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1월.
김종부의 스카우트 파동은 발생후 2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꽉 막힌 체증처럼 좀처럼 풀리지 않은 채 해를 넘기는 듯했다..
대우와 현대라는 두 매머드 구단이 가계약 명분을 내세워 우리 선수임을 우겨대는 한 사태의 연내 해결 가능성은 사실상 없었고, 한국축구 최고의 스트라이커라는 김종부는 늪에 빠진 전차처럼 녹슬어 갔다.
이런 분위기 속에 1987년이 저물어 가면서 김종부 구제 의견이 고개를 다시 들기 시작했고 김종부 고려대 재학 중 학점미달로 8월에 졸업, 가을학기 졸업생이 되었다.
어찌됐든 김종부 문제를 해결짓고 올림픽의 해를 맞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던 축구협회는 김종부의 졸업에 때 맞춰 선수등록 규정을 갑작스럽게 개정, 소급적용하는 무리수를 강행해 또 한차례 말썽의 불씨를 제공했다.
축구협회 이사회는 11월5일 개정된 선수등록 규정에 대한 소급 적용을 결의, 종전 선수 등록 규정의 추가등록 기간(7월중)을 넘겨 시기를 놓쳤던 김종부에게 기간에 구애없이 등록을 신청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사실 김종부의 8월 졸업 자체가 체육특기자들을 정규 졸업시켜온 관례를 깬 배려였는데 협회측은 특정선수 김종부를 구제키 위해 이례적으로 선수등록규정 자체를 개정하고, 이 규정을 소급 적용시켜 김종부에게 등록 기회를 마련해주는 전례를 남긴 것이다.
아무튼 이로 인해 김종부에겐 최소한 법률적으로 그라운드 복귀의 길이 열린 셈이 됐다.
김종부의 신병을 확보 중이던 대우는 11월6일 오전 기다렸다는 듯이 선수등록카드 3부, 통일계약서, 대학졸업증명서 등 등록 서류 일체를 프로축구위원회를 거쳐 축구협회에 접수시켰다.
이제 김종부는 1986년 가계약한 현대측이 이중으로 선수등록 신청을 하지 않는 한 대우 선수로 활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통일계약서를 갖추지 못한 현대측의 이중 등록 신청은 사실상 불가능 했으므로 오랜 싸움의 결과는 대우의 승리로 끝나는 듯 했다.
김종부 자신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고 생각, 삼척에서 벌어질 현대와의 주말 2연전(11월 7,8일)을 앞두고 동해에 묵고 있던 대우 캠프에 합류했다.
조이뉴스24 /김덕기(축구전문대기자) chooggu@joynews24.com