은 “할 말이 없다. 축구인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선수들의 장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만 남았다”고 비통해 했다. 김호곤 코치도 “협회를 이끌어 온 축구인들에게 큰 실망을 느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주장 최강희는 “7일과 8일 대우와의 2연전을 앞두고 삼척에서 훈련 중이었는데 긴급 철수 지시를 받고 6일 밤 늦게 서울로 왔다. 그런데 팀 해체로까지 확대될 줄은 전혀 몰랐다”며 역시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조이뉴스24 /김덕기(축구전문대기자)chooggu@joy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